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방향보고서를 발표했다. 결론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제도 자체를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란에 이어 현 정부의 규제개혁과 시장 친화적 정책 기조에 편승해 그간 중소·소상공인의 최후의 보루역할을 해 온 중소기업 적합업종 폐지를 국책연구기관이 앞장서 공론화한 셈이다.

KDI 보고서를 살펴보면 과연 연구자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적합업종제도는 2011년 무분별한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탈과 문어발식 사업확장으로부터 중소·소상공인들의 삶의 터전을 지탱하기 위해 도입됐다.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가 아닌 대·중소기업 상생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제도 도입 전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력에 수십 년간 일궈온 전통제조업과 생계형 업종들이 속수무책으로 잠식당해왔지만, 제도 도입 이후 두부, 어묵, 빵 등 일부 생계형 업종들이 그나마 한시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적합업종은 명칭 내에 이미 그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적합업종 지정기준과 제한된 권고기간이 바로 그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존폐를 논하기 위해서는 품목지정 기준 등 제도의 본질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KDI적합업종제도는 모든 업종이 언제든 적합업종 대상으로 지정돼 시장 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적합업종은 모든 업종이 아닌 소득·규모의 영세성, 경쟁의 취약성, 산업경쟁력 영향 등의 세부기준을 충족하는 일부 업종·품목에 한해 제한적으로 지정·운영돼 왔다. 또한, 자율규제 성격의 적합업종 특성상 대·중소기업 간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지정되고 이에 따라 사업축소, 사업이양, 진입자제 등이 권고기간 내에 이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더라도 그 지정기간은 영구가 아닌 3(최대 6)으로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권고기간 중에도 대기업의 권고사항 미준수, 편법 진출, 상생노력 미흡 등으로 인해 실효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이행실태 점검결과에서도 대기업의 고의적 합의지연, 권고 미이행에 대한 제재 수단 부재 등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간 제도 운영에 있어 적합업종의 경쟁력 제고방안 또한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자구 노력에만 의존하고 있어 정부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경쟁력 확보 지원 정책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재확산과 경기침체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존폐를 논하는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지금은 제도의 이행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보완해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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