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통선거서 40.34% 득표로 신승
與 민진당 총선 패배로 ‘여소야대’

“대만의 뿌리는 폴리네시아”주장
대만주의 vs 중화주의 충돌 불보듯

TSMC와 협력해 행정능력 입증
日기업 적극 유치, 중국과 대립각

지난 13일 대만 대선에서 승리한 라이칭더 집권 민진당 당선인.
지난 13일 대만 대선에서 승리한 라이칭더 집권 민진당 당선인.

“대만 국민은 선거를 통해 효과적인 정부와 강력한 견제와 균형을 선택했고 그 뜻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은 지난 1월 13일 당선 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대선에 해당되는 총통 선거 당선인의 승리 일성인데도 승리의 감격과는 거리가 먼 발언이다.

이겼지만 완승이 아니라 판정승이기 때문이다. 라이칭더는 행정 권력을 수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집권 민진당은 이번 선거로 입법 권력을 잃었다. 대만은 라이칭더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모든 대만인들이 라이칭더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지난 2024년 1월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의 승자는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 라이칭더지만 득표율은 40.34%로 과반에 못미쳤다. 60%의 대만 국민이 2명의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게다가 총통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대만 입법위원 선거의 승자는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었다.

대만 입법위원은 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된다. 대만은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른다. 제1야당인 국민당은 52석을 얻었다. 민중당도 8석을 확보하면서 제3당으로 부상했다. 민중당은 2019년 창당된 신흥 정당이다. 반면 여당 민진당은 51석에 그쳤다. 대만 국민은 라이칭더를 새로운 총통으로 선택했지만 동시에 라이칭더에게 여소야대라는 족쇄를 채운 셈이다.

 

정치적 텃밭은 타이난시

라이칭더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대독파다. 라이칭더는 대만 독립을 이렇게 정의했다. ‘독’을 중국으로부터의 정치적 자립을, ‘립’은 대만 스스로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대만의 민심은 라이칭더에게 ‘독’을 현상 유지하면서 ‘립’에 집중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은 1959년 10월 6일 대만 타이베이현 완리향에서 태어났다. 수도 타이베이 인근 지역으로 타이완섬의 북부 공업 지대에 해당된다. 라이칭더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라이칭더가 태어나고 95일 만에 광산 사고로 사망했다. 라이칭더의 어머니는 홀로 6남매를 키워내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탓에 라이칭더는 지금도 음식을 남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내 라이칭더는 공부를 잘하는 수재였다. 덕분에 대만 최고 명문대인 국립대만대학교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생 라이칭더는 이때 중요한 선택을 한다. 흔히 성대라고 불리는 국립성공대학 의대 진학을 결정한 것이다. 성대는 대만 남부 타이난시에 위치한 국립대로 대만 2위 명문대다.

의대 진학과 타이난시와의 인연은 라이칭더의 정치적 기반이 된다. 지역 의료인으로서 명성을 쌓은 라이칭더는 타이난시를 정치적 텃밭으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라이칭더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공공보건학을 공부했다. 의료행정가로서의 전문가적 역량을 쌓았다. 라이칭더는 의사로서의 경험과 의료행정가로서의 훈련이 합리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닮았다는 의미다. 이번 총통 선거에서 라이칭더를 위협했던 3당 민중당의 후보인 고원저도 의사 출신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선 성대에서 내과 전공의를 땄다. 성대종합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했다. 여기까지만이었다면 평범한 의사로서의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35세 때인 1994년 우연한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대만 민진당은 2000년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정작 천수이볜 정권은 부정부패 스캔들로 몰락하고 말았다. 멸문지화 직전까지 갔던 민진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인물이 천수이볜 정권에서 법무부장을 지낸 정치인 청딘난이었다. 청딘난은 2006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청딘난이 발탁하고 청딘난이 키운 키드들은 민진당 개혁의 주춧돌이 됐다. 라이칭더도 그런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청딘난의 별명은 미스터 클린이었다. 청딘난은 천수이볜 주류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다가 법무부장에서 쫓겨났다. 라이칭더는 1994년 천딩난의 타이완성 성장 선거를 도왔다. 1994년 선거는 대만 최초의 직선제 지방 선거였다. 장기 독재를 해온 국민당 대신 신진 야당인 민진당을 돕는 게 민주화였던 시절이었다. 정작 청딘난 후보는 패했다.

