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값이 금값이다. 과일 수요가 많은 추석 연휴가 다가오고 있어서다. 그런데 과일 작황은 좋지 못하다. 폭우에 폭염이 겹쳤다. 물가 상승에 명절 특수까지 포개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9월 과실 물가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3% 넘게 상승했다. 특히 제사상에 오르는 사과와 배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사과는 30%가 넘게 올랐다. 배는 23%가 넘게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추석이 다가올수록 더 오를 전망이다. 10kg 기준 사과 도매 가격은 올해는 평균 7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3만원 선이었다.

이럴 때 소비자들은 당연히 대체재를 찾게 된다. 특히 선물용 과일의 대체재는 과일 쥬스다. 제사상에 올릴 과일은 쥬스로 대체할 수 없다. 명절 선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델몬트 1.5리터 오렌지 쥬스 12개 가격은 4만원 안팎이다. 40미리리터 오렌지 쥬스 20개 한 상자도 29900원선이다. 쥬스는 쥬스고 생과일은 생과일이긴 하다. 그래도 쥬스가 생과일보다 부담이 덜한 건 숫자로 바로 알 수 있다.

 

돌⋅치키타와 주스시장 3등분

델몬트는 글로벌 1위 청과 가공 기업이다. 전 세계 과일 쥬스 시장을 돌과 치키타와 함께 3등분하고 있다. 글로벌 3대 과일 쥬스 브랜드인 델몬트와 돌과 치키타는 모두 미국 회사다. 그것도 뿌리는 캘리포니아다. 캘리포니아는 일조량이 일정하고 기후가 워낙 좋아서 과일 농사에 최적화된 지역이다. 주민들은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금을 기후세라고 부를 정도다.

델몬트는 캘리포니아라는 천혜의 기후 조건 속에서 탄생했다. 시작은 1886년 과일 통조림 제조사였다. 사실 델몬트의 핵심 기술은 과일맛이 아니었다. 그런 과일 맛을 장기 보관이 가능하도록 포장하는 패킹 기술이었다. 그래서 델몬트의 원래 이름은 캘리포니아 패킹 코퍼레이션이었다.

첫 생산지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농장이었다. 농장에서 수확한 오렌지를 통조림이나 쥬스로 가공하고 패킹해서 판매했다. 1892년 처음 소매 판매를 시작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델몬트의 유명한 로고는 1909년에 처음 등장했다.

델몬트는 스페인어로 산으로부터라는 뜻이다. 델몬트는 2023년 현재 글로벌 100여개 국가에서 판매된다. 전 세계에 40개의 생산 기지를 갖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구축된 생산 방식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포장과 운송의 일원화를 통해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1967년 캘리포니아 패킹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명도 브랜드명에 따라 델몬트 주식회사로 바꿨다. 처음 델몬트 브랜드가 등장했을 때 마케팅 카피는 이랬다. “라벨이 아닙니다. 품질에 대한 보증입니다.”

사실 델몬트 성장의 배경엔 미국의 식민주의와 플랜테이션 산업이 있다. 델몬트와 돌과 치키타 같은 청과 기업은 원재료인 과일을 싼 값에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는 기후는 좋지만 노동력은 비싸다. 그래서 델몬트가 주목한 지역은 필리핀이었다. 미국은 1898년부터 1946년까지 필리핀을 지배했다. 1905년 7월 미일간에 이뤄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바탕이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한다.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한다. 이것이 당시 일본 수상 가쓰라와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사이에 오간 밀약이었다.

글로벌 1위 과일 주스기업, 패킹기술로 세계시장 접수

필리핀 값싼 노동력⋅풍부한 작황 힘입어 성장 고속질주

재활용 가능 유리병 사용 ‘프리미엄 전략’으로 한국 상륙

델몬트는 필리핀에서 오렌지를 비롯한 열대 과일을 공급 받았다.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과일 작황은 델몬트한텐 최적의 성장 환경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델몬트는 필리핀 최대 농업 기업이다. 이런 성장 방식은 델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델몬트의 최대 경쟁자인 돌은 하와이를 노렸다.

