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물들기 전, 이맘때쯤엔 가을 억새가 찬란하다. 9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억새는 10월 중순 절정을 이루며 11월 초까지 은빛 향연을 펼친다. 고동색이나 갈색빛을 띠는 갈대와 달리 하얀빛을 띠는 덕에 억새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어디든 황홀경이다.

그중에서도 서울 상암 하늘공원, 울산 울주 간월재, 합천 황매산, 보령 오서산, 제주 산굼부리는 다양한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억새 명소다. 도심 한복판에 있어 쉽게 이를 수 있는가 하면 즐거운 축제의 장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연이 만든 천연 야외 식물원과 산 능선과 바다가 어우러진 비경까지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들이다.

 

보령 오서산 :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1 

해발790m, 서해바다 ‘등대산’

보령8경 절반의 비경 ‘한눈에’

보령 오서산 [국립자연휴양림]
보령 오서산 [국립자연휴양림]

충남 보령, 홍성, 청양에 걸쳐 있는 오서산 역시 가을이면 간월재 못지 않게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경기 포천 명성산, 강원 정선 민둥산, 전남 장흥 천관산, 울산 울주 간월재와 더불어 전국 5대 억새 명소로 일컬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서산 능선에 펼쳐진 억새군락은 보령8경 중 하나다. 멀리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 외연열도의 풍경까지 품어 능선에 오르기만 해도 보령8경 절반의 비경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평야가 대부분인 서해안에서 보기 드물게 높은 해발(790m)을 자랑하는 오서산은 서해 바닷길의 등대산으로도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서해 바다가, 동쪽으로는 홍성과 청양 일대의 들판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오서산 억새군락지로 향하는 코스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이르는 길은 오서산자연휴양림 코스다. 관리사무소에서 월정사 방면으로 곧장 오를 수 있지만 산림문화휴양관 왼편의 숲체험로에서 월정사로 이어지는 길이 더욱 운치 있어 좋다. 짧은 대신 경사가 가파른 점은 참고해야 한다.

 

상암 하늘공원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하늘공원로 95

도심풍경·억새밭 오묘한 조화

가을전령사 코스모스도 눈길

상암 하늘공원.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상암 하늘공원.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상암동 하늘공원은 80년대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매립한 곳이다. 서울시에서 2002년 월드컵과 새천년을 기념, 생태환경을 복원할 목적으로 조성해 2002년 5월 개원했다. 평화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과 함께 월드컵 경기장 주변 5대 공원을 이룬다.

하늘공원은 그중에서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과 한강,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서울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하늘공원 억새밭 관전 포인트가 여기 있다. 주변이 모두 자연으로 둘러싸인 여타 억새군락지와 달리 도심 한복판에서 바쁘게 흘러가는 도회지의 모습과 광활한 억새밭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건 하늘공원이 유일할 터. 약 5만7000평에 이르는 억새밭이 매립지의 척박한 환경을 자연으로 복원시킨 변화의 상징임을 알고 나면 은빛 물결이 더욱 반짝이는 듯하다. 가을을 한층 알록달록한 빛으로 밝혀주는 코스모스, 핑크뮬리 등의 꽃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맹꽁이 전기차를 타면 계단을 오르지 않고 10분 만에 정상 근처까지 이동할 수 있는데, 체력이 된다면 걸어 올라갈 것을 추천한다. 공원으로 향하는 중반부에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조성돼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느끼며 산책까지 즐길 수 있다.

 

울주군 간월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간월산길 614

10만평 달하는 억새평원 장관

‘영남알프스’핵심 구간 입소문

울주 간월재.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라이브스튜디오
울주 간월재.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라이브스튜디오

경남 밀양시와 양산시, 울산광역시의 울주군에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거대한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신불산, 영축산, 운문산, 천황산 등 육중한 산들의 능선이 마치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 해 영남알프스라 불리기도 한다. 간월재는 억새 산행 1번지로 손꼽히는 영남알프스에서도 핵심 구간으로 통한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억새가 피는 가을이면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간월재는 신불산과 간월산이 만나는 자리로, 두 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언덕에 무려 33만㎡, 약 10만평에 이르는 억새평원이 자리한다. 전국 최대 규모다. 매년 10월이면 이 광활한 억새밭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산행이 필수지만 산을 오르며 마주하는 거대한 은빛 물결은 등산의 고단함을 휩쓸어 가기에 충분하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바람에 흔들리는 무수한 억새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근심 걱정이 한없이 작게 느껴질 만큼 경이롭기까지 하다.

배내2 공영주차장 입구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평탄한 길이 이어져 등산 초보자도 부담없이 간월재까지 다다를 수 있다. 빨리 걸으면 1시간 30분, 여유롭게 이동하면 2시간에서 2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제주 산굼부리 :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오름 전체가 억새물결 ‘황홀경’

분화구 내려다보는 재미 쏠쏠

제주 산굼부리.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제주 산굼부리.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제주 중간산 지역의 산굼부리는 새별오름, 따라비오름과 함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억새 군락지로 통한다. 다른 오름과 달리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오름 전체가 억새로 덮여 있는 풍경이 빼어나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억새 물결, 그 뒤론 한라산과 오름의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제주의 가을 풍경과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는 분화구 안쪽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분화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됐을 만큼 독특하다. 백록담보다 깊지만 백록담처럼 호수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 분화구에 틈이 많아 물이 모두 스며드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내부 높이에 따라 서식하는 식물군이 달라지기도 하며 일조량 차이에 의해 남북이 서로 다른 다양한 식물 분포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이 만든 천연 식물원인 셈이다. 다른 오름과 달리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산굼부리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광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

산책로도 잘 조성돼 있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꽤 평탄한 편이어서 어린아이, 어르신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도 있다.

 

합천 황매산 :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공원길 331

10월5~13일 억새축제 한마당

일몰·일출광경은 예술 그 자체

합천 황매산.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합천 황매산.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두드림

황매산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과 대병면, 산청군 차황면의 경계에 위치한 소백산맥의 마지막 봉우리로 해발 1113m 높이의 명산이다.

봄엔 진분홍빛 철쭉으로 뒤덮이고 가을엔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억새가 절정인 기간에는 황매산억새축제가 열린다. 올해 황매산억새축제는 10월 5일부터 13일까지 아흐레 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축제 기간에는 초청 가수의 무대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황홀한 풍경을 자랑하지만, BTS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별빛언덕과 산불감시초소 전망데크가 특히 아름답다. 일출과 일몰 시간에 가면 특별한 촬영 장비 없이도 작품과도 같은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억새군락지로 올라가는 길에 조성된 잔디광장에는 그늘막, 빈백, 테이블 등이 있어 가을날의 피크닉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교통약자를 위한 전동카트 투어를 신청하면 70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미취학 아동도 편하게 억새군락지를 관람할 수 있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shinda.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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