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공장 기업에 막대한 지원금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일본 내 공장을 건설 중인 가운데 미쓰비시케미컬이 소재 신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일본 내 공장을 건설 중인 가운데 미쓰비시케미컬이 소재 신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계 1위인 대만 TSMC가 일본 내 공장을 건설 중인 가운데 미쓰비시케미컬이 소재 신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쓰비시케미컬은 일본에서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용 고분자 소재 신공장을 건설해 2025년 3월께 가동키로 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노광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이와 관련 일본은 세계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신공장이 가동되면 미쓰비시케미컬의 생산능력은 기존 생산거점인 요코하마 쓰루미 공장과 합쳐 2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신공장 투자액은 수십억 엔 규모로 추산된다. TSMC 공장이 구마모토현에 자리한 만큼 미쓰비시케미컬의 신공장은 인접한 후쿠오카현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다.

닛케이는 “TSMC의 일본 진출을 계기로 소재 분야 투자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공급망 강화가 기대된다”며 “또 다른 포토레스트 소재 업체인 도쿄오카공업도 구마모토와 후쿠시마현에서 증산 투자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최근 기시다 일본 총리는 TSMC, 삼성전자, IBM,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에 이어 3등),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반도체 장비 제조 회사) 등 대형 반도체 회사 7곳의 대표를 히로시마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대표는 “히로시마 공장에 5000억엔(5조원)을 투자해 2026년부터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했고,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수조 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본에 반도체 투자가 몰리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일본 정부의 지원금’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요코하마에, TSMC는 구마모토, 마이크론이 히로시마에 투자를 했거나 할 계획이다. 여기에 맞춰 일본 정부는 투자한 액수만큼, 혹은 창출되는 일자리나 관련 업계 시너지 효과만큼 수백억 엔에서 수천억 엔씩 지원하고 있다.

홋카이도 공장을 짓고 있는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부흥을 꿈꾸는 일본 회사다. 2022년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 덴소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했다. 한때 반도체 1위를 달렸던 일본은 지금 ‘반도체 왕국’의 부흥을 꿈꾸며 엄청난 지원금을 뿌리면서 “일본으로 모이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 큰 반도체 회사들이 공장을 지으면 장비와 소재 회사들도 따라서 옮겨오게 된다. 이렇게 모인 기존 소재 장비 회사들은 몸집을 키우면서 반도체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일본 정부의 큰 그림이다.

단순히 일본 정부가 지원금을 준다고 반도체 회사들이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조금을 내걸었지만 일본만큼 투자가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에 반도체 투자가 몰리는 두 번째 이유는 일본 대기업들이 창출하고 있는 수요에 있다. 도요타, 소니, 덴소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반도체를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 자동차 산업에 필요한 반도체, 최근 일본이 밀고 있는 스마트 시티 개발과 우주 개발 사업에는 반도체가 많이 필요하다.

TSMC 공장 설립에 일본 정부뿐 아니라 소니, 덴소도 함께 투자하면서 반도체 선점에 나선 것에도 이런 배경이 있다. 삼성전자나 마이크론 같은 다른 반도체 회사들의 일본 진출 역시 이런 세계적인 규모의 일본 대기업들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일본이 ‘미중 갈등’을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 한국, 타이완, 일본을 모아 ‘칩4(CHIP4)’를 결성해 “우리끼리만 공급망 구축하자”고 하자, 일본이 “소부장은 우리가 강하다”면서 한국과 타이완 회사에게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압력으로부터도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걸 적절히 이용해 ‘일본에서 뭉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2년간 마련한 반도체 산업 지원 보조금 액수는 약 18조원에 달한다. 반도체 패권 전쟁 한 가운데 서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지점이다.

- 하제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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