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스캐처(Foxcatcher)

올해 초 미국과 유럽 개봉작은 국가와 개인 삶 사이에서 갈등했던 실존 인물을 조명하면서 현대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빼어난 수작들이 많다. 단선적 전기 영화를 넘어서 당대 국가관·사회상·가치관에 희생된 인물 내면을 읽어내는 사회성 뛰어난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 배우의 놀라운 몰입 연기를 보는 즐거움이 크다.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Foxcatcher)는 명분과 개인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실존 인물 영화의 정점에 위치한다.

듀폰가의 4대 상속자 존 듀폰(1938~2010)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러 데이브 슐츠를 살해한 사건은 존 듀폰이 이틀 동안 경찰과 대치하던 상황이 미 전역에 중계 방송될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존 듀폰의 정신 이상설 등이 제기됐지만, 살인 동기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뒷이야기가 무성했다. 베넷 밀러 감독의 해석은 존 듀폰 개인의 변덕스런 성격을 넘어 현대인에게 내재된 불안으로 확대된다.   

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와 나란히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러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 데이브가 체육관을 운영하는 성실하고 존경받는 체육인이자 아내와 두 아이를 둔 행복한 가장인데 반해, 마크는 선수로서 슬럼프를 느낀다.

그즈음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자신의 레슬링 팀 ‘폭스캐처’에 합류할 것을 제안한다. 펜실바니아의 대 농장에 위치한 좋은 체육 시설과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들인 마크는 레슬링 선수를 꿈꾸었던 존 듀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존 듀폰은 애정을 쏟아 붓던 마크를 멀리하고 데이브를 코치로 초빙한다.

존 듀폰과의 불편해진 관계와 코치로 부임한 형으로 인해 갈등하던 마크는 형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데 실패한다. 마크는 폭스캐처를 떠나고, 남아서 꾸준히 레슬링 선수들을 훈련시키던 데이브는 1996년 1월, 갑자기 찾아온 존 듀폰이 쏜 38구경 리볼버 총 세발을 맞고 즉사한다.

<폭스캐처>는 살인 사건의 심리적 원인을 세 주인공의 관계 변화에서 찾는다. 마크를 맞은 존 듀폰은 자신의 농장이 남북전쟁의 유명 격전지에 위치했음을 자랑한다.

또한 자신은 코치로서 폭스캐처를 통해 미국의 영웅을 탄생시킬 것임을 강조한다. 코치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어하는 존 듀폰. 이는 일차적으로 어머니에게 인정받고픈 마음에서 기인한다. 수십마리의 말을 기르며 애지중지하는 어머니는 승마 같은 고상한 운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레슬링을 경멸한다.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연습장을 찾자 갑자기 강훈련을 시키며 말이 많아지는 존 듀폰. 박물관이라 부르는 트로피 진열 방에서 승마 대회 우승컵을 없애고 레슬링 우승컵으로 채우겠다는 웅변 등 레슬링 코치로 자신을 위치 지우려는 존 듀폰의 집착은 존 카렐의 놀라운 연기 변신으로 섬뜩하게 반복 강조된다.

<폭스캐처>는 무표정한 얼굴을 치켜들고 어깨는 약간 굽힌 채 걷는 존 듀폰의 등장 장면에서부터 관객을 초조하게 만든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예측 불가능한 대부호로 완벽하게 변신한 스티브 카렐은 <폭스캐처>를 스릴러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한다.

한참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숲과 말 목장이 있는 대농장과 대저택을 감싸는 차가운 공기와 하얀 입김도 싸늘한 이미지에 기여한다. 말수가 적은 듀폰가의 거만한 변호사, 집사들까지, <폭스캐처>는 데이브와 그의 가족 등장 장면 빼고는 불안한 분위기로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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