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정부와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이번 인상안의 골자는 핀셋 인상으로, 산업용 중에서도 계약전력 300kWh 이상의 산업용(을)에 대해서만 전력량 요금을 평균 10.6/kWh 인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한전의 누적적자 해소와 고물가로 인한 서민경제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요금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고 끝에 내놓은 해법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먼저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거듭 주장해온 측에서는 이번 인상의 효과가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전의 누적적자는 50조원에 육박하는데, 이번 요금인상의 효과는 연간으로 따져도 3조원 남짓에 그칠 전망이다. 다음 달부터 인상된 고지서를 받게될 산업용(을) 사용기업들도 마뜩잖긴 매한가지다. 고물가·고금리의 영향이 산업계라고 다를 리 없는 데다가, 이미 정부는 지난 해 9월 산업용에 대해 최대 11.7원/kWh에 달하는 추가부담을 지운 바 있기 때문이다.

산업용(을) 사용자는 대부분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정부의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용(을) 사용자는 고압A가 4만개사, 고압 B·C가 8백개사 정도로 알려졌는데, 2021년 기준 대기업으로 볼 수 있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회사는 3천개사에 불과했다. 단순계산으로도 산업용(을) 사용자의 상당수가 중소기업 범주에 해당 될 것이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한전이 블랙홀에 빠지기 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은 산업계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용만 콕 찝은 이번 핀셋인상이 더욱 불편하게 다가온 것은, 마치 총 사용량의 48.9%를 차지하는 산업용이 ‘싼’ 전기를 대량으로 활용하면서 막대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한전은 요금인상의 필요성으로 2020년 101.3%에서 2022년 64.1%까지 떨어진 총괄원가회수률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총괄원가만 공개되고 용도별 원가회수률이 공개되지 않으니, 산업용은 산업용대로, 일반용은 일반용대로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고압·대용량으로 전기를 공급받는 산업용은 변압과정을 거쳐야 하는 다른 사용자들보다 원가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가정용이 산업용보다 2.2배나 더 높고, 미국도 산업용의 1.7배 수준에서 가정용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인하조치가 발표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전기요금의 3.7%로 조성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은 한전 적자와 무관한 정부의 수입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5년부터 한 차례의 변동없이 유지돼 왔다. 전기요금이 급등하면서 2조원대에 불과하던 기금규모는 지난 해에는 6.5조원대까지 늘어났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반면, 일본이나 독일은 급등한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지난 해 10월, 에너지비용 부담완화를 위한 20조원 규모의 국비지원 계획을 밝혔다. 실제 올해 9월까지는 인상분에 맞먹는 보조금을 지급했고 5월부터는 우리나라의 기후환경요금에 해당되는 재생에너지부과금을 3.45엔/kWh에서 1.4엔/kWh까지 인하했다. 독일도 올해 3월부터 ‘가격제동법’을 도입, 산업용의 경우 연간소비량의 70%까지 2021년 수준인 13ct/kWh만 부담하는 요금상한제를 도입해, 산업계 부담을 완화했다.

곧 12월 말이 되면 정부는 기후환경요금을 포함, 또 다시 요금조정안을 발표해야 한다. 경쟁국은 급등하는 에너지요금으로부터 산업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데, 한국은 요금인상의 당위성만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늦기전에 한전적자와 무관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즉각 인하하고, 중소기업 차등요금제 등 전향적인 지원정책이 마련돼, 시급히 인상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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