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3) 공정거래법상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중소건설은 대형건설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 입찰에 낙찰예정자를 선정해 불필요한 경쟁을 막자는 것이었다. 중소건설은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러 번의 입찰 결과 대형건설이 이익이 많이 나는 공사를 대부분 가져갔다. 중소건설은 속았다는 생각에 검찰에 담합을 신고했다. 검찰은 중소건설에 압수수색 전까지 신고사실을 누설하지 말라고 했다. 

중소건설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검찰은 대형건설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대형건설 등 여러 회사를 기소했다. 다만 중소건설에 대해서는 자진신고를 이유로 기소를 면제해줬다.

얼마 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중소건설에 담합을 이유로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반면 담합을 주도하고 가장 많은 이익을 본 대형건설에는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대형건설은 압수수색을 받자마자 공정위로 달려가 담합을 신고했고, 공정위는 이를 이유로 대형건설에 대한 과징금을 모두 면제해줬던 것이었다. 중소건설은 자신이 과징금을 면제받아야 한다며 공정위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판사 : 중소건설이 과징금 면제를 구하는 사건이네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중소건설 : 중소건설이 검찰에 담합을 최초로 신고했고, 그 결과 담합이 밝혀질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최초 신고자이므로 과징금이 면제돼야 합니다.

공정위 : 아닙니다. 최초 신고자로 과징금을 면제받기 위해서는 공정위에 신고해야 합니다. 중소건설은 공정위가 아닌 검찰에 신고했으므로 최초 신고자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공정위에 담합을 최초로 신고한 사업자는 대형건설입니다.

중소건설 : 아니. 대형건설은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고 나서 신고했잖아요. 그리고 대형건설이 담합을 주도했고, 가장 많은 이익을 본 것도 아시죠?

공정위 :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건설이 최초 신고자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중소건설 : 검찰에서 대형건설이 증거를 숨길 수 있다며 압수수색이 있기 전까지는 신고사실을 제3자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신고하지 못한 겁니다.     

공정위 :  그 부분은 검찰에 가서 이야기하세요. 저희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는 담합에 참여한 사업자가 위법행위를 자진신고하면 제재 감면 등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담합은 사업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이뤄져 적발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위반행위자에게 담합을 신고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죠. 

“누가 자진신고자로서 과징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가”는 주요 담합 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쟁점입니다. 담합을 한 사업자들끼리 서로 자기가 1순위 자진신고자라고 다투는 경우까지 있죠.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의 변천

리니언시는 1996년에 도입됐습니다. 다만 당시 공정거래법은 “과징금을 감면할 수 있다.”고 규정해 과징금의 감면 여부가 불확실했습니다. 담합을 주도한 사업자에 대해서는 자진신고자 지위를 인정하지도 않았죠. 감면 여부가 불확실하고 주도자에게는 혜택이 없어, 자진신고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업자에 대해 과징금을 의무적으로 감면하는 법령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1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과징금 전액을 반드시 면제하도록 했죠. 심지어는 담합을 주도한 사업자도 과징금을 전부 면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먼저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과징금을 면제받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업계 1위인 회사가 자진신고를 통해 경쟁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죠. 하지만 담합을 주도한 회사에 대한 감면은 필요악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졌죠. 

담합 주도자는 면제받을 수 있는 과징금이 고액이기 때문에 주도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리니언시가 활성화된다는 이유였죠. 실제 법령 개정 후 주도자에 의한 자진신고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1순위 자진신고자의 요건

1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시정조치, 과징금이 면제됩니다. 담합에서 수백억 또는 수천억의 이익을 얻은 경우에도 과징금이 모두 면제되죠. 1순위 자진신고자가 되려면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하기 전, 담합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담합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최초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진신고자는 조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공정위에 성실하게 협조해야 하죠. 공정위의 ‘부당한 공동행위 자진신고자 등에 대한 시정조치 등 감면제도 운영고시’(감면고시)에서는 “공정위의 동의 없이 감면신청 및 행위사실을 누설하면 성실하게 협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죠.

 

중소건설이 공정위에 자진신고 하지 않은 이유

검찰은 공정위와 별도로 자진신고 1순위자에 대해서는 기소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카르텔 사건 형벌감면 및 수사절차에 관한 지침’(형벌감면 지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검찰과 공정위의 자진신고자 요건은 유사하지만 접수 장소가 다릅니다. 

공정위로부터 1순위 자진신고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세종시에 있는 공정위 카르텔총괄과에 신고해야 합니다. 반면 검찰의 기소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서초동에 있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에 신고해야 하죠. 

두 기관 모두에 신고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공정위 감면고시처럼 검찰의 형벌감면 지침 역시 검찰의 동의 없이 형벌감면 신청을 제3자에게 누설하면 협조의무 위반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형벌감면 지침에서 정한 비밀유지 대상인 제3자에 공정위가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정위 감면고시의 비밀유지 대상인 제3자에 검찰이 포함되는지 역시 불명확합니다. 신고자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중소건설로서는 검찰의 압수수색 전에 공정위에 신고하기가 망설여졌겠죠.

사례와 유사한 사안에서 법원은 중소건설의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공정거래법의 여러 규정을 종합적으로 보면, 공정거래법상 자진신고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검찰이 아닌 공정위에 신고해야 하는데, 대형건설이 공정위에 가장 먼저 신고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입법적 해결의 필요성

과거 공정위와 검찰이 자진신고 정보를 공유하고 그에 따라 자진신고 순위와 형사면책 여부를 결정한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마련됐으나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형사처벌과 과징금을 모두 면제받기 위해서는 검찰과 공정위에 담합 사실을 개별적으로 신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검찰이나 공정위에 신고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담합을 이유로 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른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과징금, 형사처벌, 기타 행정제재의 감면 요건과 절차가 모두 다른 것이죠.  

중소건설과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법률자문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담합신고에 앞서 법률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은 분명 이상합니다. 입법을 통한 해결이 필요해 보입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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