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 정년 논의와 현장 간 구조적 간극 뚜렷
고령인력 운용·안전·임금 모두 ‘일률 적용’과 충돌
직무별 수요 반영 가능한 재고용이 中企 현실 해법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9일 발표한 ‘고용연장 관련 중소기업 의견조사’는 최근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중소기업 현장의 구조와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는 고령인력 활용 제도에 대한 중소기업의 실제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정년제를 운영하는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진행된 것으로 중소기업계가 앞으로 사회적 대화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취지였다.

같은 날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는 김지형 신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방문해 김기문 중기중앙회장과 중소기업계 고용노동 현안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이번 중소기업 의견조사의 의미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
이번 의견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중소기업의 86.2%가 선별 재고용을 선호한 이유는 단순한 인건비 문제를 넘어 인력구조·생산현장 안전·채용 생태계가 모두 엮여 있기 때문이다.
정년연장이 ‘일률적 제도개편’이라면 선별 재고용은 ‘현장 맞춤형 운영’이라는 점에서 중소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에 가깝다.
생산 현장의 고령화 부담
중소기업계가 정년연장을 하기 어려운 가장 이유는 고령인력 구조가 생산성과 안전관리 문제와 직접 맞물리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정년연장을 할 경우 중소기업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요인은 인건비 증가(41.4%)지만, 그 다음으로 높은 항목이 산업안전·건강 이슈(26.6%)였다. 특히 제조업은 이 비율이 34.4%로 전체 대비 더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고령근로자의 사고 발생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지는 중소기업 생산현장의 특성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안전관리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고 설비 자동화율도 대기업보다 낮아 고령근로자가 장시간 현장에 머물 경우 안전리스크가 바로 비용과 책임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이 ‘세대 균형 채용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정년연장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중요한 사항이다.
이번 조사 결과 15.8%의 기업이 ‘청년 등 신규채용 기회 감소’를 우려했으며, 지식기반서비스업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다(22.9%). 이는 고령근로자가 자연스러운 인력 순환을 막을 경우, 신규 인력 투입이 지연되고 디지털 전환·AI 활용 등 새로운 기술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청년채용은 기업의 장기적 투자 성격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이 이 구조를 경직시키면 혁신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제계의 공통적 고민이 반영된 걸로 보인다.
이밖에도 업종별 ‘고용연장 필요 직무’가 극명하게 다른 점도 정년연장 방식이 중소기업에 잘 맞지 않는 이유로 손꼽힌다.

제조업은 92.7%가 ‘생산기능직’의 고용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일반서비스업은 일반사무직(45.8%), 지식기반서비스업은 연구개발직(47.6%)에서 수요가 높았다. 다시 말해 정년연장은 고령인력을 전 직종에 동일하게 적용하지만, 실제 수요는 직무별·업종별로 완전히 다르다는 걸 방증한다.
반면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선별 재고용은 직무별 필요성과 근로자의 건강·성과를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업종별로 다층적인 직무 구조에 훨씬 부합하다는 평가다.
더 중요한 현실적인 벽이 있다. 바로 ‘임금조정의 제약’이다. 재고용된 근로자의 75.7%는 ‘정년 시점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이는 이미 중소기업이 고령근로자에 대한 임금 조정 여력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정년연장을 도입하면 임금은 기존 계약이 유지되고 조정 시 근로자 과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임금 구조의 경직성이 심화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제조·서비스 중소기업은 매출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금 구조를 연령대별로 장기적으로 고정하기 매우 어렵다. 이렇기 때문에 현장에선 자연스럽게 ‘새로운 계약을 통한 임금 유연화’가 가능한 선별 재고용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규채용·기술전환 대응력 약화
정년연장이 어려운 구조적 원인은 중소기업의 인력 수급에서도 확인된다. 이번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64.8%가 “필요 인력을 적기에 채용한다”고 답했지만, 제조업은 59.6%로 다른 업종보다 채용이 더 어려웠다.
적기 채용이 어렵다고 답한 기업들은 낮은 임금 수준(27.8%), 열악한 근무환경(22.2%), 지원자 부족(22.2%)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이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현재 진행형이며 정년연장으로 고령근로자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고질적인 중소기업 채용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책 수요에서도 이번 조사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은 고령인력 고용지원금(88.5%), 조세지원(85.2%), 사회보험료 지원(73.7%) 등 직접적 비용 경감 대책이었다.
뒤집어 해석하면 중소기업이 정년연장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 부담을 해소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경우 고령인력 활용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그 방식이 ‘법정 정년 의무화’가 아닌 ‘유연한 재고용’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소기업 현장의 일관된 메시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