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2) 부당한 거래거절의 판단기준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한국드론연구원은 차세대 한국형 드론 개발을 결정했다. 먼저 부품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드론 본체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드론전자는 부품사업에 참여해 핵심 부품인 비행제어장치 개발을 맡았다.

한국드론연구원은 부품개발이 완료되기 전 본체개발을 위한 입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중기전자가 우선협상대상자로, 드론전자가 차순위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중기전자는 드론전자 등 부품개발업체들에게 한국드론연구원과의 협상을 위한 견적서 제출을 요구했으나, 드론전자는 견적서 제출을 거부했다. 한국드론연구원은 부품개발업체와의 협력방안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기전자를 탈락시킨 후 차순위협상대상자인 드론전자와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중기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드론전자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하고, 법원에 드론전자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판사 : 부당한 거래거절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이네요. 드론전자는 왜 견적서 제출을 거부했나요?

드론전자 : 중기전자를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기전자는 드론개발사업과 같은 대형 개발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없고, 재정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중기전자를 믿고 수년간 함께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중기전자 : 저희가 능력이 없었으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겠어요? 개발사업 경험이 부족한 점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번 개발사업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번 드론개발사업 실적을 바탕으로 다른 개발사업에 참여할 계획이었는데, 모두 무산됐습니다.

드론전자 : 솔직히 신생기업 가산점 때문에 선정됐잖아요. 판사님. 저희는 다년간 적자를 감수하고 부품개발을 했습니다. 비행제어장치 개발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더 투입돼야 합니다. 저희는 본체개발사업 입찰에 참여할 때부터 낙찰에 실패하면 부품개발을 포기할 계획이었습니다.

중기전자 : 거짓말입니다. 드론전자는 저희를 떨어뜨려 자신이 본계약을 체결할 목적에서 견적서 제출을 거부한 것입니다.

 

불공정거래행위 중 부당한 거래거절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업자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계약체결의 자유, 상대방 선택의 자유, 계약내용의 자유, 계약방식의 자유를 가집니다. 계약자유의 원칙에는 상대방의 계약요청에 대한 거절의 자유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거래거절을 불공정거래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업자에게 거래거절의 자유가 인정된다고 해도 부당한거래거절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공동의 거래거절, 예를 들어 부품을 생산하는 사업자들이 합심해 그 부품을 이용해 완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피해를 주기 위해 함께 거래거절을 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는 없겠죠. 이러한 행위는 금지돼야 합니다.

 

부당한 거래거절 판단기준

반면 단독의 거래거절은 원칙적으로 적법합니다. 오랜 기간 거래를 하다가 거래를 중단한 경우도 마찬가지죠. 대법원 역시 원칙적으로 적법하지만, 예외적으로 특정사업자의 거래기회를 배제해 그 사업활동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거나 오로지 특정사업자의 사업활동을 곤란하게 할 의도를 가진 유력사업자에 의해 그 지위 남용행위로써 행해지거나 또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거래강제 등의 목적 달성을 위해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당하게 행해진 경우에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0. 8. 26. 선고 201028185 판결).

 

거래거절의 의도와 목적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적용해 봐도 구체적 사건에서 거래거절이 적법한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개별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위 판결을 포함해 대법원의 여러 판결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한 가지 경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거래거절을 한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냐를 부당성 판단의 중요 판단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거래거절이 합리적인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거나 다른 부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뤄진 것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거래거절의 의도와 목적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면, 그 거래거절이 적법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의도와 목적의 판단방법

거래거절의 당부를 다투는 소송에서 거래거절의 의사와 목적이 무엇이냐가 핵심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거래거절의 목적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거래거절의 경위 등에 관한 증거를 바탕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거래거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은 증거 부족을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대기업 담당자는 상급자에게 진행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협상경위 등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사장이 직접 협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자료가 드물죠. 분쟁이 발생한 후에 사장이 사실확인서를 작성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분쟁당사자가 작성한 문서는 언제 작성됐는지가 중요합니다.

분쟁이 발생한 후에 작성된 문서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성됐다고 의심받기 때문이죠. 대기업이 거래거절 경위에 관한 내부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하면, 중소기업이 그 보고서가 틀렸다고 다투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중소기업의 과제는?

앞서 본 사례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드론전자가 견적서 제출을 거절한 행위를 부당한 거래거절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중기전자가 드론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의 제1심법원도 거래거절이 위법하다고 봤죠. 하지만 공정위 결정에 불복한 드론전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드론전자의 거래거절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사법원은 증거로 제시된 드론전자의 내부 문서와 임직원의 이메일 등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그 내용을 인정했다는 점이 두 법원의 판단이 달라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대법원에서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확정됐고, 민사소송에서도 중기전자가 승소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거래거절 분쟁을 대비해 당장 대기업에 준하는 보고시스템을 갖추거나 거래과정을 상세히 기록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연히 그 시간과 노력으로 좋은 사업자를 찾아 거래거절 자체를 당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거래거절 경위를 상세히 기록해뒀다고 소송에서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혹시 모를 법적 분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예컨대 중요 거래를 진행하며 그 과정을 직원들과 이메일을 통해 공유해 두는 정도는 필요해 보입니다. 적어도 이메일은 사장님이 혼자 보기 위해 작성한 메모와 달리 언제 작성됐는지가 확실하니까요.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
허승 부장판사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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