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품 제조업종 중 가장 많은 건 된장 제조업일 것이다. 장은 민족음식이다. 아니 민족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이 땅에서 먹어온 음식이고 양념이다. 배추김치도 오래 먹었지만, 지금처럼 고춧가루 양념 치고 통배추를 써서 양념을 버무려 넣는 방식이 시작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된장은 비교적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김치는 배추김치 말고도 온갖 김치가 있었다. 이젠 깍두기도 집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인 건 우리에겐 된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다. 장은 기본적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 세 가지인데 카테고리는 세세하게 나눠진다. 간장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온 제조 간장인 진간장, 양조간장, 국간장에 집간장도 있다. 된장은 막장에 집장, 즙장이 있고, 재료에 따라 또 보리된장이니 무슨 된장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 또한 지역별로도 다르다.

이런 개성 강한 장이 이제는 거의 하향 평준화됐다. 공산품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바뀌었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국가가 주도한 것이 특이하다. 장 담그지 말고 개량장 사먹고 간편하게 살자는 국민운동도 있었다. 김장 담그지 말기, 항아리 장독 없애기 등 운동이 관제로 벌어진 게 1960~70년대의 일이다.

된장은 아예 일본식이 한국을 점령했다. 장 제조회사에 자금을 빌려주거나 비자를 내줘 일본에서 된장을 배워온 것이 우리 시판 된장이 확장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세 가지 기본 장을 국민이 더 싸게 많이 먹을 수 있게 됐으므로 일본식 된장의 공도 있다. 재래식 장이었다면, 제조비용이 훨씬 더 비쌌을 것이다.

현대식 장의 핵심은 가정이나 작은 제조소의 공정에 맡기지 않고 표준화된 제조방식으로 빨리, 싸게, 대량 생산한다는 점이다. 가능한 한 싼 재료로 만든다. 지금 마트에 가서 장 재료를 보라. 밀가루와 물엿, 색소가 난무한다.

사실, 한국의 경제 발전기에 저렴한 식재료는 이런 공장식 장이 기본이었다. 이런 장이 없었더라면 물가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좋다, 다 좋은데, 가정 장은 사라져갔다. 두 장이 양립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전통 장을 재현하거나 약식으로 구현한 조금 더 개별적인 맛의장들이 시판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과당 경쟁이어서,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면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생산자(공장)가 많다.

진짜 맛있는 된장은 어느 것일까? 맛있다면 그것이 전통적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적당히 개량 요소를 넣어 맛을 강조했기 때문일까? 와인은 소믈리에가 골라준다는데, 된장, 고추장, 간장을 골라주는 전문가는 없다. 있다 하더라도 우리 눈에, 귀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저 특정 지역 장(예를 들어 고추장은 순창 붙은 걸 찾듯이)을 고르거나, 입소문을 찾아 헤매거나, 그것도 아니면 일단 시켜먹고 스스로 판단한다.

정말 맛있는 장을 찾기 힘들다. 참고로, 정말 믿을 만한 전문가의 조언도 없고, 시장의 입소문도 아주 약하다. 워낙 장의 생산자가 많아서 거기서 거기 같다. 좀 뜨는 장도 파괴력이 적고 전파력이 약해서 우리 귀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리뷰 같은 걸 보고 사려해도 세상에 우리처럼 입소문 마케팅 많고 가짜 리뷰 많은 나라에서 뭘 믿을 수 있겠는가? 가짜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장맛을 몰라서 엉뚱하게 표현하거나,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우리의 오랜 관습이 적용돼 별점 4.9(5점 만점)도 믿음이 안 간다는 사람이 많다.

좋은 장, 맛있는 우리 장은 분명히 꽤 있다. 여러 경로로 먹어보면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구하기 어렵고, 비싸다. 빤한 살림에 구매가 쉽지 않다. 이미 장 안 담그는 세상이 됐다, 김장은 어찌어찌 해서 아직은 대가 끊어지지 않고 굴러간다. 하지만 장은 사 먹는 게 대세가 됐다.

그렇다면 이제 제조자들에게 공을 넘겨보자. 적당한 가격에 소비자가 접근하기 쉽고 맛도 좋은 장을 더 보급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미 있다면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 적절한 경로는 있는가? 구수한 옛 된장, 쌉쌀하면서도 발효 향취가 톡 쏘던 옛 고추장, 국에 조금만 넣어도 감칠맛을 훅 살려주던 집 간장 좀 먹어봅시다. 민족음식이 어떻고 하는데, 실은 김장이랑 세 가지 장이 핵심 아니겠습니까? 힘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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