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작가 등용문 활짝 연 만화 애호가
세계 무대로 ‘한국판 마블’도전장

젊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한국의 수많은 기업 중에 희망하는 일자리를 꼽으라고 하면 인기가 높은 일자리 중에는 어김없이 네이버가 손꼽힌다. 네이버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대 IT기업으로 검색 포털 사업을 시작으로 이제는 각종 IT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미국의 구글처럼 네이버 안에서는 여러 실험과 도전이 창의적이고 개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일자리라고 하겠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CEO도 2004년에 네이버에 입사할 때도 이렇듯이 네이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열린 비즈니스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서울대 공대 출신인 김준구 대표는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의 대사를 모두 다 외울 정도로 유명한 만화 ‘덕후’였는데, 네이버에 개발자로 입사했다가 회사에서 만화 서비스를 시작한다기에 선뜻 지원한 뒤로 줄곧 네이버웹툰의 기획, 편집, 경영을 도맡는 다재다능한 CEO로 성장한 것이다.
김 대표가 네이버에 입사했을 2004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네이버에는 웹툰 서비스도 없었고, 관련 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웹툰 서비스를 지원한 뒤에도 네이버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이나 인력 투입도 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그는 만화를 놓치 않고 밤낮 만화 서비스를 스스로 기획하면서 드디어 2005년 네이버웹툰 서비스를 첫 출시하게 된다. 이후에도 학원가에서 마치 스타강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듯이 그 또한 전국을 돌아다니며 스타 웹툰 작가를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네이버웹툰의 간판스타인 조석, 김규삼, 정다정, 기안84 등이 김준구 대표의 손을 거쳐 등용된 만화가들이다.
네이버웹툰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웹툰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네이버는 2005년 3개의 작품 연재를 시작으로 2012년 200개의 작품 연재를 돌파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고, 2014년부터는 국내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웹툰 서비스를 출시하게 된다. 현재는 국내외 이용자가 월 3500만명이 넘는 글로벌 웹툰 서비스로 발전했다.
매일마다 접속해서 네이버웹툰을 즐기는 이용자가 800만명이라고 하니, 다른 어느 대중문화 장르보다 전파력과 영향력이 강력함을 알 수가 있다. 웹툰의 대중화를 이룩한 김준구 대표의 노력 때문인지 올해 초에는 네이버에서 네이버웹툰이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면서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조직체계까지 갖추게 됐다. 최근 수년간 전 세계를 어벤져스 히어로 열풍으로 몰아넣고 있는 미국의 마블 코믹스만큼의 광활한 세계관이나 글로벌 영향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한국에서 만화장르로 이만큼 성장하고 주목받는 일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가 아닐까 싶다. 취미도 만화, 직업도 만화인 김준구 대표가 대졸신입으로 입사해 10년만에 CEO로 변신해 네이버웹툰 전성기를 구가하는 비결은 뭘까?

만화에 미친 CEO
김준구 대표의 집에는 만화책만 8000권이 넘게 있는 진정한 만화 매니아로 매달 25만원씩 새로운 만화책을 구매하는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김준구 대표의 성공마인드는 뚜렷하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오랜 철학이다. 그렇게 만화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10년 만에 초고속 승진으로 네이버웹툰의 CEO가 되지 않았나 싶다. 10년만에 CEO가 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체에서 10년을 근무하면 과장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김 대표가 같은 기간 동안 단숨에 CEO가 될 정도였다는 건 대단한 능력을 보여줬다는 걸 입증하는 거다.
그래서인지 김준구 대표는 2014년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로 선정됐는데,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랭크된 CEO였다고 한다. 그는 정말 차세대 리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것은 만화를 위해서라면 전천후로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는 개인돈을 사업에 사용할 정도로 열정이 높다고 한다.
네이버웹툰이 안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만화를 보기 위해서는 돈을 받고 만화책을 빌려주는 ‘대본소’(만화방)를 이용하던 것이 유일했던 시절이었다. 아니면 직접 만화책을 사서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빌려보는 시장이 훨씬 컸다. 출판 만화 시장이 존재하긴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다. 만화 빙하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때 만화를 좋아하는 김준구 대표는 만화시장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에 이르른다. 그러면서 그가 2004년 네이버의 일개 직원으로 시작한 작업이 ‘도전만화’ ‘베스트도전’과 같이 만화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위한 오픈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이었다. 네티즌들이 별점과 평가를 주면 도전만화, 베스트도전을 거친 신진 작가들이 웹툰 작가의 길로 가는 등용문 같은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네이버는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네이버는 도전하는 직원의 의지를 꺾지는 않았다. 물론 회사 예산을 풍족하게 주지는 못했던 것인데, 어찌됐든 김 대표는 자신이 꿈꾸는 만화같은 세상을 구축해 나갔다. 전통적으로 한장에 5컷, 6컷으로 제작된 종이를 한장씩 넘겨보는 방식을 버리고 모니터 화면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쭈욱 내리면서 보는 방식은 상당히 낯선 거였다. 만화의 스토리텔링과 전개도 종이를 넘기면서 극적으로 변화하는 거라서 모니터 화면 하단으로 미끄러지듯이 전개되는 웹툰은 기성작가들에게도 낯설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종이만화에 익숙한 기성작가보다는 새로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게 웹툰 비즈니스의 성공요소라는 걸 김준구 대표는 간파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도전만화, 베스트도전을 통해 그들을 찾아야 하는데 막상 오픈하고 나서도 호응이 별로 없었다. 여기서 만화에 미친 김준구 대표는 자신의 개인돈 700만원을 내걸고 호응을 이끌어내는 마케팅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 직원이 사비를 털어 경품을 건다는 사실도 참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다. 그의 열정이 통했는지, 도전만화 코너에서 활동한 예비 작가들이 2014년 기준으로 14만명에 달하게 된다.

