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밀러 한국 공식 홈페이지

일등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밀러 라이트의 사례를 보자. 밀러 라이트는 완전히 새로운 맥주 카테고리를 만든 주인공이다. 바로 저칼로리 맥주다. 밀러 라이트는 1975년 첫 출시부터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 몇년 만에 연간 판매량이 16억 리터 수준을 넘었다. 이 엄청난 성공으로 모방 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곧 버드와이저와 쿠어스가 자체적으로 라이트 라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밀러 라이트의 판매는 1990년 30억리터를 기록한 후, 20여년 동안 등락을 거듭했다. 그러다 결국 IPA(India Pale Ale) 맥주보다도 훨씬 덜 팔리게 됐다. 2008년 밀러 라이트와 쿠어스 라이트가 밀러쿠어스라는 합작회사로 한 지붕 아래에 뭉친 후(밀러쿠어스는 사브밀러 SAB Miller와 몰슨쿠어스 Molson Coors 제품의 미국시장 판매를 담당한다), 밀러 라이트는 새로운 수모를 당했다. ‘회사 내 가장 잘 팔리는 라이트 맥주’라는 명성을 상실한 것이었다.

크래프트 양조업체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전국적인 브랜드들이 많은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또 도수가 높은 술들이 속속 복귀했다(미국 전체 술 소비 중 맥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9년 56%에서 2014년 48%로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밀러 라이트 같은 주류 대기업들의 미래는 암울해졌다.

경쟁자들의 등장
하지만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수십년간의 침체와 7년 연속 하락을 겪었던 밀러 라이트가 상승으로 돌아섰다. 2014년 하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4300만개의 밀러 라이트 캔을 더 판매했다. 밀러쿠어스에 따르면, 당시 판매량이 52주 평균 대비 몇 퍼센트씩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물론 6개월이란 시간은 밀러 라이트라는 브랜드의 완벽한 회생을 선포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기간이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어 비즈니스 데일리(Beer Business Daily)는 “밀러 라이트가 지난 2분기 동안 보여준 상승세는 거의 놀라운 수준이었다. 타이타닉이 방향을 트는 것과 같았다. 그들이 마침내 시장 암호를 해독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비어 비즈니스 데일리는 밀러 라이트가 이런 속도를 유지한다면, 버드와이저를 누르고 미국 시장에서 버드 라이트(Bud Light)와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에 이은 3위 맥주업체로 등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암호를 풀 수 있었던 탁월한 통찰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겉만 보면 평범한 변화였다. 또 어느 정도는 우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제 막 시작된 밀러의 회생은 맥주 산업을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성공은 바로 과거 라이트 광고를 떠올리게 하는 이분법, 즉 2가지 요소에 달려 있었다. 바로 뛰어난 마케팅과 훌륭한 맛이다.

뛰어난 맛과 훌륭한 마케팅
밀러쿠어스의 최고경영자 톰 롱(Tom Long)은 밀러 라이트의 품질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밀러는 지난해 단기 프로모션 차원에서 오리지널 캔에 라이트 맥주를 담아 판매했다. 밀러 라이트의 뿌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개블링거 다이어트 맥주(Gablinger’s Diet Beer)가 첫선을 보였다. 미국인들이 허리둘레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시기였지만, 남성 애호가들은 다이어트 맥주라는 생각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 이때 밀러가 등장한다. 당시 밀러의 마케팅은 기적 같은 결과를 낳았다.

밀러는 여느 맥주처럼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밀러는 캔의 ‘여성적인’ 표기를 없애고, ‘고급 필스너 맥주(Fine Pilsner Beer)’ 라는 글자 크기를 키워 물 탄 맛이 나는 맥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건장한 남성들이 농담을 나누면서도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절대로 말하지 않는 광고를 내보냈다. 새로운 맥주 카테고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밀러는 마케팅만으로 브랜드가 직면한 모순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크래프트 양조업체들이 라이트의 맥주 맛을 모방했다. 애호가들이 맥주 맛에 대해 높은 안목을 갖게 된 것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도수가 낮은 맥주를 원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도 많은 소규모 맥주 제조사가 도수와 칼로리가 낮은 술을 양조하고 있다. 그들은 ‘맛이 가볍다는’ 느낌을 피하기 위해 ‘세션’ 맥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도수가 낮은 술을 부를 때 쓰이는 업계 용어가 됐다.

제조조합(Brewers Association)의 수석경제학자 바트 왓슨(Bart Watson)은 “미국 맥주 시장의 4분의 3은 라이트 맥주나 세션 맥주에 속한다”고 말했다.

밀러 라이트의 최근 TV 광고는 고무적이다. 한 광고는 ‘밀러 라이트. 우리가 라이트 맥주와 당신을 탄생시켰다’고 외친다. 또 다른 광고는 한 농부의 손에서 계속 떨어지는 홉(hop. 맥주 특유의 향기와 쓴맛을 내는 곡물)과 맥주 제조업자가 필스너 맥주를 가득 채운 유리잔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이미지들은 크래프트 맥주 광고에서 더 흔하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밀러 라이트의 부활은 ‘제품의 기본을 지키자’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잘 보여준 사례다.

- 글 : 하제헌 <FORTUNE>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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