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삼각지역 명소 등극
독특한 컨셉트 녹인 식당·카페 즐비
오픈하는 가게마다 족족 성공가도

용리단길 풍경
용리단길 풍경

2010년대 초반, 서울 이태원 메인 골목에서 조금 벗어난 주택가 ‘경리단길’에 젊은 요식업자들을 주축으로 한 가게들이 하나둘 생기며 경리단길은 ‘힙’한 상권의 상징이 됐다. 이후 비슷한 모양새로 상권이 만들어지는 곳엔 어김없이 ‘O리단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망원동의 ‘망리단길’, 송파와 석촌호수 인근의 ‘송리단길’, 해운대구 우동의 ‘해리단길’ 등이다. 모두 비싼 권리금과 임대료를 피해 번화가 인근 주택가 골목에 가게들이 속속 생기며 상권이 형성됐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용리단길’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삼각지역까지 이어지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태원과 경리단길, 해방촌, 한남동의 뒤를 이어 용산의 최고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요즘 핫한 가게들은 용리단길에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줄 서서 먹는 식당이며 카페가 즐비하다.

오래된 상가 건물들과 다세대 주택, 노포가 뒤엉켜 있던 이곳에 맛집이 하나둘 늘기 시작한 건 2018년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대기업 신사옥이 들어서며 수요가 생긴데다 더블역세권에 강북, 강남 어디에서 오기에도 좋은 접근성, 접근성에 비해 저렴한 권리금과 임대료 덕분에 젊은 외식 창업자들이 이 일대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어 K-팝의 상징과도 같은 BTS의 소속사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사옥 이전, 청와대 이전 등의 이슈로 용리단길은 지금 용산을 넘어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신사옥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루프가든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루프가든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독특한 외관으로 오가는 사람의 눈길을 붙든다. 용산의 대표적인 건축 명소로도 유명한 이곳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했다. 커다란 백자 달항아리를 연상케 하는 건물 외관과 더불어 한옥의 중정을 연상시키는 건물 속 정원 등 한국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소들도 돋보인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이용하면 회사 근무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이 건축물을 즐길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신사옥 1층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창업자 고(故) 서성한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전시했던 박물관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 Amorepacific Museum of Art)로 명칭을 변경해 전시 운영 중인 미술관이다.

지하 1층 전시실에서는 고미술과 현대미술, 한국미술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기획전시가 열린다. 지상 1~3층까지 이어진 대형 공간 ‘아트리움’ 1층에는 미술관 로비와 뮤지엄숍, 전시공간인 ‘APMA 캐비닛’, 세계의 전시도록 라이브러리(apLAP)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OUR’ 전시를 끝으로 8월 30일까지 약 한 달간 다음 전시 준비를 위해 휴관 중이다. 다음 전시로는 언어의 조각가로 불리는 미국의 예술가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의 개인전 ‘언더 더 썬(Under The Sun)’을 선보일 예정이다.

쌤쌤쌤과 테디뵈르하우스

꺼거 매장 전경
꺼거 매장 전경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에서 삼각지역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목부터가 바로 용리단길이다.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골목 사이사이로 독특한 콘셉트의 식당 및 술집, 카페가 자리한다. 직장인부터 핫플 탐방 온 MZ세대들, 관광객들이 뒤엉켜 조금만 입소문이 나도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가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웨이팅 난이도 상급에 속할 만큼 긴 줄이 늘어선 가게가 있으니 ‘쌤쌤쌤’과 ‘테디뵈르하우스’다.

테디뵈르하우스 빵 가판대
테디뵈르하우스 빵 가판대

빨간 줄무늬 차양, 영어로 손님을 맞이하는 외부 입간판, 미국 가정집 주방을 떠오르게 하는 각종 수입 식료품 등 샌프란시스코 정취가 물씬 풍기는 쌤쌤쌤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1년 문을 연 양식당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인테리어에 ‘미국 살 때 쉐어하우스 이모님이 해주셨던 새우파스타’, ‘미국에서 친구 할머니가 해주시던 제철과일 샐러드’ 등 가게 사장님의 미국 유학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색적인 메뉴가 SNS를 통해 퍼지며 오픈과 동시에 긴 웨이팅 행렬을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름의 깐깐한 규칙도 있다. 1인 1메뉴 주문은 필수에 모든 일행이 도착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요즘엔 캐치테이블, 테이블링 같은 식당 예약 서비스 제공 앱을 통해서도 대기를 걸어놓을 수 있다.

