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최태원 SK회장의 ‘위기속 생존법’
코로나 속 리딩기업도 실적 하락…미래 모빌리티로 재도약 승부수
새 주축사업으로 바이오팜 주목, 청정에너지사업 E&S도 급부상

지난 22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메일을 보냈다. “코로나19 환경을 위기라고 단정 짓거나 굴복하지 말고 우리의 이정표였던 딥체인지에 적합한 상대로 생각하고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코로나 환경에서 대면 단체 회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요즘 이메일이나 회사 인트라넷은 CEO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된 소통 창구다. 최 회장의 경영화두인 딥체인지’(Deep Change)는 말 그대로 근본적인 변화를 하자는 말이다.

오래전부터 최태원 회장은 조직원들과 만날 때마다 말버릇처럼 SK그룹의 딥체인지를 강조해 왔다. 2016년부터다. “변화해야 한다” “이제 바꾸자CEO의 변화·혁신의 메시지는 어느 시기에나 매번 있어왔다. 경제 호황기에도 실상은 위기가 아닌데, “위기가 왔다고 외치면서 조직원을 다독인다. 위기만큼 조직을 하나로 만들고 목표를 향해 가기 좋은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에서 비롯한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환경은 IMF 외환위기나 미국발 금융위기와 비슷한 초대형급 진짜 위기다. 역으로 말하면 기업이 딱 변화하고 혁신하기가 좋은 최적의 조건이다. CEO의 위기경영 메시지가 잘 먹히는 때가 아닐 수 없다.

최 회장은 이메일에서 재차 강조했다. “변화된 환경은 우리에게 생각의 힘을 요구합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 이상의 공감과 감수성을 더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입니다.”

그는 메시지에서 현재의 변화는 단순한 경영전략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강구책이라고 표현했다.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연계된 실적,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입니다.”

 

석유·화학업계 기상도 흐림

코로나 시대에 있어 기업 경영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 하는 생존CEO들의 최대 고민거리다. 그런데 최태원 회장의 말처럼 생존법에 가까운 딥체인지를 하기에는 SK그룹 안에 너무 많은 사업이 펼쳐져 있다. 화학, 에너지, 정보통신, IT, 반도체 등 바꿔야 할 분야가 많다. 어떤 사업은 시장에서 1등을 하고 있고, 어떤 사업은 시장환경의 부침으로 경영실적이 매우 어렵다. 자세히 살펴보면 SK그룹의 대부분 사업들이 실적하락을 맞고 있다. 단순 코로나 탓일까.

일단 기업은 지속성장이 가능해야 하고, 매년 흑자경영을 해야 하는 태생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10년 흑자경영을 했다고 해도, 1년만 부실 적자가 커지면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기도 한다.

이걸 인간 개인의 신체로 비유하자면, 평소에 기본적으로 건강한 영양을 섭취하고 지식을 추적하면서 잘 커야하는 것과 비슷하다. 1년만 게으르게 관리하다보면 몸이 망가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SK그룹 내 모든 계열사가 현재 딥체인지를 해야 할 대상이고 당장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 대전환의 시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 걸까.

SK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이다. ‘SK 3대장이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리딩 기업들이다. 아주 탄탄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가까이 보면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난 상반기 실적을 살펴보니, 이들 3대장을 계열사로 포함하고 있는 지주회사인 SK의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그 말은 SK그룹이 적자경영의 늪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뜻이다.

SK는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영업손실만 7309억원을 냈다. 코로나19 탓이 큰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원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사업을 하는 곳이다. 코로나로 여행과 운송이 줄다보니, 큰 폭의 영업 손실을 내게 됐다. 그런데 실적 하락이 코로나 이전부터 조금씩 시작됐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정유시장 1위다. 도시가스 시장에서도 1위다. 민자 발전사업에서는 2위다. 그런데 전국구로 1, 2등하는 회사가 수익이 몇 년 전부터 줄어들고 있다는 건 심각한 이상 징후가 아닐 수 없다. SK이노베이션 매출의 90%는 석유와 화학산업에서 나오는데, 이미 해당 산업의 기상도가 좋지 않다. 시장이 둔화 될대로 둔화됐다. 개별 기업경영 스킬 문제가 아니라 시장 환경이 약세장에 빠졌다는 뜻이다. 탈출구가 필요해 보인다.

