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실적 견인, 1년새 영업이익 세배↑
기술형·현장형 CEO 적재적소에 배치
자율경영모델 구축, 성장엔진 풀가동

서비스사업으로 체질 개선, 위기극복
내년엔 ‘재무적 승계시나리오’ 구체화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0월 27일 경북 경주시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0월 27일 경북 경주시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선 회장 ‘성공보고서’

2025년 11월 3일, HD현대는 연결 기준 매출 18조2243억원, 영업이익 1조7024억원을 공시했다. 지주사 출범 이후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9.8%, 영업이익은 무려 294.5% 증가했다. 

조선(영업이익 1조0538억원)과 전력기기(2471억원)가 실적을 견인했고, 정유는 3분기 영업이익 1912억원으로 뚜렷한 흑자 전환, 건설기계는 1432억원으로 반등했다. 한쪽이 끌고 다른 쪽이 받치는 ‘균형 성장 구조’가 되살아난 것이다.

시장은 이를 정기선 체제 1년, 즉 수석부회장 체제 1년(10월 회장 승진)의 ‘성공 보고서’로 평가한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번 실적의 배경에는 정기선 회장이 설계한 구조적 전환과 인적 네트워크 재편이 자리한다.

정 회장은 2025년 11월 말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 합병을 마무리하고 12월 1일 통합 법인 출범을 앞두고 있으며, 이어 2026년 1월 건설기계 양사 통합(HD건설기계) 출범도 예정돼 있다. 그는 조직의 병렬성을 수직 구조로 재정렬해 기술·인력·서비스 네트워크를 하나의 체계로 묶는 통합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는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구조 혁신이다. 동시에 상법 개정으로 ‘3% 룰’과 집중투표제가 상수화된 상황에서 HD현대의 합병 중심 전략은 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이는 제도 적응형 전략으로 읽힌다.

이번 실적은 단순히 시장 호황의 결과 덕이 아니다. 정 회장은 지난 1년간 ‘사람과 체질을 바꾸는 실험’을 해왔다. 그는 사업의 성과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신념 아래, 기술·재무·현장·기획의 핵심 인재들을 전면에 세웠다.

 

사람으로 증명한 경쟁력

조직을 기능 중심이 아닌 ‘책임형 인재 구조’로 재편하며 각 부문의 전문성을 갖춘 리더들이 주도하는 자율 경영 모델을 구축했다. HD현대가 조선, 전력기기, 정유, 건설기계, 신사업까지 각 분야에서 기술형·현장형 CEO들을 일제히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역량은 HD현대의 구조적 경쟁력을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엔진이 됐다.

HD한국조선해양의 새 수장 김형관 사장은 30년 넘게 조선 기술 현장을 누빈 엔지니어형 CEO다. 그는 HD현대삼호 시절 자동화혁신센터를 설립해 용접·도장 공정에 로봇 시스템을 도입하고 생산라인을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했다. 생산성은 20% 이상 개선됐고, 근로환경도 크게 나아졌다.

2019년 적자 상태였던 HD현대삼호를 흑자 직전까지 끌어올린 뒤, 2022년 HD현대미포 대표로 옮겨 LNG·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선종 확대에 성공했다. 미포는 2023년 매출 4조6301억원, 영업이익 885억원으로 턴어라운드했다.

내년부터 그는 HD한국조선해양 공동대표로서 조선소 자동화와 FOS(Future-Oriented Shipyard) 구축을 이끈다. 연구실의 로봇을 조선소의 생산력으로 바꾼 기술 리더십이 HD현대 조선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상균 부회장은 40년간 HD현대의 생산 라인을 지켜온 현장형 리더다. 1983년 현대중공업 입사 후 선박 건조 현장을 거쳐, 2020년에는 중대재해 국면에서 안전·품질 체계 정비로 현장 신뢰를 복원했다.

이번 인사로 그는 통합 HD현대중공업의 공동대표(생산·안전·방산 총괄)로 선임됐다. 그는 MASGA(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HD현대의 글로벌 방산 네트워크를 북미로 확장하고 있으며, 조선을 국가 전략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안전과 품질을 병행하는 그의 운영 방식은 HD현대 조선의 리스크를 완화하는 핵심 변수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0월 27일 경북 경주시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10월 27일 경북 경주시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과 조율, 재무와 전략의 이중 축

금석호 사장은 2001년 현대중공업에 합류해 인사·홍보·기획을 두루 거친 조직통이다. 권오갑 명예회장의 ‘그룹 쇄신 TF’에서 구조조정 실무를 담당했고, 2014년 이후 비주력사 매각과 자산 효율화 작업을 주도했다. 이번에 그는 통합 HD현대중공업의 공동대표(재경·인사·자산·동반성장 총괄)로 선임됐다.

그의 과제는 무겁다. 각 조선소의 ERP·생산정보·협력사 계약 시스템을 통합하면서도 노동조직과 지역사회의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 그는 현장과 본사의 리듬을 일치시키는 통합 경영을 통합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이 부회장이 생산과 안전의 축이라면, 금 사장은 ‘통합과 조율의 중심축’이다. 두 사람의 조합은 2035년 매출 37조원이라는 장기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기둥이다.

