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 넘어
일이 곧 행복 ‘워라블’ 급부상
두 스타일 모두 현실과 거리
피할 수 없다면 일도 즐겨라

지난 몇 년간 가장 뜨거웠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일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일컫는 개념이다 보니 세대를 가리지 않고 쓰인다. 일은 사회적이고 경제적 관계에 위치하다 보니 늘 힘들고 괴롭다.

반면에 삶은 개인적이어서 이것저것 눈치 볼 일 없어 자유롭다. 당연히 개인적인 삶이 일에 매달리며 사는 삶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이유다.

워라밸은 일과 삶이 분리된 개념이다. 형식적으로 일과 삶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일과 삶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개인의 삶이라도 목적 달성을 위해 일이라는 수단을 활용한다.

따라서 ‘워라밸이 좋다’는 말은 일을 통해 얻은 가치와 삶에 투입해 얻은 가치가 최적화돼 산출물이 극대화된 상황이다. 워라밸은 분리된 두 개의 영역이 균형을 이룰 때가 최적이다. 정시에 출퇴근해서 개인의 삶을 즐기길 원하는 사람처럼 과도한 성취욕 대신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삶의 비용을 최소화해 일과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람이 워라밸형 라이프스타일이다.

또한 일의 목적이 삶에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하려는 사람, 일이 없을 때를 대비해 의도적으로 일의 영역을 넓히는 사람, 파이어족을 꿈꾸며 오늘의 피곤함을 견디는 사람 등도 여기에 속한다. 

워라밸 시대가 벌써 끝난 것일까. 요즘은 ‘워라블(Work-Life Blending)’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다. 워라블은 일과 개인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융합해서 최적화하는 형태이다.

워라블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간섭하기도 한다. 일은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길거리이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행위이다.

경제적 독립에 성공해 조기 은퇴한 파이어족은 워라밸에서 워라블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덤으로 경제적 이득까지 얻는다.

또한 경제적 독립에도 일 자체가 좋아서 일을 줄이지 않는 사람이나 일년내내 일에 빠져 살면서도 피곤보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전형적인 워라블형 인간이다. 좋아서 일을 하다 보니 돈이 저절로 따라오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30여 년간 직장인이었던 필자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을까. 정시에 출근해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고 정시에 퇴근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사의 추가 업무 지시에 짜증부터 났던 기억도 난다. 추가적인 업무는 개인의 삶을 희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 걱정 없는 은퇴를 꿈꿨기에 개인적인 시간을 업무에 갈아 넣었다. 답답한 생활이었지만 좋아하는 일보다 좀 더 나은 소득을 올리는 일을 선택한 탓이다. 아무튼 지금 돌아보니 직장인으로서 필자는 꽤나 워라밸을 추구하며 살았다.

퇴직 후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강의자료 준비와 외부기관 자문위원 활동, 신문사 칼럼 작성 등의 일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이어진다. 공원을 산책하거나 때때로 지인을 만나 식사와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집안을 쓸고 닦거나, 식재료를 체크하고 여기저기 주문을 넣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마음 가지 않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일이니 삶이니 굳이 경계와 균형을 따지지 않는다. 하는 일로 돈이 되면 좋고 안 되도 재능기부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유행가 가사처럼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요즘 뜬다는 워라블에 가까운 삶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워라블의 삶을 꿈꾼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좋아하는 일과 삶에 필요한 수입과 여가를 충분하게 얻는 이상적인 워라밸을 실현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 일에 치여 살면서 워라밸을 넘어 워라블을 꿈꿨다. 그래도 가끔은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행복감도 느끼면서 고비를 넘기고 견디며 살다 보니 지금의 삶으로 귀결된 듯하다. 워라블을 꿈꾸는 사람들은 현실을 피할 수 없다면 일도 즐길 일이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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