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요람 실리콘밸리를 가다- 1]
특정한 정치사안에 답하면 AI로 분류
호랑이·하마 등 5가지 동물성향 표시

편향되지 않은 알고리즘 개발·구현
지난해 20억원 투자유치·펀딩 진행

논쟁 있지만 혐오없는 커뮤니티 호평
뉴스·토론 등 가능한 ‘정치의 아마존’꿈

최근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성공의 꿈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믿고 사업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인 경영자들의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혁신 기업들의 격전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들 한인 스타트업들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실리콘밸리에선 사이드 프로젝트가 흔하다. 본업만큼이나 부업에도 신경을 쓴다. 모두들 언젠가는 자기만의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는 꿈을 꾸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가 전부가 아니어야 하고 아닐 수밖에 없다. 부업이 언젠간 본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는 거대한 창업 역사 박물관이나 다름 없다. 모퉁이만 돌아도 전설적인 창업가들이 첫 사무실을 냈던 곳이거나 첫 제품을 공개했던 장소다. 지금 실리콘밸리 일대 지역에 산재한 거대한 빅테크 기업들의 기라성 같은 본사 건물들은 불과 20년전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전벽해를 목격한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살면서 한번쯤 창업 대박을 꿈꾸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창업을 정말로 실행하는 건 아니다. 소위 무늬만 창업 꿈나무도 적지 않다. 소위 쿨해보이려고 창업을 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건 어렵지 않다. 부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면 된다. 그러다 정말 창업할 기회가 왔을 때 부업을 본업으로 전환한다면 진짜다.

 

좌우가 공존하는 정치플랫폼

정치플랫폼 옥소폴리틱스 유호현 대표는 진짜였다. 유호현 대표는 부업이었던 옥소폴리틱스를 본업으로 삼아서 20205월 창업했다. 창업 동기는 정리해고였다. 유호현 대표가 일했던 에어비앤비는 2020년 초 굉장한 위기를 맞았다. 에어비앤비는 20203월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업이 붕괴되면서 에어비앤비 매출도 급감했다. 에어비앤비의 예약건수는 20203월 한달 동안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에어비앤비는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장을 위해서 한창 몸집 불리기를 하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대규모 감원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실리콘밸리의 감원방식은 무작위적이다. 엣윌 근로 계약 조건 때문이다. 엣윌이란 고용자든 피고용자든 서로 그럴 의지만 생긴다면 언제든 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르는 건 아니다. 소송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선 보통 팀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사업 목적이 사라졌다면서 사업 부서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유호현 대표도 그렇게 에어비앤비를 떠나게 된 한 사람이었다.

유호현 대표한테 남은 길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구직이거나 창업이었다. 이때 진짜 창업 꿈나무와 가짜 창업 연기자가 가늠된다. 이때부터 유호현 대표는 에어비앤비에서 사이드프로젝트로 만들었던 정치플랫폼 옥소폴리틱스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유호현 대표는 에어비앤비가 준 4개월치 월급을 종잣돈으로 옥소폴리틱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옥소폴리틱스는 OX로 하는 정치를 뜻한다. 옥소폴리틱스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서 특정 정치 사안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 그때부터 옥소폴리틱스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용자를 5가지 정치적 부족으로 구분해준다.

유호현 대표는 정치적 부족을 5가지 동물로 표기했다. 호랑이와 하마와 코끼리와 공룡과 사자다. 각각 강경진보와 중도진보와 코끼리와 중도보수와 강경보수를 뜻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속한 동물 부족의 게시판에 정치 현안에 관한 글을 포스팅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자신이 속한 동물 부족의 게시판에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부족의 게시판은 글을 읽을 순 있어도 쓸 수는 없다.

옥소폴리틱스의 목표는 특정 정치 집단이 여론을 과대 대표하는 걸 막고, 서로 다른 정치 집단의 정치적 소통이 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기술을 이용해서 분열된 정치적 소통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민주주의의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다. 유권자들과 정치인들은 서로 편을 갈라 싸우기 일쑤다. 건전한 토론과 소통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의견에 동조하는 순간 배신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격한 의견을 내세울수록 우리편에서 지지를 얻기 쉽다. 결국 중도통합론자들은 도태되고 강경과격론자들이 전체를 과대대표하게 된다. 원래는 언론이 이렇게 여론 시장이 왜곡되는 걸 막았어야만 했다. 정작 언론조차 양극화되면서 민주주의 시스템 전체가 위험해지고 말았다.

옥소폴리틱스는 기술을 이용해서 정치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다. 2022년 현재 옥소폴리틱스는 월간사용자는 18만명에 일간사용자는 8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2022년 한국 대선을 거치면서 1년만에 200%나 성장했다.