한국 만화의 세계화
김준구 대표와 같이 하나에 미쳐서 온갖 열정을 쏟고 인생을 거는 사람들에게 네이버는 더할나위 없는 도전의 기회를 준다. 바로 ‘CIC’라는 사내독립 기업 제도 덕분인데, 이는 기업 일개 서비스가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육성하는 제도다.
IT기업들이 일부 사업부를 독립시키는 것은 자체적으로 책임경영에 나서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급변하는 IT생태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상장이나 외부 투자유치도 본사에서 받는 것보다 분리된 자회사가 받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점도 장점도 있었다. 
김 대표는 네이버의 직원이었지만, 수많은 직원 중에 한명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CIC 리더로 웹툰이라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게 네이버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성장한 네이버웹툰이 지난해 별도법인으로 독립을 했지만 김 대표는 CEO의 권위를 찾기 보다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웹툰 작가들의 마감을 챙기고, 모든 작품을 일일이 모니터하고 피드백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김 대표는 웹툰 작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해서 마감을 재촉하는 인물로 묘사되거나,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재탄생하기도 하는 등 웃음을 주기도 한다.
네이버와 같이 콘텐츠로 승부하는 기업들은 콘텐츠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웹툰에서는 작가들이 핵심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이고 김준구 대표는 이들을 잘 관리하는 사람인 것이다. 작가와의 호흡이 어떻게 보면 네이버웹툰의 또 다른 성공요소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김 대표들은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작가들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중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여러 웹툰 작가들과 소통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네이버웹툰이 유행을 끌고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간 것이다.
이밖에도 네이버웹툰의 성공요소로 네이버라는 전 국민이 이용하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웹툰 콘텐츠를 무료화한 것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웹툰 작품 맨 하단에 광고를 노출하면서 수익을 벌지만 사업 초창기에는 일단 사람들이 많이 찾아 트래픽을 올리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당장 수익에 몰두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매일 찾는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네이버의 뚝심과 중장기적인 비전 설계가 있었다는 걸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네이버웹툰은 작가들과 상생하면서 지속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는데 이른바 PPS라는 개념을 잘 살펴봐야 한다. 웹툰 안에서 광고, 캐릭터 상품 등을 이용해 작가에게 원고료 이외에 다양한 수익을 제공해 주는 거다.
김준구 대표는 최근 한국 웹툰을 세계 무대의 주류문화로 만들기 위해 글로벌 역량에 주력하고 있는데, 각 나라별 특성에 맞춰 네이버웹툰의 수익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유료 콘텐츠 시장이 자리잡은 일본에선 유료 결제를, 인도네시아는 게임과 연동된 수익을, 미국에선 기부와 연동되는 방식 등이다. 이렇게 각국의 만화 생태계에 맞춰 네이버의 다양한 웹툰이 수출되고 있다. 김준구 대표는 10년 만에 내수 중심의 만화시장을, 전 세계 수출상품으로 바꾼 글로벌 CEO라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만화같은 비즈니스는 오늘도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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