이때 라이칭더는 결정적 선택을 한다. 타이난시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칭더는 4년 뒤 치러진 1998년 입법위원 선거에서 초선으로 당선된다. 그 뒤로 내리 4선을 한다. 천수이볜 정권이 붕괴된 뒤에도  천딩난계였던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라이칭더는 총통에 당선된 지금까지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청딘난을 꼽는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

 

반도체 전략 가속화 유력

라이칭더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타이난가 지역구인 입법위원으로서 일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는 타이난시 시장으로서 일했다. 시장 라이칭더를 유능한 행정 관료로 부상시킨 정책은 TSMC와 협력한 반도체 진흥책이다. 라이칭더가 입법위원과 시장으로 활약한 20년 동안 타이난시는 명실상부 TSMC의 새로운 근거지로 거듭났다.

TSMC가 전통적인 수도권 지역인 대만 북부에 이어 대만 남부 타이난시를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던 것에는 라이칭더의 역할이 컸다. 대만 정부의 TSMC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서 반도체 공장을 대만 전역에 흩어놓았다. 수도권은 신주 뿐만 아니라 타이중과 타이난과 가오슝까지 TSMC 공장이 세워졌다.

TSMC는 2000년부터 타이난시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세워나갔다. 2017년 초미세 공정인 3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는 팹18 공장도 타이난시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도 라이칭더가 “전기, 물, 인재, 토지라는 4가지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고 인정했다.

대만 총통으로서도 라이칭더는 TSMC와의 밀착 협력을 통해 경제 정책이자 안보 정책으로서의 반도체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라이칭더의 강점을 잘 아는 국민당은 선거 기간 내내 TSMC 껍데기론으로 표를 깎아내리려고 애썼다.

TSMC가 IRA법에 따라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을 빌미로 대만에는 TSMC의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작 TSMC는 지난해 타이난시에 새로운 초미세 2나노 공정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라이칭더한테 유리한 호재였다.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2016년 재집권에 성공한다. 차이잉원의 민진당은 천수이볜의 민진당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었다. 무엇보다 양안 관계에서 주체적 입장을 선명하게 했다. 2016년 차이잉원은 이른바 차이잉원 독트린을 발표했다. “대만은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새로운 독립 선언은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에서 이른바 화독파의 기본 입장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2017년 라이칭더를 새로운 행정원장으로 발탁하면서 중앙정계에 데뷔시켰다. 행정원장은 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된다. 지방 정부 시장을 내각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정작 라이칭더는 2019년 차이잉원에게 정치적 도전장을 내민다. 이때 대의명분이 대만 독립이었다. 이른바 대독파의 등장이다.

화독파는 중화민국의 독립을 주장한다. 대독파는 대만의 독립을 주장한다. 둘 다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독립의 주체다. 화독파는 중화민국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대독파는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국공 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도주한 국민당이 타이완섬에 세운 중화민국의 뿌리는 중국 본토다. 대독파는 중화민국과 대만은 별개의 국가 개념이라고 본다. 대만의 뿌리는 중국 본토가 아니라 타이완섬 그 자체인 것이다.

라이칭더는 2019년 경선에서 “나라면 대만의 독립을 일궈내는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선언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와 국민당과의 정면 충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당인 차이잉원 총통과도 차별화되는 공격적인 발언이었다. 2019년 민진당 경선에선 현직 총통인 차이잉원한테 패했지만 2020년 총통 선거에선 차이잉원의 러닝메이트인 부총통으로 나서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1월 13일 총통 선거 결과는 2019년부터 대독파로서 노선을 차별화해온 라이칭더 집권 전략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제2공용어로 영어 채택

