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11) 입찰담합 들러리 참여자의 책임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서울시는 데이터센터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데이터센터 건물 신축공사의 입찰(이 사건 입찰)을 공고했다. 대형건설은 중소건설에 이 사건 입찰에 들러리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형건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입찰공고에 낙찰받지 못한 입찰자에게 설계보상비를 지급한다는 내용까지 있었기 때문에, 중소건설은 큰 고민 없이 들러리로 참여하기로 했다. 대형건설은 이 사건 사업을 100억원에 낙찰받았고, 중소건설은 서울시로부터 설계보상비 1억원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대형건설과 중소건설이 입찰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대형건설에 5억원의 과징금을, 중소건설에 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형건설과 중소건설은 과징금 부과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중소건설을 상대로 입찰담합으로 인한 10억원의 손해배상과 설계보상비 1억의 반환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판사 : 서울시는 입찰담합이 없었다면 90억원에 낙찰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이군요. 그런데 대형건설에는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나요?

서울시 : 예, 대형건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10억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작성했습니다. 사실 대형건설은 현재 파산 위기에 있어 대형건설로부터 실제로 돈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소건설 : 아니. 대형건설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아야지 왜 저희한테까지 손해배상청구를 하나요? 저희는 이 사건 입찰 담합으로 얻은 이익이 없습니다. 입찰담합을 주도한 대형건설에 10억원을 청구했으면, 저희에게는 1억원 정도만 청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울시 : 입찰담합은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소건설은 대형건설과 동일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합니다.

중소건설 : 들러리 선 것이 전부인데 대형건설과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
 

입찰담합과 손해배상청구소송

얼마 전 인천시가 인천도시철도 2호선 건설공사 입찰에 담합을 한 건설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인천시는 건설사들을 상대로 1327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고, 이에 제1심법원은 55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죠. 건설사들은 552억원의 손해배상금이 지나치게 많다며, 인천시는 552억원의 손해배상금이 부당하게 적다며 모두 항소했지만, 항소심은 제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건설사들은 인천시에 552억원을 배상하게 됐죠.

과거에는 입찰담합을 한 사업자들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손해배상을 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소멸시효 때문이었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채권은 5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됩니다. 대법원은 입찰담합의 경우에 계약을 체결한 때부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5년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 제기 등을 하지 않으면 소멸시효 완성으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공정위가 입찰담합을 적발하더라도 사업자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이 진행되는 사이에 5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지금은 공정위가 입찰담합을 적발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입찰담합 사실을 통지하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소송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과거와 같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책임을 면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입찰담합으로 인한 손해       

발주자가 입찰담합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입찰담합 사실, 손해발생의 사실 및 손해액 등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때 발주자는 손해의 구체적인 액수까지 증명해야 하죠. 입찰담합으로 인한 손해는 무엇일까요? 입찰담합으로 형성된 낙찰가격(실제 낙찰가격)과 그 담합이 없었을 경우에 형성됐을 가격(가상 경쟁가격)의 차액이 바로 발주자의 손해입니다.

앞선 사례에서 서울시는 입찰담합이 없었다면 낙찰가가 90억원(가상 경쟁가격)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서울시의 손해를 실제 낙찰가격 100억원과 가상 경쟁가격 90억원의 차액인 10억원으로 주장한 것이죠. 문제는 가상경쟁가격, 즉 입찰담합이 없었다면 90억원에 낙찰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계량경제학적 방법을 사용한 손해액 증명이 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과거 100건의 건물 신축 공사의 입찰을 실시했는데, 그 중 10건의 입찰에서 입찰담합이 적발됐다고 가정해 보죠. 입찰담합이 적발되지 않은 90건은 평균적으로 예정가격의 80%로 낙찰이 이뤄졌는데, 입찰담합이 적발됐던 10건은 평균적으로 예정가격의 90%로 낙찰이 이뤄졌다면, 입찰담합으로 인한 손해를 “예정가격의 10%”(= 90% - 80%)로 추정하는 것이죠.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례를 기초로 하는지, 그리고 각 입찰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로 반영하는지에 따라 손해액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천시 사례와 같이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입찰담합으로 인한 손해액이 적게는 2~3배, 많게는 수십 배 차이가 나기도 하죠.

들러리 참가자의 손해배상책임

입찰담합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들러리 참여자들이 억울함을 표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들러리 참여자가 발주자에게 배상해야 할 손해배상금이 입찰담합을 주도하고 낙찰까지 받은 사업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입찰담합을 주도한 대형건설의 책임이 90%이고, 그에 동조한 중소건설의 책임이 10%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대형건설에 9억원을, 중소건설에 1억원의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입찰담합은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형건설과 중소건설은 모두 서울시에 대해 손해 전액을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책임비율에 따라 나중에 구상할 수 있는 것이죠. 중소건설이 혼자 서울시에 10억원의 손해배상을 모두 지급했다면, 대형건설을 상대로 대형건설의 책임비율(90%)에 상응하는 9억원(= 10억원 × 90%)의 반환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형건설이 10억원 전액을 지급했다면 중소건설을 상대로 1억원의 반환을 구할 수 있죠.

들러리 참여의 위험성

입찰담합은 입찰에 참여한 공급자 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방지해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어 다른 담합보다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다른 회사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큰 고민 없이 입찰담합에 들러리로 참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입찰담합이 적발되면, 발주자로부터 받은 설계보상비를 반환해야 하고, 적지 않은 과징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주자에 대한 관계에서 입찰담합을 주도한 사업자와 동일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되죠. 경우에 따라서는 발주자와의 소송이 끝난 후에 다시 내부적 책임비율을 두고 입찰담합을 주도한 사업자와도 새로운 법적 분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앞서 본 사례처럼 입찰을 주도한 사업자(대형건설)가 파산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들러리 참여자(중소건설)가 손해배상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입찰담합에는 들러리로라도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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