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흘린 직원·고객이 내 회사 주인공
본인은 조연으로 남아도 가치 충분
주·조연 하모니가 회사성장 디딤돌

지난 여름, 휴가지에서 <스타워즈> 시리즈 9편과 스핀오프 등 총 11편을 다시 정주행했다. 덥고 긴 밤에 초등학생 딸의 소일거리가 애매했다. 재미나고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낸 아이디어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4학년이라 197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스타워즈>의 장대한 세계관을 이해나 할까 싶었지만, 저녁 먹으면 여지없이 스마트TV 앞에 앉아  “빰~빰 빠라바라~밤 빠라바밤~~” 스타워즈 주제곡을 큰 소리로 아빠와 합창했다.

며칠 전 여름방학 이야기를 나누다 <스타워즈>에서 어느 캐릭터가 제일 인상 깊었냐고 물었다. 당연히 다스 베이더나 스카이워커 혹은 한 솔로나 레아 공주, 요다 정도일 거라 예상했지만 딸의 대답은 ‘츄이’였다. 츄이는 추바카의 애칭으로 털복숭이 우키족 전사이자, 한 솔로가 조종하는 밀레니엄 펠콘호의 부조종사다. 대사도 없이 괴성만 지르는 외계인 몬스터 츄이라니… 의아해서 이유를 물었다. 우선 복슬복슬 귀엽고, 시리즈 전편에 걸쳐 아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며, 한 솔로와 처음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가 멋지다는 등 딱히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하지만 딸과 츄이 사이에 어떠한 케미가 발생한 것만은 분명했고, 츄이는 평생 딸에게 어느 여름밤 별들의 전쟁처럼 기억될 것이다.

츄이같이 주연보다 조연이 주목받은 영화들은 매우 많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곽도원, 김성균이 진한 인상을 남겼으며, ‘기생충’에서는 이정은이 관객들의 시선을 강타했다. 주연보다 더 기억에 남는 조연들로 인해 해당 영화는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주, 조연의 판도가 뒤바뀌게 되는 또 하나의 영화 같은 서사를 만들어냈다.

근 반백 년간 내 인생의 주연은 당연히 나였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딸을 만나게 된 후 조금씩 주, 조연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늦게 집에 돌아온 날, 잠든 아내와 딸을 보고 있으면 “내가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저 두 주인공을 잘 보살피라고 하늘에서 나를 조연으로 저들에게 보내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 세상의 평범한 가장들은 대부분 이러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리라. 잠시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점은 저들 머릿속에서 나는, 딸에게 츄이처럼 그녀만의 주인공으로 기억될 거라는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선 멋진 조연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그런 캐릭터의 하나로 망각되거나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연으로 봉사할 가치가 충분하다.

인생을 영화 만들기에 비유한다면,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내가 감독 혹은 주인공으로 만들어 나가는 듯싶지만 결국, 저들의 입에서 기억되고 평가되며 최종 완성될 것이다. 내 정신과 육체가 사라진다면 내가 일생 투자한 노력과 그 유산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들을 통해서 밖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회사의 주인공 역시 내가 아닐 수 있다. 함께 땀 흘리는 직원, 밤샘 끝에 만들어낸 브랜드와 제품들 혹은 그 제품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모든 소비자가 내 회사의 주인공일 수 있다. 꼭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 조연들이 우리 제품을, 회사와 직원을 그리고 나를 추억하며 오랜 시간 기억해준다면, 그 어떤 명작 영화의 주인공이 받는 사랑보다 내게 더 값진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츄바카는 영국 태생의 피터 메이휴라는 221cm의 거인이 연기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츄바카의 괴성 역시 그의 본 목소리였다. 4년 전 74세의 나이로 그는 하늘의 별이 돼 고향 우키로 돌아갔다. RIP 츄이~

 

최종한
세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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