돌의 본사 역시 캘리포니아다. 돌도 델몬트처럼 서진을 시작했다. 해외 농장 거점으로 하와이를 점찍었다. 돌의 창업주인 제임스 돌은 하와이 왕국을 점령하고 하와이 공화국을 세운 샌퍼드 돌의 사촌동생이다. 샌퍼드 돌은 1894년 하와이 공화국을 세웠다가 결국 미국으로 편입시켰다. 샌퍼드 돌은 최초의 하와이 주지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샌퍼드 돌은 하와이의 플랜테이션 이권을 측근과 가족에게 나눠줬다. 그 중 하나가 제임스 돌의 파인애플 사업이었다. 지금도 델몬트와 돌은 각각 오렌지와 파인애플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롯데칠성이 생산⋅유통 담당

델몬트와 돌이 서진은 했다면 다른 경쟁사인 치키타는 남진을 했다. 치키타의 원래 이름은 유나이티드 프루츠다. 유나이티드 프루츠는 남미로 진출했다. 남미에 미국 자본으로 철도를 놓고 철로 인근에 바나나 나무를 심었다. 생산비와 운송비를 줄이는 전략이었다. 1970년 유나이티드 브래드 컴퍼니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0년대에 다시 치키타로 개명했다. 델몬트도 돌도 치키타도 결국 태평양과 남미에서 미국의 확장전략과 보조를 맞추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델몬트는 뉴욕 증시뿐만 아니라 필리핀 증시에도 상장돼 있다.

그렇지만 이런 지정학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 델몬트는 상당한 부침을 겪게 된다. 1979년 당시 미국 2위 담배 회사였던 R.J. 레이놀즈한테 인수합병된다. 레이놀즈의 대표적인 담배가 낙타 로고로 유명한 카멜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사막에서 온 낙타가 캘리포니아 오렌지를 집어삼킨 셈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에서는 금연 운동과 생과일 수요가 늘어난다. 쥬스보단 생과일을 먹는 다이어트 식단과 건강을 생각한 금연이 확산되면서 모회사인 R.J 레이놀즈와 델몬트 모두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국 1988년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한테 매각된다. KKR이 델몬트를 인수한 이유는 경영을 정상화시켜서 더 비싼 값에 팔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델몬트의 비주력 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한다. 일단 델몬트를 델몬트 트로피컬 푸르츠와 델몬트 푸즈라는 2개 회사로 분리한다. 쉽게 말해 쥬스 회사와 캐첩 회사로 나눈 것이다.

역시 핵심은 쥬스 회사였다. KKR은 델몬트를 1989년 메릴린치를 비롯한 미일 컨소시엄에 매각한다. 1993년엔 아예 델몬트 트로피컬 푸르츠를 델몬트 후레쉬 프로듀서로 사명 변경을 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아는 델몬트다. 한국 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산지 과일 직배송 시대… 소비자들, 주스보다 생과일 선호

제로 콜라⋅사이다에도 밀려 매출 역성장 주가도 내리막길

새 성장모멘텀 찾는 과일주스 빅3, 中시장 선점 경쟁 과열

1990년대 델몬트는 델몬트 오렌지 쥬스만큼이나 쥬스를 담은 유리병으로 유명했다. 당시는 페트병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한국에서 델몬트는 프리미엄 전략을 썼다. 과일을 신선하게 마신다는 프리미엄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강하고 단단한 유리 용기를 사용했다. 한국에선 가정에서 보리차를 담는 물병으로 다수 재활용됐던 그 유리병이다. 델몬트 오렌지 쥬스 유리병은 1억 병 이상 판매됐다. 1997년엔 과육 함량을 2배 이상 높인 델몬트 콜드를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했다. 한국에서 델몬트의 생산과 유통은 롯데칠성이 맡고 있다. 롯데는 1980년대부터 델몬트의 라이센스를 취득해서 생산유통하고 있다.

1980~90년대 냉장고 한 편을 지키고 있던 추억의 유리병을  미니병으로 재탄생 시켜,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1980~90년대 냉장고 한 편을 지키고 있던 추억의 유리병을  미니병으로 재탄생 시켜,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문제는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과일 쥬스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델몬트는 원래 신선한 과일을 쥬스로 마신다는 점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그건 생과일이 귀하고 지금처럼 콜드 체인 유통망이 활성화되기 이전 얘기였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펼치면 산지직송 과일이 바로 직배송되는 시대다. 물론 쥬스보단 비싸지만 소비자들은 건강 때문에 쥬스보단 생과일을 선호한다.

