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만난 130명의 中企人]
예정시간 두배 넘겨가며 봇물 호소
일자리·투자 막는 규제 229건 전달
“수도꼭지 인증에만 매년 수천만원”

]中企 현장 애로에 화답한 정부]
한 총리 “중복·유사 규제는 신속통합”
환경표지인증 폐지 적극적 검토 약속
국무조정실 주도 통합 개선의지 밝혀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왼쪽)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정아 기자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왼쪽)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정아 기자

중소기업계가 환경·입지·인증·판로 등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를 막는 229건의 규제 개선과제를 엄선해 정부에 건의했다. 이에 정부는 기술발전에 맞춰 규제도 달라져야 한다며 적극적인 규제 개선 의지로 화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를 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소기업의 혁신과 생산성을 저해하는 현장 규제 사례가 연이어 쏟아졌다.

중소기업계는 이날 토론회에서 8개 모두 12건의 현장규제에 대해 어려움을 성토했다.

김포에서 수도꼭지와 샤워기를 제조하는 김명희 대정워터스 대표는 매년 KC, KS, 환경표지인증 등 수도꼭지 인증 수수료로만 2500만원이 나가고 있다환경표지인증은 분명 임의인증임에도 강제 조항처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 강요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중복된 인증제도를 과감히 통폐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제철 환경부 차관은 “KS, KC인증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환경표지인증은 녹색제품 구매 촉진에 관한 법에서 오히려 판매에 우선구매 혜택을 주려는 취지였지만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다이 기준을 폐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세 가지 인증이 별 차이가 없다면 통합하는 방안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특히 한 총리는 건의자인 김명희 대표의 건의 내용에 대해서 직접 규제해소 방안을 제시하고 해당 주무부처인 환경부에 제도개선을 재차 주문하는 등 인상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점심 걸러가며 열정 토론

이날 현장 건의에 나선 중소기업 대표들은 각자 정해진 건의 시간을 넘기며 한덕수 총리에게 오랜 울분을 쏟아낼 정도로 격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부와 대기업 입장에선 사소한 규제들로 보여질 건의 내용이 사실 중소기업의 존폐를 결정한 원흉이었다는 점에서 건의자들은 평상시에는 만날 수도 없는 정부 최고위 정책입안자들에게 현실의 고충을 알리고자 고군분투를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앞서 김명희 대정워터스 대표가 질의한 중복 인증 절차 문제다. KC, KS, 환경표지인증이 자꾸 보태지는 이유에 대해 김 대표는 정부 관계자가 퇴직후 인증 검사를 담당하면서 일감을 서로 나눠먹다보니 유사 인증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소한 인증 1개가 더해질 때마다 중소기업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규제 애로와 마찬가지로 중기중앙회가 사전에 엄선한 229건의 건의 내용 대부분도 사소하지만 치명적인중소기업 규제라는 것.

이 때문에 이날 中企대표의 건의-주무 부처 차관의 답변-총리의 답변으로 이어지던 각각의 토론은 재차 추가 질의를 던지는 중소기업 대표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심층 토론으로 발전해 가기 일쑤였다.

이는 당초 60분으로 예정됐던 현장 토론 시간이 한덕수 총리의 사전 점심약속까지 취소되면서까지 120분간 이어지게 된 배경이 됐다. 그만큼 참석한 중소기업 대표도, 총리도, 주무부처 관계자도 열성적인 태도로 토론회를 이어갔다는 평가다.

김복덕 한국전등기구LED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의 건의도 비슷한 애로였다. 그는 환경 유해성도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경부가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LED 판매 물량의 일부를 의무 수거하도록 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내년 1월 시행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평판형 LED 조명에 EPR을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호소했다.

2000여 개 국내 중소 LED(발광다이오드) 영세 조명업체는 내년부터 업계 전체 연간 영업이익(200억원)을 웃도는 265억원의 환경부과금을 부담해야 한다. 세계 유일한 환경 규제 때문이다.

늑장개선 질타한 한 총리

69000여 개 의료기기업체도 신설된 식약처 규제에 생존위기를 겪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 7월부터 의료기기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체온계 혈압계 콘택트렌즈 등에 대해서도 추적 관리가 가능하도록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제도를 시행했다.

신동진 한국의료기기유통협회장은 인공심장박동기 주사기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의료기기뿐 아니라 일반 제품까지 추적 관리하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의료기기 판매시장의 현실을 고려해서 공급내역 보고 품목을 축소해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권오상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은 공급내역 보고를 할 때 현장 의료기기 용어와 법령이 상이한 경우가 있다일단 현 법 시행 상황을 모니터하고 내년 71일 법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권 차장의 답변이 끝나자 한 총리는 내년 7월 법 개정을 기다리지 말고 올해 안에 살펴보라며 늑장 개선 의지를 보인 부처 관계자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덕수 총리의 주요 발언과 관련해 중소기업계는 정부 부처의 개별적인 규제개선이 아닌 국무조정실의 통합적이고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읽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한 총리는 부처별 차관 등 담당 관료들의 답변이 건의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자 직접 나서 신속히 통합하라” “올해 안에 법 개정 하라” “부처에서 검토해서 관련 중소기업 대표에게 회신을 줘라고 거듭 주문하는 장면이 계속 나왔다.

이와 관련해 토론회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역대 총리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행정 조치를 기대하게 만든 토론회였다국무조정실이 실질적인 부처별 정책과 제도의 통합 기구로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호평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