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모호한 규정과 지나치게 광범위한 의무사항들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인 50인 이상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법상 의무사항을 준수하지 못하는 곳이 아직도 35.1%에 달했다. 의무사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곳도 전체의 절반(49.4%)에 달했다. 법을 준수하고 있지 못한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 (55.4%), ‘준비기간 부족’ (53.1%), ‘예산 부족’(40.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사업을 한다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우려도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81.3%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답한 이유다. 사정이 어려운 업체 중에는 이참에 기업을 정리하려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중소기업 대표들이 산재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입법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입법보완 방향은 사업주 의무내용의 명확화’(47.2%), ‘면책규정 마련’(41.7%), ‘사업주 처벌완화’(40.3%) 등으로 나타났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도 국정과제에서 법령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힌 만큼,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에 필요한 예산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안전보건 관계법령이란 어느 법령인지 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대표자가 의무이행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부득이하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반드시 면책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산재사고예방 노력을 더 기울이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다.처벌 수준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완화할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대표자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보다는 벌금 중심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 우리나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모태인 영국에서도 2년 이하 금고 또는 상한 없는 벌금 등에 처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는 영국보다 처벌 수위가 더 약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6개월 미만 징역 또는 1만달러 이하에 벌금에, 일본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정도다.

정부지원도 과감히 늘릴 필요가 있다. 현재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인 50인 이상 중소기업이 신청할 수 있는 정부 지원사업은 산재예방시설 융자지원컨설팅 사업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컨설팅 사업은 지원규모가 3500개사로 50인 이상 중소기업의 수(27000)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중대재해법 시행 100일이 지났지만, 중대재해 사고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단순히 대표를 엄벌한다고 해서 산재사고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들고 싶은 것은 대표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처벌에 앞서 재해 발생의 구조적 원인을 찾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사정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국회와 정부의 법과 지원제도에 대한 개선 노력이다. 중소기업들의 절박한 호소가 더 이상 외면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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