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 탐험한 파웰처럼
새 시장·미래를 향한 무한도전
코로나 넘어 경제재도약 견인

최근 버킷 리스트를 챙기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은퇴 후 시간의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즐기는 소소한 행복이 나름 쏠쏠하다. 지난 5월 미국 서부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마침내 단행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해 몬태나와 콜로라도 덴버까지 3주에 걸친 자동차 여행이었다. 미국 서부는 광활한 대지에 수십억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다. 칼데라는 물론 단층과 화산지형, U형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빙식곡과 각종 야생동물로 눈호강이 보통은 넘는다. 고교 시절 책으로 배우고 달달 외웠던 다양한 지질(地質)의 형상을 눈으로 확인하니 감동적이다. 사진에 담고 동영상으로 찍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데스밸리는 캘리포니아 동쪽에서 네바다주에 걸쳐있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립공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혹한 자연환경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다.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 없이 척박한 땅덩어리는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진다. 1913년 56.7도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하면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혹서(酷暑)로 전설적인 장소다. 숨 쉴 때마다 훅훅 들어오는 열기가 낯설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인간을 거부하는 황량함은 아름다움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19세기 중반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진하던 개척자들이 험준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피하기 위해 계곡으로 방향을 틀어 진로를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주친 것이 생명이라고는 찾기 힘든 죽음의 계곡. 말을 잡아먹고 마차를 불태워서 연료로 사용하는 등 온갖 사투를 벌이다가 죽고 다치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진한 현장이다. 데스밸리 여행자센터에서 당시 개척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역사를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랜드캐년에서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콜로라도강이 협곡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다. 파웰 호수는 콜로라도강의 일부로 유타와 아리조나에 걸쳐있다. 가족 단위의 캠핑족은 보트를 타고 낚시를 하면서 여름 한 철을 보내는 곳이다. 또한 그랜드캐년의 인근에는 ‘파웰’이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존 파웰’은 19세기 중반에 콜로라도강을 따라 그랜드캐년의 협곡을 통과한 최초의 백인이며 서부의 곳곳을 탐험한 선구자이다. 보트를 타고 3개월 동안 위험한 급류와 악전고투하면서 콜로라도강의 곳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곳을 여행하다 보면 계곡마다 래프팅하는 청년들을 볼 수 있는데 마치 150년 전 개척자 파웰을 보는 듯하다. 거친 물결이 칼날처럼 일어나는 급류를 온몸으로 이겨내며 노 젓는 모습이 진취적이고 감동적이다.

척박하고 황량해서 아름다운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이야 관광이나 트래킹을 하면서 감상하는 멋진 풍광일 뿐이지만, 19세기의 개척자들에게는 목숨을 담보로 사투를 벌이면서 극복해야 했던 거친 현실이고 거대한 장벽이었을 터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모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진취성. 난관을 극복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끈기. 황량하기만 한 데스밸리에서, 그랜드캐년을 유유히 관통하는 콜로라도강에서 서부 개척 시대의 프론티어 정신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것같이 생생하다.

거친 자연에 대한 여정과 그 거침에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여행자를 성찰하게 한다. 세월이 흐르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패기가 어느 순간 박제화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을 핑계 댈 순 없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열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중소기업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보트 한 척에 의지한 채 거친 그랜드캐년 협곡을 탐험한 파웰처럼 새로운 시장과 미래를 찾아 나서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코로나와 복합위기라는 거친 겹악재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물리적 은퇴 나이를 넘었음에도 미래를 말한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중소기업인들의 개척정신이 또 어떤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장경순
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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