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윤(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오동윤(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협동조합의 원류를 찾아가 보겠다. 상고시대부터 우리 땅에 계()가 있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계는 농촌의 사회와 문화를 담은 상부상조, 친목, 공동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고 계를 오늘날 협동조합의 시작으로 보기 어렵다. 협동조합은 공통의 경제 목적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찾아보면, 11세기 후반 길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길드는 상인 중심이라 산업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기득권에 집착한 나머지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와 어울리지 못했다. 반면, 우리의 협동조합은 산업화를 이끌었고,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했다. 근대엔 19세기 중반 영국의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 있다. 노동자를 위한 소비자조합이다. 생산 현장에서 땀 흘리는 우리의 협동조합과 차원이 다르다.

조선시대 대동법에 주목해야 한다. 대동법은 공물(貢物)을 곡물로 대신하는 제도다. 1608년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하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공물을 조달하는 상인이 생겼는데 이들을 공인이라 불렀다. 당시 공인들은 많은 특혜를 누렸다. 예를 들어, 공인에게 지급했던 가격은 시장보다 3배나 비쌌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한 것이다. 대신 나라의 살림살이를 거들었다. 국상, 과거시험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공인들이 충당했다.

일제 강점기에 금융조합과 산업조합이 설립됐다. 조선시대에 자본 축적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은 공인이나 공계다. 정확한 문헌은 없지만, 공인이나 공계가 조합의 주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마침내 196112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되면서 협동조합은 법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 1965년 단체수의계약이 생기면서 협동조합은 전성기를 맞았다.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그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한국의 협동조합은 우리만의 것이라는 의미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산업화를 일궜고, 자본주의와 함께하면서 성장했다. 단체수의계약을 통해 기술을 개발했고, 일자리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공인이 나라 살림을 도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고, 젊은이들은 협동조합의 기반인 중소기업을 멀리하고 있다. 게다가 보호와 육성에 익숙한 나머지 경쟁은 두렵고 힘겨운 대상이다.

함께하는 힘, 협업을 통해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보통 하나의 제품이 탄생해서 팔리기까지 R&D, 디자인, 조달, 제조, 유통, 마케팅, 서비스의 단계를 거친다. 협업은 R&D 기업과 디자인 기업이 만나고, 이어 조달 기업, 제조 기업 등이 연속해서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이 다음 단계의 역량 있는 기업을 스스로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과거 우리가 이 모든 단계를 하나의 기업이 다 했던 이유다. 여기에 바로 협동조합의 역할이 있다. 현재 협동조합은 업종과 지역에 기초한다. 이제 단계별로 특정 역할에 전문성을 가진 협동조합 - R&D 협동조합, 디자인 협동조합 등이 탄생해야 한다. 그다음 협동조합은 제품의 특성에 맞게 기업을 매칭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계제품이 있다고 하면, 각각의 협동조합은 기계에 전문성을 가진 기업을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마케팅 기업도 저마다 전문성을 가지고 있에 화장품을 잘 파는 기업이 있지만 기계를 잘 파는 기업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 길드, 공계, 협동조합이 함께하는 힘은 대단했다. 한국의 협동조합도 그렇게 60년을 버텨 왔다. 길게 보면, 대동법 이후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이 있었기에 한국경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힘, 협동조합이 우리의 미래 100년을 밝혀줄 것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