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부친·고교시절 감독 한마음
특정 포지션 집중훈련 방식서 탈피
잠재력 극대화 위해 오랜시간 인내

이도류 선언하자 비아냥·비판 비등
MLB 평정하며 최고스타 자리매김
LA다저스 이적 ‘7억불 사나이’등극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오타니 쇼헤이가 8회초에 LA다저스 승리의 쐐기를 박았다. 오타니 쇼헤이는 지난 3월 20일 저녁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에서 적시타를 쳐냈다. LA다저스의 2번 타자로 나선 오타니 쇼헤이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8회에 득점타를 때려내면서 팽팽했던 2대2 승부를 5대2로 벌렸다. 이 득점타로 LA다저스는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번 시즌에서 오타니 쇼헤이는 투수가 아니라 타자로만 나선다. 오타니 쇼헤이는 프로 투타 겸업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선 이도류라고 불린다. 쌍칼을 쓰는 사무라이에 빗댄 표현이다. 그렇지만 2013년 일본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데뷔한 이래 매년 이도류로 활약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몸 상태에 따라서 시즌에 따라 투수로만 혹은 타자로만 뛴 경우가 더 많았다. 투수나 타자로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2015년 일본 리그과 2021년 메이저리그에서처럼 투타 모두 폭발하는 해를 맞이했다. 그럴 때면 오타니 쇼헤이의 인기와 몸값은 하늘로 치솟곤 했다. 2024년은 오타니 쇼헤이한텐 다시 한번 축적의 해인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는 2024년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에서 올해 첫 안타를 쳐냈다.

 

야구 월드컵서 마무리로 우승 견인

오타니 쇼헤이가 세계 무대에서도 이도류의 가능성을 완벽하게 입증해 낸 건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었다. 2023년 3월 22일 마이애미에서 일본 대 미국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이 열렸다. 9회 초 일본이 3대2로 앞선 상황에서 미국의 공격이 이어졌다. 마무리 투수로 오타니 쇼헤이가 등판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3월 9일 열렸던 중국전에선 3번 타자였다. 타자였던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를 상징하는 투타 겸업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은 결코 만만찮았다. 겨우 1점차 승부였고 9회 초부턴 미국팀의 핵심 타선이 대기 중이었다. 오타니 쇼헤이는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동점 주자를 내보낸 것이다. 그런데 다음 타자한테서 병살타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세 번째 타자였다. 상대가 미국팀 주장인 마이크 트라웃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트라웃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3차례나 MVP에 뽑혔던 강타자였다. 게다가 오타니 쇼헤이와 마이크 트라웃은 LA에인절스의 동료 사이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아니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승부였다. 바꿔 말하면 마이크 트라웃은 오타니 쇼헤이 입장에선 실전에서 처음 상대해 보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결국 2스트라이크 3볼 풀카운트 상황까지 몰렸다. 오타니 쇼헤이는 마지막 승부구를 뿌렸다. 오타니 쇼헤이의 주무기인 스플리터였다. 오타니 쇼헤이의 최고 구속은 시속 165킬로미터에 달한다. 스플리터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진다. 풀카운트 상황의 타자 입장에선 알고도 방망이가 나갈 수밖에 없는 승부구다. 역시나 노련한 마이크 트라웃조차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삼진 아웃이었다. 일본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오타니 쇼헤이의 투타 겸업 플레이가 세계 야구 최정상에 선 순간이었다. 새로운 야구의 시대가 열렸다.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의 선수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선진 야구 시스템과 만나서 오타니 쇼헤이라는 선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고교 야구 수준에선 투타 겸업 플레이어를 종종 볼 수 있다. ­­어린 선수들 중엔 타자와 투수 양쪽에서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레벨에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구단도 이도류를 권하지 않는다. 선수도 이도류를 원하지 않는다. 프로에선 투수나 타자 어느 한쪽에서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는 프로 야구에서 어중강한 투수나 어중간한 타자는 설 자리가 없다.