 

이상적 디지털 민주주의 공간 구현

옥소폴리틱스에선 5개의 부족으로 여론이 구분도 있는 탓에 서로 내부 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각각의 부족들은 소속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다른 부족을 공격할 수는 없다. 대신 특정 주제에 대하 옥소폴리틱스 안에서 투표를 붙여볼 수 있다.

일종의 여론 조사다. 오직 이걸 통해서만 부족간 경쟁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서로의 의견을 들을 수 있지만 상대방을 비방할 수는 없고 결정은 민주적 투표를 통해 이뤄지는 가장 이상적인 민주적 공간을 디지털로 구현한 것이다.

옥소폴리틱스는 기술로 현실적 거버넌스의 문제를 풀어낸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적어도 메타버스에선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옥소폴리틱스의 커뮤니티에선 편향되지 않는 정치적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옥소폴리틱스 프로에선 투표라는 이름의 실시간 여론조사로 균형 있는 거버넌스 결과값을 얻어낼 수 있다.

유호현 대표는 옥소폴리틱스를 정치의 아마존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정치 뉴스도 있고 정치 의견도 있고 정치 토론도 있고 정치 후원도 있는 정치의 모든 것이 정치의 아마존이다. 옥소폴리틱스는 자체적으로 옥소코인이라는 가상화폐를 개발했다. 사용자는 옥소폴리틱스 안에서 옥소코인으로 여론조사를 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후원하는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 5개 부족 안에서 스스로 합의를 도출해내고 다른 부족과 투쟁을 벌이는 모든 정치 활동은 옥소코인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커뮤니티가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옥소폴리틱스는 202111월에 오픈워터인베스트먼트와 엠와익소셜컴퍼니로부터 20억원 정도의 프리A투자를 받았다. 현재 시리즈A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이걸 바탕으로 다양한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술 베이스 엔지니어들과 여론조사 전문 컨설턴트와 블록체인 전문가와 정치부 기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하고 있다.

사실 유호현 대표가 옥소폴리틱스를 만들어낸 의사 결정 구조는 따져보면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선 모든 의사 결정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정치란 결국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다. 과거엔 권위에 의존해서 결정했다. 다수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수라고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다수의 결정은 다수결이라도 잘못된 결정일 수밖에 없다.

결국 다수가 어떻게 데이터에 기반해서 올바른 의견조율을 할 것이냐가 문제다. 실리콘밸리에선 그걸 위해서 다양한 협업툴을 개발해왔다. 기술로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인 것이다. 옥소폴리틱스의 의사결정 방식과 기술은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적용해온 방식이다. 그걸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용해보겠다고 확대한 것이 유호현 대표였다.

 

IT로 사회 거버넌스 문제 해결

유호현 대표의 아버지는 정치 분야 관계자다. 자연스럽게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선 영문학과 문헌정보학을 복수전공했다. 미국 유학에선 인포메이션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엔지니어가 됐다. 2012년 트위터에 입사했다. 트위터에선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 개발자로 일했다. 2016년 에어비앤비로 이직했다. 에어비앤비의 결제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로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창업에 대한 꿈을 꾸게 됐다. 첫 창업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문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창업은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다. 사실 실리콘밸리에선 기술은 기본이다. 대부분 이공계 출신의 엔지니어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건 어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다. 그 문제가 얼마나 큰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느냐다. 유호현 대표는 사회의 거보넌스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 옥소폴리틱스를 사이드 프로젝트로 추진했고 결국 본업이 됐다.

옥소폴리틱스는 페이스북 같은 SNS가 만들어낸 필터 버블로부터 사용자들을 구출해낼 수 있는 방책이다. 필터 버블은 대형 인터넷 IT업체가 개인 성향에 맞춘 정보만을 제공해 비슷한 성향 이용자를 한 버블 안에 가두는 현상을 지칭한다. SNS는 결국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의견만 듣게 만든다. 편향성을 일반화하게 된다.

반면에 옥소폴리틱스의 알고리즘은 다른 5개 부족들의 의견을 고루 듣게 만들어준다. 필터 버블은 페이스북에는 돈이 되지만 사회와 시장을 망친다. 결국 페이스북은 내부고발자에 의해 파헤쳐졌다. 페이스북이 돈벌이를 위해 사용자가 더 편향된 정보만을 제공받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옥소폴리틱스는 논쟁은 있지만 혐오는 없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호랑이와 하마와 코끼리와 공룡과 사자라는 다섯 개 부족은 옥소폴리틱스의 밀림에서만큼은 평화롭다. 정치의 아마존 덕분이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세상을 바꾼다.

- 신기주(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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