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공장 짓는 TSMC, 우리기업 입지 좁아지나?

대만 TSMC가 첫 유럽 생산기지로 독일을 선택했다는 계획이 공식 확정됐다.
대만 TSMC가 첫 유럽 생산기지로 독일을 선택했다는 계획이 공식 확정됐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첫 유럽 생산기지로 독일을 선택했다는 계획이 공식 확정됐다. TSMC가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8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은 TSMC가 이날 이사회를 열고 독일 드레스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안건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위해 TSMC는 독일 자회사인 ESMC에 34억9993만유로(약 5조7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 전체 투자금은 100억유로(약 14조4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TSMC의 독일 공장 설립은 2021년부터 추진됐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독일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를 물색해왔다. 착공은 내년 하반기다. 제품 생산은 2027년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TSMC는 이번 투자가 유럽연합(EU) 반도체 지원법(ECA·European Chips Act)에 따라 계획됐다고 설명했다. EU의 반도체 법안은 430억유로(약 60조원)를 투입해 유럽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현재 10% 미만 수준에서 2030년 20%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 반도체법에서 제한하는 범위 안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전체 투자금 중 50억유로는 독일 정부가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공장 설립으로 독일 내 일자리 2000여개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에 들어서는 TSMC 공장은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 등과 함께 합작 투자로 건설된다. TSMC가 지분의 70%를 갖고 협력사들이 각각 지분 10%씩을 보유한다.

독일 공장에서는 주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세계 자동차 산업 중심지 중 한 곳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큰 지역이기 때문이다.

앞서 장샤오창 TSMC 선임부사장은 “유럽에 들어설 신규 공장은 28나노미터 성숙 공정을 기반으로 한 차량용 반도체 등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업 역량을 키우기 위해 향후 수년간 반도체 산업에 200억유로(약 29조원)를 투자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제조업 강국인 독일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유다. 앞서 미국 인텔은 지난 6월 독일 마그데부르크 반도체 공장 확장에 300억유로(약 43조45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TSMC는 대만과 중국, 일본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애리조나에도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TSMC는 이날 이사회에서 애리조나 공장에도 45억달러를 투입하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TSMC가 대만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있어 미국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TSMC가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유럽 투자 계획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대만, 유럽 등 주요국들은 반도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에 방점을 찍은 이들 국가는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 생산 시설 유치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한국산 반도체가 향후 TSMC, 인텔, 인피니온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에게 밀려 유럽 시장에서의 입지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이미 계획돼 있는 해외투자만 수백조원 규모에 이르는 상황이라며 무리해서 추가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TSMC와 인텔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독일행’을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진출에 대한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 하제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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