사실 오타니 쇼헤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프로 리그에서 이도류 플레이어를 계속할 생각은 없었다. 오타니 쇼헤이는 당연히 투수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3 때 구속이 시속 160킬로미터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오타니 쇼헤이는 고3 때인 2012년 7월 일본 여름 고교 야구 대회엔 고시엔 지역 예선에서 시속 160킬로미터를 기록했다. 일본 고교 야구 최초 기록이었다. 오타니 쇼헤이 같은 광속구 투수가 타자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돼 보였다.

 

고교졸업 후 메이저리그 직행

­정작 오타니 쇼헤이한테 진작 눈독을 들이고 있던 일본 프로야구 스카우터들은 오타니 쇼헤이를 타자로 점찍고 있었다. 19세 오타니 쇼헤이는 투수로서는 아직 미완성이지만 타자로서는 이미 프로 수준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오타니 쇼헤이는 고2 때 어깨 부상을 당했다. 투수를 쉬고 대신 타자에 집중했다. 겨울 내내 타격 연습에 집중하고 돌아온 오타니 쇼헤이는 괴물 장타자가 돼 있었다. 고교 통산 56홈런을 때려버렸다.

겉으로 드러나는 홈런 성적만 보면 오타니 쇼헤이는 타자가 맞았다. 투수로서는 구속만 빨랐지 성적을 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타니 쇼헤이는 자신의 고등학교를 일본 고시엔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본인은 투수에 대한 미련이 있고 성적은 타자에서 나온 모순적인 상황에서 일본 프로 야구는 오타니 쇼헤이한테 투수냐 타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었다.

당시 LA다저스도 오타니 쇼헤이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LA다저스가 오타니 쇼헤이를 처음 발견한 건 고1 때인 2010년부터였다. LA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를 투수로 키울 작정이었다. 박찬호도 거쳐간 LA다저스의 투수 육성 시스템이면 오타니 쇼헤이를 괴물 투수로 만들 수 있었다. 실제로 오타니 쇼헤이도 고교 졸업 직후 메이저리그 직진출을 선언해 버렸다.

그런데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당시 19세였던 오타니 쇼헤이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성장판이 아직도 열려 있었다. 오타니 쇼헤이의 아버지 오타니 도오루는 사회인 야구선수였다. 큰 키에 비해 빈약한 덩치 탓에 프로 리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오타니 도오루는 어릴 적에 무리한 투타 훈련을 받은 탓에 성장판이 닫혔던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아들한텐 결코 무리한 훈련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오타니 쇼헤이 연합뉴스

한해 46홈런·156탈삼진 ‘두토끼’

오타니 쇼헤이는 중학교 때까진 아버지 오타니 도오루가 운영하는 리틀 야구단에서 플레이를 했다. 중학생 때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중학 엘리트 야구단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오타니 쇼헤이가 엘리트 야구 코스에 본격 진입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고교 감독인 사사키 히로시가 아버지 오타니 도오루와 같은 생각이었던 건 오타니 쇼헤이한텐 정말 행운이었다.

사사키 감독은 고교 3년은 오타니 쇼헤이한텐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봤다. 이미 이때부터 사사키 감독은 오타니 쇼헤이가 빅리거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자라고 있던 오타니 쇼헤이한테 투수나 타자 같은 특정 포지션을 집중 훈련시키면서 성장을 억제하고 기량만 키우는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가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

­­­프로 이도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도류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대부분 일본 프로야구 초창기였다. 그것도 이벤트성이 컸다. 오타니 쇼헤이는 자신의 전체 야구 커리어 내내 이도류 선수로서 활약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비판과 비아냥과 우려가 뒤섞였다. 오타니 쇼헤이가 프로 야구의 높은 벽 앞에서 결국 이도류를 버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결과적으로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도류 플레이어가 됐다. 오타니 쇼헤이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닛폰햄 파이터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다. 투수 오타니는 85경기에 등판해서 543이닝을 던졌다. 43승 15패 평균자책점 2.52를 기록했다. 타자 오타니는 통산 403경기에 출장했다. 평균타율 0.286에 48홈런과 166타점과 13도루를 기록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2015년 시즌에 다승과 평균자책점과 승률 1위에 올랐다. 투수로서 자타공인 실력을 인정 받았다.

