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열고 적용유예 촉구
컨설팅⋅전문가⋅비용 등 태부족
속수무책으로 법 처벌 받을 판
근로자도 직장 잃을 우려 커져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등 3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통과 촉구 규탄결의대회’가 열렸다. 국회 내에서 기업인 수천 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소기업인들이 광천을 펼치고 ‘771만 중소기업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며 구호제창과 함께 50인 미만 중처법 유예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황정아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등 3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통과 촉구 규탄결의대회’가 열렸다. 국회 내에서 기업인 수천 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소기업인들이 광천을 펼치고 ‘771만 중소기업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며 구호제창과 함께 50인 미만 중처법 유예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황정아 기자

지난달 31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촉구하는 규탄결의대회에서는 중소기업 현장에서의 절절한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중앙회 역사가 62년인데 17개 중소기업단체가 한꺼번에 모여서 이렇게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은 제가 알기로는 처음”이라며 “기업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와서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돼 처벌 수위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사고 책임 소재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며 “근로자나 다를 바 없이 일하면서도, 불의의 사고를 걱정하며 매일 매일 노심초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안전관리 책임자는 물론, 법무·노무 인력도 제대로 둘 수 없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사장님들은 이제 속수무책으로 법의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업장을 닫으면 사장뿐만 아니라 근로자들도 함께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다”며 국회에 정쟁을 뒤로 하고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고 법안 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 △장범식 하송종합건설 대표 △최봉규 중소기업융합중앙회 회장 △김덕재 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 △심승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장세현 대한전문건설협회 철근콘크리트공사업협의회 회장 △김동경 경기도자동차정비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 7명의 중소기업계 대표들이 나와 중처법 적용에 대한 애로를 호소하며, 한목소리로 적용 유예를 외쳤다.

 

사실상 중처법 준비 포기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은 “사장이 구속되면 기업이 공중 분해되고, 불구속이면 시름시름 망해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되려고 근로자를 줄이거나 법인을 나누는 것마저 고민하는 곳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법 위반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야 구속되지 않고 징역도 안 살 것 아니냐고 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그 심정을 일부 이해하게 된다”며 “어떤 업체는 이참에 폐업을 고민하기도 하고, 또 다른 업체는 사실상 준비를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최봉규 중소기업융합중앙회 회장은 “50인 미만 식품 포장 전문 제조업체로서, 다른 업체들보다 빠르게 2022년부터 준비를 시작했다”면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컨설팅에 참여하려 중기중앙회에 연락했지만, 당시엔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가능하다고 하는 답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최 회장은 민간기관 컨설팅도 알아봤지만 비용 문제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서, 기업 입장에서 준비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짚었다.

국회에 대해 민생의 본질을 살펴달라는 호소도 있었다.

김덕재 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은 “83만 영세 중소기업 대표자들은 오로지 사고 없이 기업 경영이 잘 되길 기대할 뿐”이라면서 “국회는 기업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서로 남탓만 하고 있어 정말 안타깝다”고 중처법 유예 통과를 촉구했다.

심승일 중기중앙회 부회장 역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물가·고금리·인력난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기업들은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중처법은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징역을 살 수 있다는 불안감과 폐업에 이르도록 만들 수 있다”고 호소하며 법안 통과를 간곡하게 요청했다.

김동경 경기도자동차정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2024년 1월 27일은 50인 미만 전국 83만 사업장 대표님들의 사기가 추락한 날”이라며 “안 한다는 게 아니고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라고 외쳤다.

건설업계에서는 중처법 적용과 관련해 보다 깊은 우려를 쏟아냈다. 장범식 하송종합건설 대표는 “건설 현장에 투입돼야 할 안전관리 비용은 급증했으나,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10년 넘게 고정돼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장세현 대한전문건설협회 철근콘크리트공사업협의회 회장은 “최근 5년간 청소년이 첫 일자리로 가장 기피하는 분야가 건설업”이라며 “구인난은 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안전 전문인력 고용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해 시작점부터 중소 전문건설업체가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요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건설 현장을 둘러보면 대다수가 고령자거나 외국인 근로자들인데, 무리한 중처법은 필연적으로 고령인구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피 현상을 초래한다”며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생존권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 현장호소 경청하길”

중소기업 곳곳에서 발표한 현장의 애로 사항에 대해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가 있고, 고용이 있어야 노동이 있다”며 “여러분들이 애절한 사연으로 유예를 호소한 것을 국회가 잘 받아서 처리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국회에 재차 당부했다.

이날 중소기업인들을 격려하고자 방문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기업인의 처벌에만 목적을 둔 법률로는 사망사고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기 어렵고, 안전한 일터 조성도 실현하기 힘들다”며 “충분한 유예기간을 통해 정부가 지원하고 사업장 스스로 개선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재해 예방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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