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건물과 어우러진 어두운 하늘. 강남 한 복판 코엑스 상공 위로 반딧불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그러다 일순 반딧불들이 어지러이 모이더니 어느새 한 마리 포효하는 호랑이가 된다. 호랑이는 힘차게 뛰어가다가 산산이 부서지며 수많은 점이 돼 내려앉는다.

매년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영동대로 카운트다운 드론쇼는 볼수록 감동적이다. 올해는 임인년을 상징하는 몸길이 180미터의 검은 호랑이를 600여대의 드론이 연출했다. 장관이다. 유튜브에서 몇 번이나 돌려봤다. 어느새 내 핸드폰 속 유튜브에는 다양한 드론 라이트 쇼로 가득하다.

노자께서 말하길 하늘의 그물은 성겨도 놓치는 것이 없다더니,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마치 하늘의 그물인가 싶다. 주위의 모든 기기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저장하고 분석해 ‘나’라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정의한다. 뇌피셜 속의 나는 항상 업무에 충실하고 도덕적이며 정의로운 시민이다.

그러나 정작 시도 때도 없이 유튜브나 구글이 알려주는 드론쇼를 보거나 주식상황을 살피며 일희일비한다. 잔인한 데이터. ‘소소한 일탈은 생산성을 높여서 업무의 질을 향상시킨다.’ 부인할 수 없는 인지 부조화를 적당히 합리화하면서 오늘도 꿋꿋이 유튜브 알고리즘 비서가 추천해 준 드론 라이트 쇼를 본다. 중국 하늘에서는 커다란 용이 나르고, 두바이에서는 군주 무하마드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증폭된다. 강남의 밤하늘에서 범이 내려오게 하는 마술은 누가 어떤 기술로 만든 것일까? 내가 보는 하늘에서는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바람도 분다. 어떤 밤에는 달빛이 비추기도 할 것이고. 그런데 불빛을 싣고 하늘을 나는 수많은 드론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일까?

가끔 바람이 세게 불어,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게 되면 앞 다리가 산산이 부서진 호랑이가 될 텐데? 거의 중독 수준으로 반복해서 영상을 감상하는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쇼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다. 하늘에서 범이 내려오게 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호기심. 4차 산업혁명의 위대함. 인간이 만든 환상 같은 세계에 대한 감동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본다. 사실 검색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10여년 전 여수 엑스포에서 관람했던 감동적인 이벤트들이 외국 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했던 기억 때문이다. 검색결과 한 기업을 찾았다. AI기반의 드론 라이트쇼 스타트업이라고 소개가 돼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자율주행 드론 소프트웨어와 군집비행 드론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회사’다. 드론을 이용한 군집비행 라이트쇼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란다. 기술에 감동하고, 그 기술의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 한국의 스타트업이라는 사실에 한번 더 가슴이 벅차다.

세계에서 유례를 볼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선진국이 된 나라. 한강의 기적.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로 시작해 자동차와 조선 그리고 반도체와 스마트폰까지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가난을 벗고자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오로지 성실함과 희생으로 변변한 자원하나 없이도 수출대국을 이뤘다. 편안함보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조직이나 전체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목소리를 낮추고 집단의 가치를 따르는데 익숙하다.

베이비붐 세대를 부모로 둔 지금의 신세대들은 기술력 1위의 드론쇼를 만들었고 세계에 수출하면서 스타트업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장식하는 국내 아이돌 그룹에 세계가 열광한다. 부모들은 성공의 공식으로 공부를 강요했지만 일찌감치 노래와 춤을 선택한 아이들. 쓸데없어 보이는 컴퓨터와 코딩, 게임에 몰두했던 MZ세대.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수고와 희생보다는 즐기면서 집중하는 오타쿠의 저력이 필요한 시대다.

신세대는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결집하면서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변화는 급속하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2022년 새해 대한민국의 하늘에서는 범이 내려오고, 한강의 기적을 만든 한국인의 DNA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장경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