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식(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일은 김일성의 사망 이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대내적 정치방식으로서 선군정치를 앞세웠다. 선군정치가 선군사상으로 체계화되면서 북한은 과거 맑스레닌주의가 경제우선에 머물렀다며 선군사상은 이를 극복하고 선행이론과 다르게 군대를 강화시키는 군 중심의 원칙과 원리를 제시했다.

군대를 앞세우는 독특한 정치방식이었던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의 틀 안에서 기존 맑스레닌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은 선군사상이 됐고 이는 김정일 시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김정은 체제는 이제 막 주조된 시스템으로 공식 이데올로기는 아직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이후 안보위기 극복을 위해 주체사상의 틀 안에서 선군정치를 체계화시켜 선군사상으로 격상시켰듯이, 김정은 역시 권력의 불안정성, 대내외 정세환경의 변화와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이 창시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정식화, 체계화시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규정짓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의 새 이데올로기가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는 현재의 지도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하위 담론으로 ‘숭고한 애국주의’이자 ‘사회주의적 애국주의의 최고정화’로 정의된 ‘김정일 애국주의’를 주창했다. 숭고한 조국관, 인민관, 후대관으로 구성된 ‘김정일 애국주의’는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하위 담론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당 조직을 긴장시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혈통승계 정당성에 집착
김정은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성공 가능성 여부와는 별개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체제공고화 이후에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체제와 혈통 승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와 대외전략에 대한 변화를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배경에서 북한의 대외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로서 북한 역시 안전보장과 경제적 번영이 대외전략의 목표이고 동시에 국제사회로부터의 인정과 정통성 획득 역시 외교정책의 목표이다. 탈냉전기 이후 북한은 진영외교에서 전방위 외교로 대외전략을 전환했지만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로 대표되는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에 관련된 대외전략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은 핵보유 국가를 기정사실화하는 정치적 의지를 확인하는 계기였다. 이는 자위적 핵억지력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세적 핵능력 국가로 거듭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 속에서 미국과 한국만으로는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없음을 알게 됐고 대외전략의 재검토 및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이른바 ‘선택적 병행’ 전략을 통해 대미·대남 의존으로부터 중국에도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북한은 포괄적 세계전략으로 ‘시계추 외교’를 구사하면서 지정학적 전략적 유용성을 최대화시키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안보 선택적 병행전략,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경제 선택적 병행전략을 통해 안보와 경제 이익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체제의 선택적 병행전략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안보상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줄타기와 시계추 외교가 그 특징이고, 그 핵심에는 북한의 핵전략 변화와 연관돼 있다. 4차 핵실험은 핵무기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의 핵전략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무력도발 가능성 농후
위와 같은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는 수세적 성격을 기본으로 대남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미전략에 활용하려는 특징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결국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론’ 역시 미국과의 대결 구도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고 이는 김정은 체제에서도 근본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보 측면에서 오히려 체제유지와 핵전략의 연장선으로 무력 도발과 군사적 위협 등 더욱 공격적이고 도발적일 가능성 또한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북한은 단순히 갑을관계가 아닌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언동을 통해 남북관계를 대미전략에 이용하는 기존의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 또한 낮아질 수 있다. 즉, 이는 ‘화해협력과 남북대결의 선택적 병행전략’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대외전략이 변화하고 있고 그 맥락에서 기존의 대남정책도 변화 가능성을 보이고 있음은 그 자체로 우리의 대북정책에도 의미있는 변화를 요구하는 요인이다. 북한이 미국과 한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중국을 적극 활용해 한·미와 중국 사이에서 적극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우리의 대북정책도 이제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틀에 갇힌 단순한 셈법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와 복잡한 양자관계를 고려하고 감안하는 보다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제 정점을 향하는 북핵위기에 대해 어느 누구도 팔짱을 끼고 적극적 문제해결을 회피하기는 어렵게 되고 있다. 북핵위기의 심화는 이제 북핵문제 자체가 아니라 ‘북한문제’와 연관돼 해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

북핵위기가 결국 북한문제의 해결로 해소된다는 작금의 현실은 우리에게 통일환경의 결정적 국면이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급변사태로 붕괴할 경우에는 ‘평화적 흡수통일’ 방식과 경로를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북한이 미국과 관계정상화 할 경우에는 평화공존을 통한 점진적 평화통일을 차분히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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