SK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50%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도 비슷한 난맥에 빠졌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만 집중된 구조(매출비중 97%) 때문에 해당 시장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바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반도체시장은 PC와 관련된 제품 수요가 줄고 이미지센서, 반도체설계 등 비메모리반도체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다. PC와 관련된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이 SK하이닉스가 주력하던 시장이었다. 이 시장도 변화가 극심하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 매출 비중으로 약 3%에 해당되는 시장이다. 3%를 빨리 50% 이상 키워내야 한다.

 

SK이노베이션·텔레콤 기술력 합작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는 SK그룹의 기둥이다. 두 곳만 놓고 봐도 전체 그룹의 영업이익의 65% 가까이가 집중돼 있다. 두 회사가 흔들리면 SK그룹이 흔들리는 격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대신해서 경기에 뛸 구원투수도 없다. 스스로 딥체인지를 해야 할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도 SK그룹엔 SK텔레콤이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뛰는 그라운드도 격동의 바람이 심하다. 이제 전자통신 시장은 5G통신시대로 진입했다. 기존 국내 무선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였던 SK텔레콤도 5G시장에서는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게 됐다. 싸움의 공간이 바뀌면서 새로운 경쟁 환경이 도래했다.

SK그룹에겐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그리하여 최태원 회장은 딥체인지 메시지를 앞세워 새로운 사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SK텔레콤은 자율주행을 비롯해 5G통신, 인공지능 등에 기술력을 모으고 있다. 이게 하나의 시장으로 귀결되는데 바로 미래 모빌리티시장이다.

연초 1월에 열렸던 세계 최대의 IT·가전 전시회 ‘CES 2020’에서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총 출동했다. 공동 전시 부스를 운영했다. 석유화학 사업에만 매몰된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배터리용 소재, 차량 경량화소재, 친환경차 특화 윤활유 등 하드웨어부분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모빌리티 플랫폼 구축을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사업의 소프트웨어를 만들겠다는 비전이다.

SK그룹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사업을 바꾸는 선수 중에 한 곳이다. 1953년에 SK는 선경직물로 시작했다. 그러다 1980년 화학에너지 사업에 손을 댔다. 이어서 통신시장이 문을 열자 1994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첨단 기기가 범람하는 IT세상이 열리자 반도체 등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았다.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는 간판사업으로 키워냈던 것이다.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최태원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SK그룹 창업주는 이런 지론이 있었다. “10년 뒤에는 무엇을 할지 늘 생각하라.” 10년 로드맵은 경제 호황기든, 불황기든 상관이 없었다. 최태원의 딥체인지는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SK 3대장에 이어 새로운 미래 주축 사업으로 떠오른 곳이 있다. ‘SK바이오팜이다. SK바이오팜은 최종현 선대회장부터 시작한 제약바이오사업이다. 30년을 투자했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1990SK그룹이 화학에너지 사업의 이어 성장동력으로 택한 것이 제약바이오 사업이었다. 1993년부터 ‘P 프로젝트라는 바이오산업을 시작했다.

SK바이오팜은 2020년 국내 주식시장의 대어다. 지난 6월 실시된 개인투자자 청약 당시 309899억원의 청약근거금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적이 있다. 주력 제품은 뇌전증(간질)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생산한다.

SK는 올해 들어 SK바이오팜 상장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미래 성장 동력사업에 재투자함으로써 투자 선순환 구조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SK는 글로벌 투자 전문성을 기반으로 바이오제약, 소재,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미래 먹거리 분야로 꼽히는 바이오제약, 반도체, 배터리부터 소재, 인공지능(AI), 빅데이터에 이르기까지 미래 먹거리 분야에 고루 투자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을 필두로 SK E&S 등 비상장 자회사의 가치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SK E&S는 청정에너지사업을 하는 곳이다. 이밖에 CMO(원료의약품 위탁생산) 통합법인 SK팜테코는 SK100% 자회사로 SK바이오팜을 이을 차기 상장 후보까지 거론되고 있다. 앞으로 SK 3대장의 지위를 뒤바꿀 전도유망한 계열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의 딥체인지 경영화두는 SK그룹이 공룡처럼 소멸하지 않고 근본적 혁신을 통해 100년 기업으로 가자는 의지로 바라볼 수 있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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