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대출잔액 1천조 돌파
다중채무 취약차주 약 20% 증가
공공요금 상승에 부담 눈덩이
채무조정 등 부채정리 급선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19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고, ‘다중채무자’ 대출잔액은 720조3000억원에 달했다. 사진은 지난 9일 인천시 남동구 모래내시장.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19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고, ‘다중채무자’ 대출잔액은 720조3000억원에 달했다. 사진은 지난 9일 인천시 남동구 모래내시장.

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 저하로 자영업자들이 대출을 갚기 어려워져 빚을 돌려막지만, 고물가가 지속되며 경영 부담이 늘며 다시 대출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탈출구가 안 보이는 대출의 늪에 놓인 자영업자들의 부실 위기를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19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3분기(1014조2000억원)에 이어 연속으로 1000조원을 넘었으며,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4분기의 684조9000억원에 비하면 50% 가까이 늘었다.

대출잔액 1년새 90조 증가

이 가운데 3개 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이 있는 ‘다중채무자’ 대출잔액은 720조3000억원에 달했는데, 전년 같은 기간 630조5000억원에서 1년 사이 거의 9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자영업자 차주도 같은 기간 동안 262만1000명에서 307만명으로 늘었으며, 다중채무자이며 저신용(7~10등급)·저소득(하위 30%)의 취약차주는 28만1000명에서 33만8000명으로 20% 가량 증가했다.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 또한 점차 다시 오르는 모양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0.26%로 이전 3분기 0.19%보다 0.07%포인트 상승했는데, 코로나 사태 초기 2020년 2분기의 0.29% 이후로 가장 높은 수치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을 소득별로 살펴보면, 저소득층(소득 하위 30%)은 지난해 3분기 0.7%에서 4분기에는 1.2%로 0.5%포인트 높아졌는데, 이는 2019년 4분기 1.3% 이후 최고 수치다. 고소득층(소득 상위 30%)의 연체율도 0.7%로 2020년 2분기 0.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저소득 자영업자는 연체율이 가장 빨리 오를 뿐 아니라 대출 증가 폭도 가장 컸다. 저소득층의 전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2019년 4분기 70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에는 119조9000억원으로 69.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소득층(112조9000억원→186조원, 64.7%)이나 고소득층(501조2000억원→713조9000억원, 42.4%)보다 높은 증가율이다. 저소득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비은행 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 저소득층의 은행 대출이 2019년 4분기부터 2022년 4분기까지 3년간 45.8% (49조3000억원→71조9000억원) 늘어난 데 비해, 상호금융 대출은 2.3배(16조1000억원→37조1000억원) 늘었다. 중소득층(32조8000억원→61조6000억원, 87.8%)과 고소득층(116조8000억원→ 206조2000억원, 76.5%)보다 월등히 높았다.

대출연장 종료시 연체율 상승 우려

이처럼 자영업자들의 대출이 늘어난 것은 계속되는 고물가 추세로 인해 비용부담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2023년 4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7% 올랐다.

소비자물가 추이는 지난해 7월 6.3% 상승으로 2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고 줄곧 5%를 기록했다. 올해 초 1월 5.2%에서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14개월 만에 3%대로 진입하긴 했지만, 공공요금 인상 및 원자잿값 변동 등이 변수로 꼽힌다.

실제로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적자와 더불어 물가 상승과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지난해 12월 1분기 요금 인상 13.1원보다 적은 kWh당 7원 가량 인상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환대출, 정책자금 등 자영업자의 연착륙을 위해 다양한 금융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오는 9월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가 종료되면 본격적으로 대출 부실이 발생하며 연체율이 가파르게 오를 위험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정부가 3년 4개월 만에 ‘코로나 엔데믹’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대출 부담의 ‘금융 팬데믹’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전체 대출의 70%가 넘는 다중채무는 금융 팬데믹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취약차주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이상으로 정의해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차주 비중 추이를 분석한 결과,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전체 차주 대비 취약차주 비중은 2.1%포인트 오를 것으로 추산됐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금융시장 상황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설정하되 취약차주 특성을 반영한 정책금융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채무조정 등 부채정리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되, 지원대상을 효과적으로 선별하는 데 필요한 통계를 보다 면밀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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