中企 첨단전환 4대 과제 제시
산업계 공공자산·협력무대
데이터·AI가 글로벌 경쟁력
기술 도입보다 혁신이 중요

오윤환 연구위원
오윤환 연구위원

“이제 ‘제조업 위기’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닙니다. 앞으로 10년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은 대·중소기업이 함께 축적해 온 산업공유지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1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 제조업 전환 전략: 위기에서 혁신으로’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오윤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이 강조한 말이다.

‘산업공유지(industrial commons)’란 특정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반이 공유하는 공장·소재·부품 인프라, 숙련 인력, 연구개발 생태계 등 집단적 생산역량을 의미한다.

오윤환 연구위원은 “아무리 R&D를 많이 해도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실현하는 것은 결국 제조 현장”이라며 “산업공유지는 연구와 혁신이 실제 산업가치로 이어지는 마지막 연결고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산업공유지는 특정 기업의 설비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공공 자산이자 협력의 무대”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데이터를 공유하며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되면 공급망 전체의 혁신 속도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윤환 연구위원은 글로벌 제조 환경 변화를 △공급망 재편 △탄소중립 △AI·디지털 전환의 세 축으로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무역질서가 비용 중심에서 복원력과 전략성 중심으로 바뀌었고, 탄소 감축은 이제 환경 규제가 아니라 산업정책이 됐다”며 “데이터·AI 기반 제조의 확산으로 국가 간 경쟁이 제조데이터 인프라 수준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급망 재편과 탈탄소, 디지털 전환 등 외부 변화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우리 산업 내부의 공유 기반을 시험하는 과정”이라며 “이 변화 속에서도 산업공유지를 지켜내는 것이 곧 제조업 경쟁력을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주요국의 대응도 소개됐다. 독일은 ‘Manufacturing-X’와 ‘Catena-X’ 프로젝트를 통해 제조 데이터 표준화와 공유 인프라를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세액공제·관세 정책을 활용해 첨단 제조설비의 자국 유치를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넘어 2035·2049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고, 일본은 디지털청을 중심으로 아날로그 기반 산업을 디지털화하며 로봇 자동화를 병행하고 있다.

국내 현실에 대해서 오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도입한 기업이 많지 않고, 도입하더라도 지속 활용률이 낮은 구조가 문제”라고 짚었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4차 산업혁명 기술 활용률은 19.6%(2023년 기준) 으로 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

특히 오 연구위원은 “국내 중소 제조업의 상당수는 단일 공정 중심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노후 설비 의존도가 높다”며 “새로운 첨단 장비를 무리하게 도입하기보다 기존 라인과 장비를 개조·고도화하는 레트로핏(retrofit) 방식의 현장개선이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개선이 확산될 때 산업공유지는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축적된 역량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오 연구위원은 중소 제조업의 첨단 전환을 위해 △현장개선 중심의 첨단화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공동 인프라 구축 △AI·로봇 기술 도입의 지속성 확보 △혁신투자와 신용성 연계 강화 등 4대 과제를 제안했다.

그는 “AX·DX를 맹목적으로 좇기보다 한국 제조업의 강점인 축적된 현장 역량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산업공유지는 단순한 공장이 아니라 대·중소기업이 함께 구축한 집단적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레트로핏  Retrofit : 레트로핏은 기존 설비나 공정을 완전히 새로 짓지 않고, 첨단 기술을 덧붙여 기능을 고도화하는 개조형 혁신 방식을 말한다. retro(되돌리다)와 fit(설치하다)의 합성어로 노후화된 설비를 AI·센서·로봇 등과 결합해 성능을 개선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제조업 현장에서는 새로운 스마트공장 구축보다 기존 라인의 일부를 디지털화하거나 자동화 장비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특히 중소 제조기업이 자본 부담 없이 첨단화를 추진할 수 있는 현장 실용형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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