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재정비’ 테마 여행지 5곳
주인도 없고 불마저 꺼진 이색 무인책방
일상서 쌓인 삶의 더께 벗겨내는 수도원
교도소 독방 같은 공간서 만끽하는 자유
‘육지 속 섬’ 찾아 만나보는 안동 진맥소주
고요·고통 오가며 마주하는 나의 진면목

익숙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낯선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면, ‘불편한 여행’은 여행의 진짜 가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불편한 여행은 말 그대로, 편안함을 추구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자신을 놓아두는 방식이다. 하루 종일 들여다보던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고립된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여행은 얼핏 불편해 보이지만, 고요한 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면의 리듬을 재정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디지털 세상과 정보 과잉,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에게 ‘불편’이 하나의 쉼표로 작용하는 것이다. 편하지 않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다독이는 힘을 얻는 여행, 그 여정이 올여름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공주 가가책방, 5평 책방에서 만나는 오만가지 인생

충남 공주의 가가책방
충남 공주의 가가책방

간판도 사람도 없이, 불마저 꺼져 있어 손님이 직접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야 하는 공주 가가책방은 무인 책방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비밀번호는 책방에 적힌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알아내야 하고 메모지들 사이에 감춰진 스위치를 찾아 조명과 에어컨을 켜는 것까지 모두 손님 몫이지만 방문객들에겐 이런 상황이 더 재미있다.

스위치를 찾으며 책방 가득한 메모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또 다른 독서 같다.

CCTV도 없는 이곳은 ‘최소한의 관여’를 통해 손님이 주인의 마음이 되도록 한다. 이 공간이 ‘좋았다면’ 내는 5000원의 입장료도 잠시간 임시주인이 됐던 손님들의 권유에 의해 생겼다.

도어락이나 인터넷도 안되는 불편한 이 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이 모두가 상생하는 방법임을 느껴서다.

책방에서 한 블록만 걸어 나가면 제민천변을 따라 ‘블루프린트북’, ‘느리게, 책방’ 등의 또 다른 지역 책방을 만날 수 있다. 나태주 풀꽃 문학관과 공산성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 충남 공주시 당간지주길 10

 

고요 속을 메우는 쉼과 성찰의 시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경북 칠곡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경북 칠곡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문명의 소음과 일상의 번민에 지친 여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비단 ‘템플스테이’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에도 영성 성찰의 수도원이 있는데 경북 칠공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그 중 한 곳이다.

왜관수도원에서는 일반 방문객들도 참여 가능한 피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문화영성센터를 운영 중이다. ‘피정’이란 평소 생활하던 곳에서 잠시 떠나 성당 또는 수도원에 머물며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말한다.

참가자들은 수도원 대성전에서 수사들도 참여하는 아침기도와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등에 함께할 수 있다.

문화영성센터에서 하루를 지내보면 시간에 따라 빛의 각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혼자 묵상과 기도를 하기 좋은 장소가 많다. 특히 늦은 오후 경당에 앉아 있으면 길게 드리운 빛이 제단 뒤 고상 주변을 집중해 비추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한국 건축 거장으로 불리는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벽면 가득히 수많은 망치로 꾸민 대회의실도 독특하다. 신자 한 명이 오랫동안 수집해 기증한 망치들로 벽면을 꾸민 곳으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기본 신념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잘 표현했다.

- 경북 칠곡군 왜관읍 관문로 61

 

홍천 행복공장, 나 홀로 독방에서 보내는 하루

강원 홍천의 행복공장
강원 홍천의 행복공장

강원도 홍천군에 자리한 행복공장에는 1.5평 남짓한 독방에 하루 동안 혼자 머물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검사와 변호사로 활동했던 고 권용석 씨가 연극인 아내 노지향 원장과 함께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설립한 공간이다.

행복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계단 옆으로 작은 방들이 조르륵 어깨를 맞댄 모습이 흡사 교도소 같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좁은 독방에 자신을 가두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어른 둘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작은 방 안엔 커튼으로 분리한 화장실부터 작은 세면대와 좌식 탁자, 요가 매트, 다기 세트 등 갖출 건 다 갖췄다. 몸은 독방에 갇혔지만 스마트 폰도 TV도 시계도 없는 방에서 정신은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몇 시인지도 모를 시간에 잠에 들었다 새벽 6시를 알리는 오르골 소리가 들리면 108배 명상이 시작된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돼 일상으로 복귀한다. 프로그램은 보통 매달 첫째 주말에 진행되나 사정상 변동 가능하다. 참가비는 1박 2일 기준 15만원이다.

- 강원 홍천군 남면 남노일로 674

 

백두대간 속 고립된 섬 맹개마을

경북 안동의 맹개마을
경북 안동의 맹개마을

경북 안동의 깊은 골짜기에는 트랙터로 강을 건너야만 방문할 수 있는 맹개마을이 자리한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뒤로는 청량산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여러 봉우리를 두른 이곳은 육지 속 섬과도 같다. 그만큼 접근이 불편하지만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이 이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친구에게 언급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선사한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맹개마을은 약 20년 전, 김선영·박성호 부부가 귀농해 밀 농사를 지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는 국내 최초의 밀소주인 ‘안동 진맥소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도 유명하다.

마을에서는 진맥소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약자만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트랙터 타기 체험, 시음, 양조장 시설 견학 등을 포함한다.

속세를 벗어나 하룻밤 쉬어가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맹개마을은 소수의 방문객이 고요한 하룻밤을 누릴 수 있는 숙소도 제공한다. 찾아오기 어렵다는 점을 역이용해 그 누구도 쉽게 방문할 수 없는 숙소를 구현해 더욱 흥미롭다.

- 경북 안동 도산면 가송길 162-135

 

불수사도북 종주 산행, 한여름에 즐기는 숲식사우나

서울 인근의 불수사도북 5대산 종주
서울 인근의 불수사도북 5대산 종주

모든 것이 갖춰진 편리한 도심 속, 일상의 안락함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와 고통을 오가며 나를 마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불수사도북’ 종주.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다섯 산의 머리글자를 딴 이 코스는 총거리 약 45km, 누적 상승고도 약 4000m, 종주에 스무 시간 이상 걸리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불수사도북 코스는 대게 공릉동 백세문에서 출발해 다섯 산의 정상을 찍은 뒤 불광동 대호아파트로 하산하는 길을 정석으로 친다. 그렇다고 이 코스가 원칙은 아니다. 능선을 타고 다섯 산의 정상을 쉬지 않고 오르는 게 산행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선 시간과 체력 안배는 기본, 평소 뒷산 산행 등을 통해 산의 환경과 지형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섯 산을 나눠서 한 산씩 밀리 올라보는 것도 완주에 도움이 된다. 이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방풍(방수) 재킷과 헤드램프, 여분의 보조배터리, 휴대전화와 지도, 충분한 물과 행동식을 소지하는 것도 좋다.

여유가 있다면 종주 도전 전 북한산우이역 부근의 ‘우이동 산악문화 H·U·B’를 방문해보자.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개 봉을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업적을 보며 종주 의지를 다잡아 볼 수 있다.

- 서울 북부, 경기도 고양시·양주시·의정부시

 

- 신다솜 칼럼니스트 shinda.write@gmail.com
- 사진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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