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운영하며 겪는 진상의 추억
반면교사 삼아 나 자신부터 반성을
역지사지만 잘 해도 ‘행복 2024년’

스무 살 아들이 주말마다 PC방 알바를 한 지 6개월쯤 됐다. 며칠 전 ‘한턱 쏘겠다’더니 떡볶이집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 “녀석아, 돈을 벌었으면 스테이크 정도는 썰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익살을 부렸지만 아들이 번 돈으로 음식을 대접받는 기분은 뿌듯하기만 했다. “용돈 받아 쓸 때는 몰랐는데, 벌어보니 아껴 쓰게 되더라”는 아들의 말에 더욱 대견함을 느꼈다.

떡볶이를 먹으며 우리는 밥벌이의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술 마시면 집에 갈 것이지 왜 PC방에 오는 지 모르겠어요”라는 아들의 말에 무슨 뜻인가 했다. 들어보니, 만취해 PC방에 와서 행패나 추태를 부리는 손님이 많단다. 어제는 만취 손님 한 명이 화장실에 가서 안 나오길래 경찰까지 불러 억지로 문을 열고 봤더니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더라나. 사나흘에 한 번은 겪는 일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엊그제 고등학교에서 강연했다. 수능 끝난 고3들을 대상으로 재미, 정보, 교훈을 버무려 조잘대야 하며 수능 끝나 긴장이 풀린 학생들의 졸음도 쫓아내야 하는 초고난도였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들어주는 학생들이 고맙기만 했다. 강연 끝자락엔 언제나 “편의점을 운영하며 겪은 진상손님 가운데 최악은 어떤 손님이었어요?”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문득 아들과 대화가 떠올라 편의점 한구석에서 자고 있던 손님 이야기를 해줬다.

9년 전쯤 일이다.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할 때인데, 만취한 손님이 비틀비틀 들어오더니 음료 냉장고 쪽으로 갔다. 어쨌든 나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담배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그 손님은 어디 갔을까? 그 좁은 편의점 안에 숨어 있을 곳이라곤 없는데…. 한 바퀴 둘러보니 시식대 근처에 가방을 껴안고 쭈그리고 앉아 자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는 CCTV 사각지대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경찰을 불렀다.

물론 재산상 피해를 주는 ‘나쁜 진상’에 비해 귀여운(?) 사례라 볼 수 있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소중한 공권력을 이런 일로 호출해도 되나 싶었다. PC방에서든 편의점에서든, 잠은 주무시지 말기를.

그러고 보면 진상이란 용어는 이제 외식업계나 유통업계는 물론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진상은 아니었는지, 예의나 상식, 규범 없이 행동하는 사람으로 비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진상은 자기가 진상인 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만 잘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결 살만하지 않을까.

슬프고 우울했던 기억은 잊자. 눈살을 찌푸렸던 추한 손님은 2023이라는 숫자와 함께 지워버리자. 밝은 생각, 좋은 관계, 명랑한 기억만 남기고 가기에도 부족한 인생 아니던가. 혹여 좋지 않은 기억은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웃어넘기자. 지나고 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새해 아침에 덕담처럼, 혹은 액운을 막는 부적처럼 건네고픈 말씀은 “2024년 새해는 진상은 가고 ‘최상’의 한 해를 누리시라”는 응원이다.

아들에게 ‘한턱 떡볶이’를 얻어먹을 때 물었다. “알바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찰 때는 언제야?” 엄숙한 질문에 아들은 총알처럼 답했다. “그야, 월급 받는 날이죠.” 월급 받는 사람이나, 월급 주는 사람이나, 서비스를 누리는 사람이나, 모두 행복한 2024년이 되길.

 

 

 

 

편의점주⋅작가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