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자존심 고집하다 실적 곤두박질
컴퓨터 표방한 플스3로 적자 폭 심화
게임부문 출신 히라이, 수장으로 낙점
전자에서 게임·음악 등으로 중심 이동
리스크 큰 사업영역 과감히 매각·정리
감동 원칙 고수, 적자 수렁서 전격 탈출

지난해 이어 올해도 매출 100조원 돌

소니가 2년 연속 매출 100조원 돌파에 한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소니는 2022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조엔을 돌파했다. 한화로는 100조원이다. 소니는 3월 결산 법인이다. 소니의 2022년 실적은 사실상 2023년 1분기까지의 추세다. 과연 소니는 2023년에도 강했다. 소니의 2023년 4월부터 6월까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나 증가했다.

11월 9일 발표될 2023년 7월부터 9월까지 실적도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8% 이상 증가했을 걸로 추정하고 있다. 2분기 연속 전년 동기 실적을 능가한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2개 분기의 실적도 이런 추세대로라면 소니는 2년 연속 매출 100조원을 돌파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전대미문이다.

TV회사 → 게임회사로 자리매김

솔직히 상전벽해다. 10년 전만 해도 소니는 다 망해가는 회사였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연속 적자였다. 2011년엔 7조원대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에 겨우겨우 흑자로 전환했지만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다시 2년 연속 적자였다. 사실상 7년 동안 연패의 늪에 빠져있었다는 뜻이다. 특히 소니의 기둥이라는 전자 부문은 8년 연속 적자였다. 소니는 기둥 뿌리가 뽑인 상태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10년 만에 소니는 전혀 다른 회사로 변했다. 물론 삼성전자의 2022년 매출 300조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삼성전자가 소니를 압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니가 불타는 승강장에서 부활했다는 것만큼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소니를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패배주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소니는 예전 소니가 아니다. 지금 소니의 정확한 사명은 소니 그룹이다. 소니는 2021년 4월 소니에서 소니 그룹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소니는 1936년 도쿄의 백화점 한쪽에서 라디오 수리점으로 시작했다. 창업 당시 사명은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였다. 소니는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하면서 회사 이름을 소니로 바꿨다. 세계 어디에서도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란게 이유였다.

그 뒤로 소니는 아날로그 시대의 아이팟인 워크맨과 한때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던 트렌지스터 TV를 선보이면서 승승장구했다. 소니는 한때 지구 최강의 전자제품 제조사였다. 한때는 그랬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말이다.

이제 소니는 단순한 전자제품 회사가 아니다. 게임, 전자, 음악, 반도체, 금융, 영화까지 6개 사업 부문이 골고루 매출을 내는 종합 그룹이다. 지배 구조도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었다. 그것도 작은 본사를 지향한다. 과거 소니 본사의 위상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사실 과거 소니의 본사는 곧 소니 전자였다. 소니의 오늘을 있게 만든 주인공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니는 소니 전자와 소니 후자로 나뉜 회사였다. 한때 삼성그룹이 삼성 전자와 삼성 후자로 나뉘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니 그룹이 되고 지주회사 체제가 됐다는 건 전자 부문도 나머지 6개 부문과 똑같아졌다는 의미였다. 실적으로도 그랬다. 2022년 기준 소니에서 게임 부문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30%다. 전자 부문은 21%다. 이미 소니는 TV 회사가 아니라 게임 회사인 것이다.

기업에선 자존심이 아니라 실적이 밥 먹여준다. 정작 소니가 2000년대부터 계속 실패했던 건 자존심을 못 버려서였다.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소니 CEO는 삼성전자와 LG전자한테 TV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자 최고급 명품 TV로 반격을 노렸다. 소니가 월드 베스트라며 내놓았던 퀄리아였다. 정작 퀄리아는 가격만 비싸고 성능은 별로였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소니의 자존심 덩어리가 아니라 값은 싸고 화질은 좋은 TV였다.

이런 자존심 싸움은 결국 소니의 효자 상품인 플레이스테이션마저도 잡아먹었다. 소니는 2006년 11월 플레이스테이션3를 선보였지만 참패했다. 2000년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2는 누적 판매 1억5000만대를 기록할 정도로 대박을 쳤다. 그러자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3로 TV와 가전에서 밀린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무리를 했다.

소니의 기술 전성기를 이끌며 플레이스테이션 개발을 주도했던 구타라기 겐은 플레이스테이션3를 가정용 슈퍼컴퓨터로 만들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추진했다.

결국 플레이스테이션3의 가격은 60만원에 달했다. 경쟁사인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닌텐도위의 판매가는 당시 10만원대 중반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플레이스테이션3는 게임기였다. 그런데 터무니 없이 비쌌다.

