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섬유산업은 수출한국호의 선두에 있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섬유산업은 수출의 54%, 생산의 22%, 고용의 36%를 담당했다.

그러나 섬유산업은 지금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섬유수출은 122억달러로 15조원에 불과했다. 섬유산업이 87년 단일산업 최초 수출 100억달러 달성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것을 고려하면 고작 20억달러 밖에 수출이 늘어나지 못한 셈이다. 경영지표도 좋지 않다. 섬유산업의 영업이익율은 제조업 평균 4.4%의 절반 수준인 2.9%에 불과하고, 50대 이상 근로자 비중은 45%로 제조업 평균 19%를 훌쩍 뛰어넘었다.

섬유산업은 원사()를 만드는 방적·방직, 실로 면을 만드는 편직·제직, 면을 가공하는 염색, 그리고 완제품을 만드는 봉제로 나눠지는데, 치솟는 인건비와 전기료 부담을 견디지 못한 방직회사들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90년대 367만추에 달했던 면방설비는 2017100만추 수준까지 쪼그라들었고,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로 설비를 이전했다.

그나마 대기업 위주로 구성돼 해외이전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방직기업들과 달리, 임가공 중심의 중소기업은 더 상황이 심각하다. ·제직, 염색, 봉제 기업들은 기업규모가 작아 해외이전도 어렵고 기술개발에도 한계를 보인다. 게다가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코로나 이후 해외주문이 급감하면서 많은 중소기업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섬유산업이 미래먹거리로 재조명되면서 앞 다퉈 진흥책을 내놓고 있다. 강철보다 질기고 고온에도 불타지 않는 슈퍼섬유 개발, 친환경 염색가공, 리사이클 섬유에 이르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산업구조를 만들고 있다. 각국이 섬유산업 부흥을 꿈꾸고 치열하게 글로벌 선도다툼을 벌이는 사이, 한국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 섬유산업을 위해 가장 시급한 처방전은 뿌리산업 범위조정이다. 정부는 지난 2012년 뿌리산업법을 마련하고, 제조경쟁력의 근간인 뿌리 중소기업의 생존과 도약을 지원하고 있다. 섬유산업은 주조, 금형 등 기존 뿌리산업과 직면한 문제점이 유사한 만큼, 외국인근로자 고용한도 확대, 특화단지 조성 등 기존 뿌리산업정책의 문호를 열어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섬유산업이 뿌리산업에 포함되지 않을 뚜렷한 이유도 찾기 어렵다. 생산부터 가공에 이르는 다양한 섬유기술 역시 제조업 전반에 널리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염색과 도금은 소재가 섬유냐 금속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용액에 소재를 넣는 공정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부족한 정부예산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지난해 뿌리산업 범위가 6대에서 14대로 확대되면서 정책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1년 뿌리산업경쟁력 강화지원사업은 429개사에 138억원을 지원, 기업당 수혜금액은 3000만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말대로 산업경쟁력의 근간이 뿌리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예산도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때마침 국회에서도 섬유산업의 뿌리산업 포함을 골자로 하는 뿌리산업법 개정안이 지난 1월 발의됐다. 생산액 37조원, 제조업 기업수의 10%를 차지하는 섬유산업이 다시 수출한국호의 선봉에 설 수 있도록 섬유산업의 뿌리산업 지정과 후속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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