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위령공(衛靈公)’에는 공자와 위나라 영공의 대화가 나온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제사에 대한 법은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군사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위나라를 떠나버렸다.
위령공은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관계로 <논어>를 비롯한 여러 고전에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위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위령공은 그다지 현명한 군주는 아니었다. 영공이 전쟁을 배척하는 유학자인 공자에게 전쟁에 관해 묻자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공자는 날이 밝자마자 그곳을 떠나버렸다.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그와 함께 뜻을 펼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공에 대한 이야기는 <한비자>에 실려 있는 미자하(彌子瑕)와의 고사가 잘 알려져 있다.
위나라에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영공으로부터 대단한 총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락도 없이 영공의 수레를 몰아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위나라는 왕의 수레를 몰래 타면 발을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하지만,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영공은 “얼마나 효성이 지극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도 잊었구나”라며 그를 용서했다. 그 후 어느 날 미자하는 영공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먹고 있던 복숭아를 바쳤다. 영공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처럼 맛있는 복숭아를 나에게 주다니”라며 기뻐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자태도 빛을 잃었고 영공의 총애도 점점 옅어졌다. 어느 날 미자하가 작은 죄를 짓게 되자 영공이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과인 몰래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고 말하며 미자하를 쫓아버렸다. 여기서 나온 성어가 ‘여도지죄(餘桃之罪)’, 즉 ‘먹던 복숭아를 바친 죄’라는 뜻이다. 이 고사를 두고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다. 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이 후에 책망을 받게 된 것은 군주의 애증이 변했기 때문이다.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지혜를 낼 때마다 군주의 마음에 들었지만, 미움을 받을 때는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군주의 마음을 얻지 못해 벌을 받는다. 군주에게 간언을 하거나 정책을 논하려는 자는 먼저 자신이 군주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설득으로 이뤄져 있다. 사업상의 관계는 물론, 심지어 가정에서도 배우자나 자녀들을 잘 설득하면 가정이 평안해진다. 설득을 잘하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할 수 있지만, 설득을 못하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말솜씨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해도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일을 성사시키기는 힘들다. 서로 공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고사에서 위령공과 공자의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인간관계의 긍정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속담도 있다. “중이 미우면 입고 있는 가사도 밉다”는 속담이다. 사업에서도 인생에서도 성공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기본은 바로 공감하는 마음, 즉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다.

- 조윤제《천년의 내공》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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