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가 가족기업 승계 걸림돌이다

가업승계는 전 세계 어디서나 기업가정신이 담긴 기술과 역량을 계승하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경영자는 후계자를 선정해 선대의 철학과 정신을 잇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고, 기업은 경영 능력이 있는 후계자가 혁신을 이룸으로써 발전과 번영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업승계는 국가적 현안이 되고 있다. 경영자는 후계자에게 기업을 제때 물려주지 못하고 있고, 늙어가는 가족기업에 대응하는 국가의 정책과 수단 제공은 느리다. 기술이 석류처럼 알알이 박힌 제품을 생산해 세계시장을 뛴 창업 1세대가 작열했던 태양이 기우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길만하다. 상속세가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 비해 만만치 않은 상속세 부담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지금도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세계 여기저기서 장마철에 죽순 솟구치듯 공개되고 있어 가족기업 경영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던 기술개발이 4차산업 활성화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급진적인 기술개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현금 보유량이 적고 자금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가족기업은 투자 비용을 시장으로부터 회수하기 전에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연구개발 피로도를 지니기 일쑤고, 미처 감가상각하지 못한 연구개발비용을 매몰비용으로 처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의 대물림’으로 매도는 이제 그만

가업상속 공제제도는 미봉책 불과

老老상속 해소방안 벤치마킹 절실

세계 경제전쟁의 최일선에 있는 가족기업 경영자가 신제품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쏟을 에너지를 상속세 대응에 소진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속세 문제까지 겹쳐 중장기 승계계획은 고사하고 단기 승계계획마저 마음 편히 세우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가족끼리 어떻게 협력하면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가족기업을 지지하고 그들이 펼치는 사업에 환호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 경영자는 부(富)의 대물림이라는 비난과 사회의 눈초리에 사기가 꺾이면서 승계 스트레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가족기업이 선대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축적한 기술, 노하우, 경영기법 등 사회·경제적 자산을 잇고 기업가정신을 대물림하며 지속 성장해 일자리를 창출, 유지해주길 바란다. 상속공제 규모를 확대하거나 대상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여러 번 고쳐왔다. 올해도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 때보다도 실질적인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들춰보면 이 정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대대로 영속하면서 가업을 잇는 상속에서는 기업이 인위적으로 무상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직계가족 사망으로 후계자에게 바통이 넘겨질 뿐이다. 새로 일할 경영자만 교체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기업 승계는 하나의 경제공동체 내에서 특정 재산의 명의만 바뀌는 것일 뿐인데도 부(富)의 이전으로 매도당한다.

현재 OECD 38개 회원국 중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곳은 24개국이며, 폐지국가도 이스라엘, 스웨덴 등 7개국에 이른다. 2004년 상속·증여세를 폐지한 스웨덴은 가업승계가 빨라지고 대기업과 초고액자산가들의 조세회피 전략의 틈이 없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우리도 이제는 상속세를 부(富)의 무상이전에 대한 세금으로 보고 과세를 통해 소득의 재분배와 빈부격차를 완화한다는 과거의 입법 취지가 현재도 유효한지 돌아봐야 한다. 노노(老老) 상속을 해소하고 원활한 승계로 기술·경영 노하우의 효율적인 활용 및 전수를 이룬 일본 등 OECD 회원국을 벤치마킹해 가족기업의 경쟁력 증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늙어가는 가족기업을 방치할 수는 없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한국가족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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