조영철 부회장은 HD현대의 대표적 재무통이다. 오일뱅크 인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건설기계 PMI까지 그룹의 주요 M&A를 모두 지휘했으며, 2014년 그룹기획실 설립 멤버로서 권오갑 명예회장과 함께 지주사 체제 전환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정기선 회장의 재무적 조력자이자 전략 파트너로, 자금 배분·투자 효율화·시장 신뢰 구축을 동시에 챙기며 HD현대의 재무 리스크를 관리한다.

 

‘조선은 플랫폼 산업’ 철학 현실화

내년에는 지분 승계 문제를 중심으로 ‘재무적 승계 시나리오’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정몽준 26.6%, 정기선 6.12%로 분리된 지분 구조를 단계적으로 통합하며, 배당정책과 지분매입 병행이 유력하다.

HD현대일렉트릭의 조석 부회장과 김영기 사장은 정책감각형 CEO와 기술형 CEO의 대표 조합이다.

조 부회장은 산업부·한수원 출신으로 2020년 취임 이후 일렉트릭의 매출을 83%, 영업이익을 820% 끌어올렸다. 수출 비중은 70%를 돌파했고, 북미·유럽 초고압 변압기 시장의 납기 물량은 이미 2028년까지 소진됐다.

김영기 사장은 청주 중저압차단기 신공장과 미국 앨라배마 2공장(3968억원 투자)을 직접 챙기며 현지화 체계를 구축 중이다. 북미 765kV 초고압 시장을 겨냥한 국내 기업 선도급 생산기반 구축이 목표다.

조 부회장은 지난 경주 APEC CEO 서밋에서 ‘전력망·희소광물·디지털’을 글로벌 성장의 3대 축으로 제시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더 이상 부품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 시대의 인프라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 중이다.

이처럼 정기선 회장의 리더십은 위기와 기회의 경계에서 진화해왔다. 2014년 그룹이 3조 원대 적자를 냈을 때 그는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서비스 사업으로 체질을 전환했다. 2016년 선박 서비스 부문을 분리해 HD현대마린솔루션을 출범시킨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이후 그는 구조 효율화와 기술 혁신을 병행하며 “조선은 제조가 아니라 플랫폼 산업”이라는 철학을 현실화했다. 정기선 체제의 진짜 경쟁력은 실적이 아니라 체질,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정기선의 퓨처 빌더 핵심은 中企협력망 고도화 

정유와 석유화학 부문은 여전히 변곡점 위에 있다. HD현대오일뱅크가 2분기 적자를 기록했으나 3분기 정제마진 상승으로 1912억원의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반면 HD현대케미칼은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구조조정 압박을 받으며 롯데케미칼과의 납사분해설비(NCC) 통합을 논의 중이다. 이는 공급망과 재무건전성 간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건설기계 부문은 경기 둔화 속에서도 인도·브라질·호주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완만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HD현대는 2026년까지 부품·서비스 매출 비중을 30%로 높여 ‘서비스형 산업기계 기업’으로 전환하려 한다.

방산과 특수선은 그룹 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주원호 사장 승진 이후 HD현대는 군함 등 방위형 선박 중심의 고부가 선종에 집중하고 있다. MASGA 프로젝트 참여, 미 해군 협력 확대 등 ‘글로벌 방산 동맹 구조’를 구축 중이다. SMR(소형모듈원전)과 로봇은 미래 산업의 쌍두마차다.

HD현대는 올해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부유식 SMR 설계 인증을 받았고, 테라파워와 협력해 기자재 공급망을 확충하고 있다. HD현대로보틱스는 국내 산업용 로봇 시장점유율 1위로, 물류·배터리·조선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 회장이 말한 “산업의 또 다른 두뇌”가 바로 이 로봇 사업이다.

조선과 전력기기 호황은 협력 중소기업에도 기회를 열었다. 다만 자동화가 확산될수록 협력사는 정밀가공·검사·시운전 등 고부가 영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HD현대가 강조하는 ‘퓨처빌더(Future Builder)’는 협력사 생태계의 질적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다. 중소기업에게 요구되는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 기술 전환 대응력이다. 조선 로봇자동화·AI 전력망·피지컬 AI 등 핵심 사업은 모두 협력사의 데이터 활용 능력을 전제로 한다.

둘째, 품질·인증의 글로벌화다. MASGA 프로젝트를 비롯한 해외 조선·방산 사업은 ABS·DNV 등 국제 인증이 필수다. 셋째, 재무적 내구력이다. 장기 프로젝트 선투자 구조에 대응하려면 상생결제·협력펀드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결국 퓨처빌더란 HD현대 중심 생태계에서 중소기업이 기술 주체로 서라는 요구다. 단순 하청을 넘어 설계·데이터·품질을 함께 책임지는 기업만이 정기선 체제가 여는 AI·에너지 시대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김기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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