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필자의 아버지는 자녀의 훈육을 하면서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이란 문구를 자주 인용했다. 재산이나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재산이 많거나 안정된 직업을 가지면 마음이 든든하고 자신의 소신을 견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뜻도 된다. 실제 가계를 꾸려 나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실업의 공포가 어떠한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에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있다.
이 작품은1930년대 거대한 모래 폭풍과 농업의 대자본화로 농토를 잃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오클라호마 농민 가족들의 고난을 그린 문제작이다. 발간하자마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낡은 트럭에 허름한 가재도구를 싣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2,000 킬로나 되는 거리를 여행, 천신만고 끝에 찾은 꿈의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것은 ‘착취와 기아와 질병’이었다.
농장주들은 일자리에 갈급한 이들의 사정을 악용해 최소한의 가족 생계도 보장할 수 없는 저임을 제시하고 이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은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했다.’포도를 한 주먹씩 따서 얼굴에 짓이겨 포도 물이 턱밑으로 줄줄 흐르게 하고 싶다’ 던 할아버지가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도중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도 한다.
지금 와서 새삼 분노의 포도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많은 이들에게 오늘의 현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대학 교육을 마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애를 태우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작품 이름에 걸맞게 포도라는 말이 47번이나 언급된다. 하지만 일자리라는 말은 115번 이상이나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자나 깨나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만 마치 탄탈루스 (Tantalus)가 받은 형벌처럼 잡으려 하면 멀리 달아나 버리거나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에 모두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누구나 경제가 회복되면 일자리가 늘어나리라는 희망을 갖지만 이것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소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경기 회복(jobless recovery)이 이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의하면 미국도 2003년 말에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경기회복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기업들이 저임금을 찾아 사업체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주범이라고 대부분 생각했다. 실제로 내용을 알아보니 2001년의 불경기후에 GDP도 현격한 성장을 실현했지만 생산성은 이를 훨씬 추월해 추가적인 고용이 필요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내 근로자의 노동 생산성이 OECD 평균의 38.6%에 불과하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최근 발표가 있었지만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업무 프로세스개선, 공정자동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생산성 향상이란 결국 종전과 같은 리소스를 투입하고도 더 많은 산출을 얻는 것인데 이는 우리도 ‘일자리 없는 성장’의 궤를 따를 것임을 뜻한다.
필자가 담당하던 미국 콜로라도 지역의 한 업체가 기존의 대기업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700여명의 인력을 고용 승계하기로 결정하자 지역의 유력 일간지가 대서 특별하던 기억이 난다. 기업이 필요에 의해 신규 인력을 고용한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들이야말로 청년 실업자가 100만명을 상회하는 이 암울한 시대를 밝히는 진정한 등대요 생명선임을 깨닫고 특별히 우대하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그 동안 고용증가를 선도한 대기업은 각종지표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용인력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 이제는 일자리 창출에 중소기업의 역할을 기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늦게나마 고용을 늘리는 중소기업에 대해 기업을 옥죄여왔던 필요 이상의 세무조사를 3년간 면제해주는 등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올바른 세정 방향인 것으로 평가한다.

김광훈
ASE Korea 품질혁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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