특급소방수 히라이 CEO 등단

히라이 가즈오 CEO
히라이 가즈오 CEO

2006년 소니는 23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원흉은 플레이스테이션3의 대실패였다. 소니의 자존심이 본사인 소니 전자 부문에 이어 게임 부문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까지 무너뜨린 것이었다. 이때 소니의 구원투수로서 등장한 인물이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의 북미 매출을 책임지고 있던 히라이 가즈오 대표였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소니의 CEO를 맡았고 소니 부활을 이끈 장본인이다. 일본에선 21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07년 플레이스테이션3 실패의 책임을 지고 구타라기 겐이 물러나면서 소니의 게임 부문을 책임지게 됐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소니 안에선 특급 소방수로 평가 받는 인물이었다. 본사와 지사 사이의 갈등으로 내홍에 휩싸여 있던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를 맡아서 정상화시켰다. 이번엔 도쿄 본사에 있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를 구해낼 차례였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는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게임 회사라고 선언했다. 플레이스테이션3는 컴퓨터가 아니라 게임기라고 정의했다. 문제는 플레이스테이션3가 터무니없이 비싼 게임기라는 사실이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3 가격을 낮췄지만 덕분에 역마진이 발생하고 말았다. 팔수록 손해만 보는 구조였다. 그나마도 플레이스테이션2로 구축한 게임 생태계를 잃지 않으려면 손해를 보더라도 계속 팔아야만 했다.

이미 경쟁사인 MS의 엑스박스와 닌텐도의 닌텐도위의 추격세가 만만치가 않았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플레이스테이션3의 가격을 3년 만에 출시 당시보다 40%까지 낮췄다.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회의 중에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로고까지 지웠다 썼다 했을 정도였다. 정말 뼈를 깎는 원가절감이었다. 결국 2010년 플레이스테이션3는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성비 무장한 플스4 대성공

플레이스테이션4에선 플레이스테이션3의 실수를 다시 할 수는 없었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플레이스테이션4는 가성비 제품으로 만들었다. 소니의 차세대 반도체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AMD의 반도체를 사용했다. 자존심을 버린 것이다. 대신 소비자를 바라봤다.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4는 플레이스테이션2처럼 다시 한번 대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소니 전체를 이끄는 CEO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소니에는 4명의 CEO 후보가 있었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가 전자 부문 출신들이었다.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 시절부터 소니의 뿌리였던 전자의 주요 보직을 거친 성골들이었다. 그런데 전자가 아니라 게임 부문 출신인 히라이 가즈오 대표가 소니의 수장으로 낙점됐다. 배경엔 2011년 3월 11일 일본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가뜩이나 연속 적자로 흔들리고 있던 하워드 스트링어 CEO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하워드 스트링어는 임기 내내 소니 유나이티드를 외쳤지만 정작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자 가족이 있는 뉴욕으로 돌아가서 원격 경영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하워드 스트링어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대신 후임은 직접 지정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워드 스트링어가 지명한 후임 CEO가 히라이 가즈오 대표였다.

이미 하워드 스트링어 시절부터 소니는 회사의 중심을 전자라는 하드웨어에서 게임과 영화와 음악 같은 소프트웨어로 이동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워드 스트링어의 리더십은 이걸 시작은 할 수 있었지만 완성하긴 어려웠다. 그걸 완수할 인물은 소니 안에서도 음악과 게임 같은 소프트웨어 부문으로만 경력을 쌓은 히라이 가즈오였다.

무엇보다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와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라는 2개 회사에서 성공적인 구원투수 역할을 한 실적이 있었다. 이번엔 소니 자체가 세이브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히라이 가즈오는 소니를 3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게임과 영화와 음악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디바이스로 구성된 성장 견인 영역이었다. 다른 하나는 카메라용 이미지 센서 같은 안정 수익 영역이었다. 지금도 소니의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50%를 자랑한다. 아이폰의 인기 덕분이다.

나머지 하나는 TV와 스마트폰처럼 사업 변동 리스크 영역이었다. 더 이상 투자해도 성장하기 어려운 사업들이었다. 과거 소니의 영광을 이끌었던 전자 부문이 이젠 소니의 리스크 영역이 된 것이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12년 화학 부문을 매각했다. 2014년엔 유명 노트북 브랜드인 바이오 부문을 정리했다. 2017년엔 리튬이온배터리사업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소니 출신의 선배들이 히라이 가즈오를 맹비난했다. 비주류 계열사 출신 CEO가 소니의 뿌리를 흔든다는 논리였다. 이때 히라이 가즈오 대표의 원칙은 분명했다. 감동이었다. 과거 워크맨이나 TV에서 소니가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진정한 가치는 제품을 통한 감동이라는 얘기였다.

결과적으로 히라이 가즈오 대표가 옳았다. 2017년 소니는 마침내 적자의 수렁에서 벗어났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도 구축됐다.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통해 구축한 생태계를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완성한 것이다. 히라이 가즈오 대표는 2018년 소니 CEO에서 물러나면서 후임으로 소니 CFO였던 요시다 겐이치로를 선택했다.

사실 요시다 겐이치로는 진작부터 후임 CEO로 낙점됐던 사실상 2인자였다. 소니를 소니 그룹으로 재탄생시키는 개혁 작업은 히라이 가즈오와 요시다 겐이치로가 함께 기획하고 추진한 것이었다. 히라이 가즈오가 구원투수형 CEO라면 요시다 겐이치로는 승리투수형 CEO다.

2018년부터 소니를 이끌고 있는 요시다 겐이치로 대표는 소니를 소니 그룹으로 만드는 개혁 작업을 완수했다. 덕분에 2022년 소니는 역대급 실적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팀을 만드는 데 집중한 2명의 CEO 덕분이었다. 그리고 소니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이기고 있다. 소니의 부활이다. 일본인들한텐 분명 감동이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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