쌤쌤쌤 잠봉뵈르 파스타
쌤쌤쌤 잠봉뵈르 파스타

쌤쌤쌤을 끼고 코너를 돌면 달큰 고소한 버터 냄새와 함께 프랑스 파리의 작은 빵집 풍경이 펼쳐진다. 크루아상 전문 베이커리 ‘테디뵈르 하우스’다. 잠봉햄을 넣은 페이스트리부터 도넛처럼 튀긴 다양한 형태의 크루아상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크루아상을 납작하게 눌러 구워 누룽지 같은 식감을 낸 ‘크룽지’, 겹겹이 두른 빵 사이에 커스터드 크림과 초콜릿을 올린 ‘뱅스위스’ 등이 인기다.

파리보다 더 파리 같은 실내 인테리어는 두말하면 잔소리. 테이블과 의자는 물론 선반, 시계와 같은 소품부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까지 파리의 빵집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역시 평일 낮에도 웨이팅을 감수해야 할 만큼 인기 있는 맛집인 데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쌤쌤쌤과 테디뵈르 하우스의 대표가 같다는 것. 모두 연 매출 100억을 달성한 용리단길의 외식업자, 김훈 셰프의 작품이다.

효뜨와 꺼거, 그리고 키보

효뜨 매장 전경
효뜨 매장 전경

경리단길에 ‘장진우 셰프’가 있다면 용리단길엔 ‘남준영 셰프’가 있다. 남준영 셰프는 김훈 셰프 이전에 용리단길의 부흥을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용리단길 골목에서 이렇다 할 식당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던 2019년, 남준영 셰프는 베트남 음식점 ‘효뜨’를 선보였다. 이후 홍콩식 중식당 ‘꺼거’, 와인바 ‘사랑이 뭐길래’, 일본식 스텐딩 선술집 ‘키보’ 등 오픈하는 가게마다 족족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용리단길 부흥의 시작을 알린 효뜨는 베트남 노상 식당을 콘셉트로 한다. 얼마나 현지스럽게 잘 꾸며놨으면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범죄도시2’의 베트남 씬 촬영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용리단길의 터줏대감과도 같은 식당이지만 여전히 그 인기는 뜨겁다. 베트남식 국밥과 쌀국수를 내추럴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힙’함은 쉽게 따라할 수 없기 때문. 튀긴 계란을 피쉬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와 해산물을 넣고 매콤하게 끓인 쌀국수가 별미다.

2021년 문을 연 홍콩식 중식당 ‘꺼거’는 스스로 ‘홍콩 노포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재밌는 인테리어와 자장면을 팔지 않는 홍콩요리 레스토랑’이라고 소개한다. 오래된 1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홍콩식 볶음밥인 ‘원앙볶음밥’, 광둥식 비빔국수인 ‘깨장 치킨 미엔’, 매콤새콤 당면 국수 ‘쏸라펀’ 등 아직은 다소 낯선 홍콩 요리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키보 메뉴
키보 메뉴

효뜨와 꺼거에서 베트남과 홍콩을 마주했다면 이번에는 일본을 느껴볼 차례. 꺼거를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준영 셰프는 또 하나의 가게 문을 열었다. 일본식 다치노미를 모티프로 만든 ‘키보’다. 다치노미는 일본의 선술집 문화로 서서 마시는 술집을 뜻한다. 일본 후쿠오카의 노동자들이 고단했던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간단하게 맥주 한잔 들이키고 갔던 선술집에서 유래했다.

용리단길 인근 직장인들에게 후쿠오카의 다치노미를 자처하며 만든 곳인데 사실 직장인들보다는 새롭고 이색적인 경험을 좋아하는 MZ세대의 핫플로 유명하다. 1층이지만 지하로 움푹 패인 다세대 주택 주차장 같은 곳에 자리하는 것도 독특하다.

일본식 오이무침과 유자 토마토 사라다, 야끼교자 등과 같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기 때문에 오히려 늦은 밤, 뭔가 아쉬울 때 가볍게 한잔하고 갈 것을 권한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 shinda.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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