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EU는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을 공식시행했다. 적정탄소비용 부과를 위해 마련된 CBAM의 대상품목은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품목이며, 2022년 기준 EU 수출규모는 51억달러, 우리 돈으로 6조8000억원에 달한다. 2025년까지로 예고된 전환기간에는 보고의무만 있지만, 2026년부터는 탄소배출량 검증은 물론 EU 탄소배출권 가격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 구입과 제출의무가 추가된다.

對EU 수출비중이 높은 철강과 알루미늄 업계는 CBAM 도입에 따른 손익계산에 분주하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세계에 수출한 한국산 철강 약 1817만톤 가운데 영국과 EU에 판매한 물량은 265만톤으로 14.6%에 달한다. 가뜩이나 코로나 이후 급등한 제조원가로 시름을 앓고 있던 철강·알루미늄 업계에 또 다른 숙제가 안겨졌다.

글로벌 통상전쟁도 CBAM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18년 유럽과 미국은 통상분쟁을 벌였지만, 이제는 탄소배출량이 높은 중국산‘더러운 철강(Dirty Steel)’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고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 지속가능한 철강협정(GSA)이라고 알려진 이번 협상의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철강 공급망은 크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최종안에서는 제외된 플라스틱 업종도 안심할 수는 없다. EU는 2026년 본도입 이전까지 배출량 산정방식 등 구체적인 규정을 다듬어 나갈 계획인데, 이 과정에서 초안에 있었던 유기화학, 폴리머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이 수출경쟁력을 지닌 품목 대부분이 영향권에 있는 셈이다.

탄소중립에 대한 요구와 규제는 강화되고 있지만, 정작 탄소중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중소기업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CBAM 도입을 인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21.7%에 불과했고, 유럽에 수출하고 있거나 수출계획이 있는 중소기업들의 54.9%는 CBAM에 대해 특별한 대응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CBAM에 수차례 우려를 표하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온 대기업들과 온도차가 느껴지는 지점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역시 CBAM 청구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EU에서 입법절차가 진행중인 공급망 실사지침까지 본격화되면, 대기업과 거래하는 모든 중소기업이 제재대상에 포함된다. 게다가 수출기업이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CBAM 대응비용과 의무를 협력업체에 전가한다면,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공급망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해법은 대·중기 전반에 걸친 공급망 전반의 탄소중립 경쟁력 제고다. 대응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단독으로는 탄소중립 이행이 어려운 만큼, 공급망의 선도위치에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본과 노하우를 공급해 산업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성장비결로 대·중기 수직계열화를 통한 산업경쟁력 유지가 꼽혀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기업의 인식전환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지난 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의 58.3%가 ESG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지만,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은 단 4.6%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1차 협력사는 그나마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영세한 2차, 3차 협력사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CBAM을 신호탄으로 막연한 선언에 그쳤던 탄소중립이 구체적 의무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긴밀한 파트너쉽으로 성장해온 수출한국호가 탄소중립으로 절름발이가 돼서는 안된다. 탄소중립형 공급망으로 거듭나기 위해 중소기업의 이행의지와 대기업의 상생의지가 박자를 맞춰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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