라이칭더는 이스라엘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와 가까운 사이다. 대만이 이스라엘에서 안보 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스라엘 근본주의자인 네타냐후 총리와 대만 근본주의자인 라이칭더 총통은 외교 노선에선 교집합이 크다. 이스라엘 원리주의처럼 대만 원리주의를 주장하는 점도 유사하다. 타이난 시장 시절 라이칭더는 5개의 문화 공원과 1개의 박물관과 1개의 문화 국가 구역을 지정했다. 모두가 대만의 뿌리가 중국 대륙이 아니라 태평양 폴리네시아 문화권이라는 걸 보여주는 내용들이었다. 대만인은 중국인이 아니라 폴리네시아인이며 중국 본토인도 여러 이주민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다민족 국가론의 핵심은 이중 언어 정책이다. 라이칭더는 중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를 제2공용어로 삼는 이중 언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라이칭더 자신도 윌리엄 라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고 있다. 라이칭더는 이런 대만 문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대만인과 중국인의 정체성을 분리시켜서 대만의 독립을 유지시켜줄 기반이 될 것이라고 본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다면 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 될 명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동시에 같은 섬나라이자 한때 대만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반일 정서로 점철된 중국 본토와는 상반된 입장이다. 라이칭더는 일본 기업 유치에 매우 적극적이다. 미쓰이처럼 전범 기업에 대해서도 문호를 활짝 열었다. 라이칭더는 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개인적 사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친미적인 색깔보다 친일적인 색깔이 더 노골적이다. 반일 색채가 선명한 중국 시진핑 주석과는 여러모로 상극인 셈이다.

라이칭더 총통이 2028년 재선에도 성공한다면 2032년 3연임이 끝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임기가 일치하게 된다. 라이칭더 정부와 시진핑 정부의 대표적인 충돌 지점은 일국양제와 평화협정이다. 시진핑은 장기 집권의 정당성을 중국 통일에서 찾고 있다. 하나의 국가지만 여러 정치 체제가 있을 뿐이라는 일국양제는 사실상 중국 통일로 가는 교두보다. 정작 홍콩 민주화 시위로 인해 대만에서 일국양제는 이젠 허상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일국양제였던 홍콩이 어떻게 중국 체제에 강제로 병탄돼 가는지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게 평화협정이다. 시진핑 정부는 이번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이 집권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시사해 왔다. 실제로 이번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국민당이 곧 대만 평화라는 프레임이었다.

라이칭더는 평화협정은 평화가 아니라 병합의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티베트 역시 중국과 평화협정을 맺었었다. 결과적으로 티베트 민주화 독립 운동이 벌어졌을 때 평화협정은 국제 사회가 개입할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 됐다. 중국과 티베트의 평화협정이 국제법이 아니라 국내법적인 효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의 평화협정도 이런 함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대만 총통 선거 기간 동안엔 거센 무력 시위를 했다. 사실상 국민당 정부를 엄호 사격해준 것이었다. 정작 총통 선거가 끝난 뒤엔 대만 내부 분열 전략으로 전환했다. 라이칭더 정권 흔들기에 돌입한 것이다.

라이칭더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보라색의 대만 백합이다. 대만 백합은 대만 토종이다. 보라색의 대만 백합이 피어나면 대만에 봄이 왔다는 의미다. 민진당의 상징색은 녹색이다. 정작 라이칭더는 보라색 넥타이를 매고 유세 현장을 누비는 경우가 많았다.

라이칭더는 소문난 야구광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실제로 야구부 활동을 했다. 포지션은 포수였다. 원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이었다. 대만의 박찬호라고 불리는 대만 출신 야구 선수 왕젠민이 양키즈에 입단하자마자 응원팀을 양키즈로 바꿨다. 라이칭더의 모든 건 기승전 대만이다.

물론 국가 안보를 책임지게 된 이상 당장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과반에 못 미치는 득표율과 여소야대라는 선거 결과가 라이칭더한테 유연한 외교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진핑이 영원한 중화주의자이듯이 라이칭더는 영원한 대만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대만이 라이칭더라는 견제구를 중국 시진핑에게 던졌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