오타니 쇼헤이는 특히 탈삼진율이 높았다. 1이닝 당 거의 1개의 삼진을 잡았다. 2016년 시즌에선 홈런을 22개나 때려냈다. 오타니 쇼헤이는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발휘했다. 타자로서는 홈런 타자고 투수로서는 삼진 투수가 된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가 이도류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어린 선수의 잠재력을 키워낸 일본 야구의 성장 플랜이 있어서 가능했다. 오타니 쇼헤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실패를 거울 삼아서 가능했다. 고교 감독 사사키 히로시가 오타니 쇼헤이의 먼 미래를 단기 고교 성적보다 우선시해서 가능했다. 프로 야구 감독 구리야마 히데키가 프로 이도류라는 창의적인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오타니 쇼헤이가 2024년 시즌에 LA다저스로 이적하면서 받은 7억 달러 개런티는 개인의 노력과 양질의 시스템이 만든 결과다. 오타니 쇼헤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가 빚어낸 괴물인 것이다.

2018년 시즌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오타니 쇼헤이는 7개 이상의 구단한테 러브콜을 받았다. 오타니 쇼헤이의 선택은 아메리칸 리그의 LA 에인젤스였다. LA다저스로 이적하면서 7억 달러의 사나이로 불리게 됐지만 사실 오타니 쇼헤이는 LA 에인절스에 입단할 때는 사실상 돈을 포기했다. 2년만 기다리면 2억 달러 계약도 가능했지만 2000만 달러에 만족했다. 대신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도류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기를 원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2018년 등장하자마자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았다. 22개 홈런과 63개 삼진을 잡아내며 이도류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줬다. 오타니 쇼헤이는 2018년 메이저리그 신인왕이 됐다. 문제는 2019년과 2020년 시즌이었다. 부상을 당하면서 투타 모두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다시 한번 투타 겸업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 시기에 오타니 쇼헤이는 그라운드에선 타자로서만 활약했지만 불펜에선 투수 훈련도 멈추지 않았다. 그 결실은 2021년 시즌에 드러났다. 2021년 시즌은 프로 이도류로서 오타니 쇼헤이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해였다. 46개의 홈런을 때렸고 156개의 삼진을 빼앗았다. 오타니 쇼헤이는 2021년 시즌 메이저리그 MVP가 됐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로는 스즈키 이치로 이후 최초였다. 세계 최정상에서 이도류로 인정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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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리즈서 아내 깜짝 공개

오타니 쇼헤이는 2024년 LA다저스에 이적하면서도 장기 계약을 맺었다. 7억달러 개런티를 받지만 한꺼번에 받는 게 아니다. 10년 동안은 2000만달러만 받는다. 나머지 6억8000만달러는 2023년부터 2043년까지 다음 10년 동안 연금 형태로 받는다. 7억달러의 사나이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은 20년 연금의 사나이로 불려야만 하는 것이다. 오타니 쇼헤이한텐 당장의 일확천금이 아니라 선수로서 장기성장이 더 중요한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서울시리즈로 한국 팬덤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4년 전엔 일본 도쿄에서 메이저리그 경기를 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오타니 쇼헤이에 집중하는 것도 아시아 시장에서 프렌차이즈 스타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서울 시리즈에서 오타니 쇼헤이는 아내 다나카 마미코를 깜짝 공개했다.

오타니 쇼헤이의 성공은 시스템의 지원이 있어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리틀 야구단과 고교 야구팀과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까지 오타니 쇼헤이는 늘 단기적 목표보단 장기적 성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타니 쇼헤이는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 이후 유일무이한 투타 겸업 선수가 됐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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