사실 과일쥬스가 생과일을 먹는 것보다 혈당을 빨리 올라가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과일을 쥬스로 만드는 과정에서 식이섬유가 파괴되는 것도 사실이다. 단맛을 가미하려고 설탕이나 시럽을 추가하면 건강에는 좋을 게 없다.
 

지난해 매출 8% 감소

쥬스에는 환원쥬스와 착즙쥬스 2가지가 있다. 착즙은 갈아먹는 쥬스다. 흔히 집에서 믹서기로 갈아 먹는다. 반면 시중에서 판매되는 쥬스는 대부분 환원쥬스다. 과즙을 고온 농축한 원액에 정제수를 넣고 첨가물을 넣어서 당도를 높인 것이다. 과일 쥬스 10리터를 만들려면 농축액 2리터에 물 8리터가 들어간다.

여기에 구연산이나 액상과당을 넣어서 희석된 쥬스의 당도를 높이는 것이다. 물론 제조사마다 레시피가 다르다. 델몬트 역시 델몬트만의 레시피가 있다. 분명한 건 착즙쥬스의 유통 기간이 길어야 4주 이내인 반면에 환원쥬스의 유통 기간은 길면 1년 가까이 된다는 점이다. 글로벌 브랜드인 델몬트는 환원쥬스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첨가물이 들어간다. 웰빙시대에는 안 맞는 레시피다.

델몬트를 판매하는 롯데칠성의 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롯데칠성엔 에너지, 탄산수, 생수, 과일쥬스, 커피 등 여러 음료 카테고리가 있다.

2022년 기준으로 롯데칠성의 모든 음료 카테고리가 성장했다. 딱 델몬트로 대표되는 과일 쥬스 카테고리만 역성장했다. 매출이 8%나 감소헀다. 롯데칠성 매출은 특히 제로 사이다의 인기로 성장했다. 2022년 전체 매출은 2조8417억 원이었다. 13.4%나 늘어났다. 과거엔 콜라나 사이다 대신 과일 쥬스를 마시는 것이 웰빙이었다.

이젠 뒤집어졌다. 제로 콜라나 제로 사이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환원 과일 쥬스는 웰빙에선 먼 음료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농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과일음료 시장은 6000억 원 안팎까지 줄어들었다. 2017년엔 7429억 원이었던 시장이 13%나 쪼그라들었다. 편의점에서도 과일 음료 매출은 최하위다. CU편의점 음료 매출을 기준으로 보면 과일 쥬스 매출 비중은 6% 정도다. 제로탄산음료는 70%다.

이런 흐름 덕분에 델몬트의 주가도 시들하다. 현재 주가는 25달러 안팎이다. 매출은 2022년 기준 44억 달러로 2019년부터 계속 이 정도 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영업이익은 3억4천만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매출 6조원에 영업이익 4500억 원이라면 델몬트라는 글로벌 브랜드의 체급으로는 작다고 할 수 있다. 필리핀에선 여전히 국민주지만 글로벌에선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필요한 것이다.

솔직히 델몬트보다 다급한 건 라이벌 치키타다. 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감하면서 치키타 특유의 바나나 플랜테이션도 가로막힌 탓이다. 2001년 한 차례 파산했었다. 결국 브라질 투자회사인 사프라 그룹에 매각됐다. 매각가는 13억달러였다. 미국의 남미 플랜테이션 기업이 결국 브라질 기업에 인수된 것이다. 그래도 치키타 브랜드는 글로벌 바나나 시장의 25%를 장악하고 있다. 사실 오렌지와 달리 바나나는 전세계 4억명 인구의 주식이다.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델몬트와 돌 그리고 치키나는 새로운 돌파구로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사실 과일 쥬스 소비는 선진국보단 개발도상국에서 활발하다. 신선 과일에 대한 욕구는 커지지만 아직 공급과 유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1인당 과일 쥬스 소비량은 1리터 미만이다. 전세계 평균이 7리터다. 중국은 아직 쥬스를 더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과일 쥬스 시장은 희석 쥬스도 인기가 있을만큼 활황이다. 토종 쥬스 브랜드들도 등장했다.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으로도 22조‘음료도 웰빙’ 트렌드에 성장 멈춘 델몬트… 만리장성이 돌파구?원 정도다. 산에서 온 델몬트는 태평양을 건너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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