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7) 하도급법상 부당특약 금지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대형건설은 중소건설에 오피스텔 신축공사 중 토목 공사를 하도급 줬다. 과거 주민들의 민원에 시달린 경험이 있던 대형건설의 담당자는 중소건설에 “공사 수행 중 발생한 시설물 훼손에 대한 보수비용 및 민원 처리비용 일체를 중소건설이 부담한다”는 특약(민원특약)을 요구했다. 중소건설 대표는 민원특약을 중소건설의 잘못으로 인한 민원만 중소건설이 책임진다는 내용으로 이해했고, 무엇보다 공사 현장이 개발 중인 대형택지지구에 있어 민원을 제기할 주민이 없다는 생각에 민원특약을 수용했다. 다행히 민원 없이 공사가 끝나 중소건설이 추가로 부담한 비용은 없었다.

얼마 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특약 관련 직권조사를 실시한 후 민원특약이 부당특약에 해당한다며 민원특약을 요구한 대형건설에 경고처분을 했다. 경고처분으로 인한 벌점으로 향후 공공입찰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한 대형건설은 경고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판사 : 민원특약이 하도급법상 금지되는 부당특약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군요.

대형건설 : 판사님. 민원특약은 중소건설의 잘못으로 발생한 비용만 중소건설이 부담한다는 내용입니다. 중소건설 대표도 그렇게 이해하고 계약했습니다.

공정위 : 그렇게 당연한 내용이라면 특약을 했겠습니까? 민원이 있었다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중소건설에 모든 비용을 넘겼을 겁니다.

대형건설 : 왜 저희를 나쁜 회사 취급하세요? 사실 공사 현장 인근에 주택이 없어 발생할 민원도 없었습니다. 적용될 가능성이 없는 특약이었습니다.

공정위 :  아닙니다. 그랬다면 담당자가 민원특약을 요구하지 않았겠죠.

 

하도급법이란

하도급법은 공정거래법에서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로 규율되던 내용 중 일부를 하도급 거래의 특수성을 반영해 독립된 법률로 제정한 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도급 거래는 폭넓게 이뤄지고 있어 실무에서 하도급법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과거에는 주로 건설업계에서 문제가 됐지만, 이제는 전통적인 산업이 아닌 엔터업계, IT업계에서도 하도급법 관련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죠.

하도급 거래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해 공정위를 통한 행정제재와 검찰을 통한 형사제재를 함께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도급 분쟁이 빈번한 이유는 한국 특유의 갑을 문화와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산업구조 때문입니다. 하도급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는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개입이라는 측면 외에 갑을관계 개선을 통한 공정한 경쟁 기반 조성이라는 측면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도급법의 적용 대상

하도급법은 기본적으로 원사업자가 자신의 본업 중에서 일부분을 수급사업자에게 위탁하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하도급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 원사업자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어야 하고, 하도급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수급사업자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해당해야 합니다. 하도급법은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원사업자, 수급사업자의 요건을 충족하면 원사업자가 실제로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원사업자에게 하도급법상 여러 의무를 부담시킵니다. 이 점에서 거래상 우월한 지위가 인정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하는 공정거래법의 거래상 지위 남용 규제와 큰 차이가 있죠.

원사업자의 의무와 부당특약 금지

하도급법은 수급사업자 보호를 위해 원사업자에게 서면의 발급 및 서류보존 의무, 선급금 지급의무 등 의무사항을 규정하고,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금지, 하도급 대금의 부당 감액 금지 등 금지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중 2013년 신설된 부당한 특약 금지는 점차 민원처리 비용이나 안전관리 비용이 증가되면서 더 빈번하게 문제되고 있습니다. 부당한 특약이란 수급사업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조건을 의미합니다. 모든 민원처리 비용을 수급사업자에게 부담시키거나 안전소홀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수급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특약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부당특약의 판단기준

실제 사건에서 부당특약인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앞 사례에서 중소건설이 대형건설의 잘못된 지시 때문에 민원비용으로 1억원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대형건설이 민원특약을 근거로 중소건설을 상대로 1억원을 청구한다면 법원은 대형건설의 청구를 인용할까요? 기각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민원특약이 부당특약이라고 판단하는 것만으로는 대형건설의 청구를 기각할 수 없습니다. 뒤에서 보는 것처럼 민원특약이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으로 인정되더라도 무효가 아니기 때문이죠. 대형건설의 청구를 기각하기 위해서는 민원특약을 축소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수급사업자 보호를 위해 특약이 불분명할 때에는 수급사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민사법원은 민원특약을 “대형건설의 귀책사유로 인한 민원비용까지 중소건설이 부담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석한 후 대형건설의 청구를 기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원특약이 위와 같이 축소해석된다면 그 특약을 중소건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계약조건, 즉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으로 볼 수 있을까요? 대법원의 명시적 판단은 없지만, 상당수 법원은 수급사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큰 계약 조항은 그 자체로 하도급법상 금지되는 부당특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수급사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부당특약이 아니라고 보면, 오히려 원사업자가 일부러 애매한 조항을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다가 나중에 공정위 조사 등 법적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축소해석을 주장하며 하도급법 규제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법원은 실제 적용 가능성이 없거나 무효인 특약까지도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 사례에서 대형건설의 주장은 모두 인정되기 어려운 것이죠.

부당특약의 효력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으로 인정되면, 그 효력은 어떠할까요? 국가계약법, 지방계약법은 부당특약이 무효라고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역시 특정한 유형의 부당특약을 무효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하도급법은 부당특약의 효력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은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약을 무효라고 보지 않습니다.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에 해당하더라도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게 부당특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죠. 이는 하도급 거래의 당사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죠.

그렇기 때문에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국가계약법 등과 같이 하도급법에도 부당특약을 무효로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고, 이러한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수급사업자 보호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불분명한 내용의 특약까지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으로 보는 법원 실무와 위 개정안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혹시라도 위 개정으로 인해 하도급법상 부당특약의 인정 범위가 줄어드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초래될 여지는 없는지 고민할 필요는 있습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위 사례는 서울고등법원 2021. 8. 26. 선고 2020누67706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9. 1. 31. 선고 2018누46386 판결 등을 바탕으로 필자가 창작한 내용입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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