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뿌리·IT업종별 중소기업 대표들의 호소
“이미 근로자가 노동정책 전문가… 과잉노동은 옛말”
시차출퇴근·재택근무 등 中企도 고용환경개선 총력

일감 몰리는 기간에는 야근·주말 일해도 납기 빠듯
유연화는 필수조건… 직원도 더 일하고 더 벌기 원해

제조 中企 기피하는 MZ세대의 ‘개편 반발’에 허탈감
본질은 뒷전, 여야 정쟁으로 번지며 인력난 해소 요원

“MZ세대를 비롯한 노동계가 콕 집어 과로사까지 주장하는 주69시간 근무시간제라는 말 자체가 현장에선 결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근로시간이라는 게 회사가 강제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근로자가 거부하면 그만이에요.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대다수 중소기업 현장에선 일할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합니다. 근로시간 논쟁으로 마치 중소기업 사장들이 정당한 보상 없이 근로자에게 과잉 노동을 시키려 한다는 왜곡된 시선이 커지고 있는데, 진심으로 안타깝습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집중되고 있는 52시간 근무제 개편 논란과 관련해 <중소기업뉴스>가 제조·유통·IT업종의 중소기업 대표들에게 직접 의견을 묻자 이와 같은 호소가 쏟아져 나왔다.

실제 대다수 중소기업 대표들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서도 정상적인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현행 주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면서도 근로자들에게 합당한 보상과 각종 근로환경 개선 비용까지 지불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대구에서 정밀가공 뿌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부품·모발이식 분야까지 사업확장을 하고 있는 주식회사 오대의 김창현 대표는 자동차 부품 분야는 매년 3~6월 일감이 집중해서 몰리는 특정 기간이 있는데 납품 기한을 제때 맞추려면 현행 주52시간 근무제 개편은 유연화될 필요가 있다주로 시급제를 적용하는 생산 현장직은 일한 만큼 정확히 그 보상을 받기 때문에 근로자들도 특정 기간에 일감이 많고 집중 근로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조 중소기업의 생산현장에서 상당수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이번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의 골자인 일이 몰릴 때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를 더 반기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이탈 우려 고조

문제는 가뜩이나 일선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선 일손이 절대 부족인 상황인데 무턱대고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일부 여론에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근로자들마저 뿌리업종이나 철근 제조와 같은 현장을 기피하려는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뿌리업종 중소기업 대표는 근로시간 논쟁 뉴스를 접한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 일감이 많을 때 야근을 할 수 없게 되면 앞으로 급여가 크게 줄어드는 거 아니냐고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한다외국인들마저 제조 현장을 떠나면 어떻게 회사를 운영하냐고 걱정을 토로했다.

이처럼 대다수 제조 중소기업은 인력을 대체하거나 신규 인력을 수급하는 게 정말이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나 이번 제도 개편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 중소기업 대표는 “MZ세대는 뿌리업종이나 일선 제조현장 취업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의 내국인 근로자는 정년도 훌쩍 지난 60세 이상이 대다수라며 “MZ세대가 근로시간 대폭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댈 수 있는 곳은 일부 대기업이나 공기업이지 중소기업 현장과는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IT 인력고용, 中企엔 언감생심

한편에선 이미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정부의 노동정책과 규제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전문가수준이고 정부의 근로 감독도 그 어느 때 보다 철저하기 때문에 과거 산업화 시대처럼 경영자가 근로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무시하고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강태원 데이터누리 대표는 “IT·SW 업종의 주된 인력은 대게 20~40대 초반이고 정보 습득과 이해도가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는 근로시간과 임금산정은 있을 수 없다최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예전처럼 과하게 몰아치는 야근 문화도 사라졌고 대다수 IT 업체들이 주52시간제를 잘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근로시간 논쟁이 불거지면서 일부에선 공짜 야근 임금체불 근로시간 산정 회피 등의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중소기업계는 현장의 실제 경영 상황과는 동떨어진 이슈라고 단언한다.

데이터누리는 MZ세대들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시차출퇴근제는 물론 재택근무를 상시화하고 있다. 강태원 대표는 “IT 중소기업에 들어온 신입 개발직의 대다수는 2~3년 일을 배운 뒤에, 다음 스텝으로 IT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쪽 이직을 많이 고려한다판교에 있는 IT 대기업과 절대적인 근무환경 격차가 나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선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근무 복지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MZ 근로자들은 경영자보다 적극적으로 각종 정부의 고용지침을 적시 활용하고 있다. 한 예로 일부 젊은 취업자들은 이직을 하는 적정한 때를 2~3월로 손꼽기도 한다. 그 이유는 해가 바뀌어 새로 발생한 연차를 모두 소진하고 퇴직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거대 플랫폼 대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종료하고 일부는 구조조정도 하면서 IT인력들이 대거 채용시장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에겐 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간혹 대기업에서 한 분야만 집중해야 하는 단편적 업무에 염증을 느끼고 중소기업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역할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 인력이 지원하는 경우는 있어도 대부분 IT인력의 경력이동 경로는 중소기업대기업편향적이다.

그럼에도 IT·SW 프로젝트의 특성상 유연한 근로시간은 이들 중소기업들에겐 절실한 제도개선 사항이다. 강태원 대표는 정부와 국회가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고 근로시간 개편을 신속하게 마무리 지어야 그에 맞는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현재 시간 논쟁에 매몰돼 그 취지가 훼손되는 상황에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본말전도된 주52시간 개편 현주소

레미콘·아스콘 품질 시험기기를 전문 생산하는 흥진정밀은 일찍부터 직원들의 저녁 있는 삶을 챙겨오고 있다.

27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정태련 흥진정밀 대표는 “2012년 가업승계를 시작한 이후 오후 530분 퇴근을 철칙으로 정하고 잔업(야근) 없애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잔업수당을 받으며 야근하는 업무 풍토를 타파하기 위해 530분에 퇴근을 해도 기존에 받던 임금보다 손해가 나지 않게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8시간만에 할 수 있는 하루 일과를 10시간 동안 천천히 오래 일하자는 업무방식을 혁신한 것이다. 흥진정밀도 제조업의 특성상 주문이 몰리다보면 잔업이 생길 수 있지만 1년에 몇 번 없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근로시간 원칙을 깬 적이 없다.

불필요하게 더 이상 야근할 이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정태련 대표는 근로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근로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는 일찍 퇴근하는 업무체계가 업무의 효율성을 올리고 다시 높은 성과급으로 보상을 받게 된다결국 직원들은 애사심도 커지고 장기근속의 효과까지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을 선도하고 있는 흥진정밀도 가장 큰 고민은 젊은 신규직원 채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제조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다는 걸 10년 넘게 실천하고 있어도 고질적인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는 한 발짝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태련 대표는 이번 근로시간 개편 논란에 대해 큰 틀의 규정은 있어야겠지만 기업과 근로자가 상호 자율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부와 국회가 ‘~하지 마라는 식으로 규제를 하는 건 기업들 입장에선 매우 불편한 건 사실이라며 게다가 근로시간이 여야(與野) 정쟁으로 번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 근로시간 개편의 취지인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제도개편으로 논의해 보자는 발전적인 노동개혁의 본질은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본말전도(本末顚倒)의 구덩이에 빠진 주52시간 근무제 개편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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