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철근 콘크리트는 현대 문명을 낳게 한 최고의 발명이다. 현대의 거대 구조물은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 구조이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골재를 일정 비율로 맞춰서 만든다. 콘크리트는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의 정도)가 부족한 단점이 있으나 인장에 잘 견디는 철근을 넣어 이를 보완한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함께 쓸 수 있는 것은 열팽창계수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온도 변화에 따른 팽창과 수축도 함께 일어나므로 강고한 구조가 유지된다. 철근 콘크리트로 거대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이유다. 자연이 인류에게 준 축복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성되는 산업 생태계의 유지에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시멘트, 자갈, 모래, 철근 어느 하나만으로도 안 되고, 어느 하나가 없어도 안 된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함께 팽창하지 않아도 그 강도를 가질 수 없다. 산업 생태계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유기적인 관계가 무너지면 유지될 수 없다. 대기업만 성장하고 중소기업은 쪼그라드는 산업 생태계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분리된 건물처럼 곧 무너질 수밖에 없다.

철근 콘크리트의 적정 구성 비율은 자연의 법칙으로 정해져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적정한 관계는 인간의 법으로 비로소 유지된다. 헌법이 국가의 중소기업 보호·육성 의무를 천명하고, 중소기업기본법, 상생협력법 등 개별 법령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인간의 법은 사회 변화에 맞춰 함께 변해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새로운 법이 끊임없이 필요한 것이다.

대형 플랫폼 갑질 위험수위

공정화법 1년째 국회서 낮잠

적기 입법해야 산업계 보존

우리 사회의 변화에 맞춰 지금 필요한 법은 바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른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이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앱으로 대표되는 온라인플랫폼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됐다. 그와 함께 독점적 플랫폼업체들에 의한 불공정행위도 만연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해 쿠팡의 공정거래법 및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납품업자에게 부당경영간섭과 광고 떠넘기기, 판촉비 전가, 판매장려금 편법수취 등의 행위를 했다는 혐의다.

민간 배달앱의 횡포에 맞서 공공배달앱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다. 2021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대형플랫폼업체로부터 불공정 피해를 입었다는 중소기업 비중이 무려 47.1%였다. 대형플랫폼업체의 폐해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사회 변화에 맞춰 정부가 지난 해 추진한 것이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이다. 온라인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와 보복조치 등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대한 벌칙 등이 법의 주요 골자다. 대형플랫폼 업체들의 독점력 강화와 횡포에 비춰 보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법이 추진되자 대형 온라인플랫폼 업체들의 반발이 거셌다. 거센 반대에 부딪힌 법안은 결국 1년째 잠자고 있다. 현 정부는 아예 대형플랫폼 업체들의 자율에 맡기자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달 27일 ‘디지털 플랫폼 자율기구 법제도TF’ 발족회의를 개최했다. 여러 정부부처가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백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을 막는 반대논리의 핵심은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인터넷 익스플로러 서비스의 중단을 최근 밝힌 것은 새로운 혁신을 위해서 오히려 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느린 속도 등 많은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익스플로러는 윈도우의 독점을 바탕으로 브라우저 독점을 한동안 유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끼워 팔기를 하면서까지 독점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경쟁법을 무기로 한 당국의 제재에 의해서 독점은 중단됐다. 비로소 그 틈을 비집고 구글 크롬 등 새로운 혁신이 가능했다.

새로운 혁신 기업의 등장을 위해서는 그 싹을 틔우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팬데믹을 거치며 더 강고해진 대형 온라인플랫폼 업체들의 횡포를 막을 수단이 시급하다.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그에 대응하는 법을 제 때 만들지 않으면 철근과 콘크리트가 분리된 건물처럼 관련 산업 생태계도 곧 무너진다. 지금이 허울 좋은 자율규제를 시도하느라 허송세월 할 때인지 의문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