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열린 국회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장. 기술탈취로 인한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정부의 대응책 미흡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답변에 나선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은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현행 3배에서 5배까지 강화하고, 중소기업의 피해회복을 위해 법률지원, 디지털 증거 확보 제도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술탈취는 소탐대실’이라는 인식이 기업 현장에 자리잡도록 하겠다는 소관부처의 강한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정책이 실제 소송에서 판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늬만 징벌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2011년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관련 소송에서 중소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는 점은 불안감을 더하게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피해 중소기업의 승소와 함께 적절한 손해배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탈취’라는 위법적 사실이 확인돼야 하고, 그 피해금액에 대한 산정도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피해 중소기업 스스로 이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강도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탈취 소송에서 피해기업의 입증자료 등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더 절실한 이유다.

지난 9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기술탈취 근절 위한 정책 수요조사’의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했던 기업들 중 43.8%가 수사의뢰·소송 등 별도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피해기업의 78.6%가 ‘피해사실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기술탈취 근절대책으로 70.6%가 ‘기술탈취 피해사실 입증지원’을 꼽았고,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가 23.5%로 뒤를 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의 입증지원에 대해 국회나 정부 모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기술탈취 관련 손해배상소송 시 ‘행정기관(정부 등)에 대한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자료제출명령제도는 기술탈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정부 등 행정기관에 사건과 관련된 조사자료의 제출을 명령할 수 있는 제도다.

현행법에는 법원이 행정기관에 자료 요구 시 자료제출의 강제성이 없어 법원이 조사자료를 확보한 경우가 전무하다. 법원이 자료제출명령제도를 통해 ‘요구’가 아닌 ‘명령’을 하게 된다면 직무상 비밀누설 금지의무 때문에 자료제공에 소극적이었던 공무원들의 부담을 없애 피해 입증자료 지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자체 조사자료를 법원에 제공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모두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만큼 더 늦출 이유가 없다. 지금도 기술탈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중소기업들을 생각한다면 현재 발의돼 있는 자료제출명령제 도입 관련 하도급법 및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

기술탈취 근절을 위해 형사처벌 강화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기술탈취에 대한 법정형은 최대 15년으로 주요국과 비교해 낮지 않지만, 판사가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하는 양형기준에 따르면 최대 3년 6월까지 줄어든다. 그 결과 기술탈취로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는 10명 중 1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탈취에 최대 33년 9월의 징역을 내릴 수 있는 미국의 사례를 고려해 우리나라도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해야한다.

기술탈취는 근절돼야 한다. 금전적 피해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할 혁신기업의 싹을 없애고, 기업의 성장 토대를 훼손시키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술탈취 근절은 구호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실질적 피해입증 지원, 처벌강화와 같은 근본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기술탈취 걱정없이 마음껏 기술개발에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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