➋ 태업·태업 그러다 사업장 변경… ‘이직수단’ 악용 전국 확산

태업⋅고발⋅독촉 등 꼼수 일상화
82%가 1년내 사업장 변경 요청

도입비용 날리고 생산성도 하락
“불가피한 사정 외 금지가 마땅”

[역대 최대 인력 도입 속 개선 시급한 외국인력제도] 저출산·고령화는 지금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지난해 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고, 5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인구가 3000만명도 안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소기업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아무리 채용 공고를 내도 내국인을 구하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외국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에 <중소기업뉴스>가 2024년 외국인력 도입제도의 개선점 가운데 실제 현장의 애로사항을 중심으로 4회에 걸쳐 살펴본다.

“외국인 근로자가 수시로 피를 토하길래 병원에 가자고 해도 매번 싫다며 버팁니다. 설득 끝에 병원에서 내시경 정밀 검사를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입에 넣고 3분 정도 지나면 진짜 피처럼 흘러 나오는 ‘블러드 캡슐’을 사용한 것이었죠. 생각해 보니 그 외국인 근로자가 요청했던 계약해지(사업장 변경을 위한)를 거절한 뒤에 이런 방법까지 사용한 거더군요.”

외국인 근로자(E-9)를 채용하고 있는 서울의 한 주물 제조기업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에 따라 사업장이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임금체불 등 사업장 귀책사유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 근로자들이 온갖 꼼수를 악용해 근로계약 해지를 요구하면서 사업장 변경 제도를 이직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악용의 목적은 ‘더 높은 임금의 사업장 선택’을 위한 것이다.

곽인학 한국금속패널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입국을 목적으로 우선 취업을 하고 고임금 업체로 이직을 하려고 한다”며 “한국에 먼저 들어온 자국민들이 SNS 등을 통해 그룹을 형성하고 이직 방법 등을 실시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주52시간 근무하는 사업장보다 2·3교대 사업장을 희망하며 이를 위해 악의적 업무태만으로 ‘사업장에 권고성 이직을 유도’하는 편법을 쓰는 실정이다.

서울에 있는 한 기계부품 제조기업 대표는 “회사에 온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가 자기 친구가 근무하는 업체에서 일하겠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해 거절했더니, 얼마 후엔 고용청에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조사받으러 오라고 했다”며 “정말 황당할 따름”이라고 호소했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직 꼼수가 늘어나면서 △근무 분위기 저해 △도입 비용 손실 △생산성 저하 등 중소기업들이 유·무형의 손실을 보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23 외국인력 사업장변경 中企 애로사항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활용기업 중 68%가 외국인 근로자의 근로계약 해지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무려 96.8%가 해당 근로자와의 계약해지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입사 초기에 불거진다는 점이다. 계약해지를 요구받은 시점에 대해 82%가 입국 후 1년 이내라고 답했다. 3개월 이내도 25.9%에 달했다.

사업장 변경 시도 비율이 입사 초기에 몰리면서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은 인력공백을 넘어 생산중단이라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가구제조 중소기업 대표는 “다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절차상 내국인 구인노력 기간과 고용허가 신청 절차를 거쳐 최소 3개월의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며 “눈에 훤히 보이는 사업장 변경 동의를 받아내기 위한 꼼수에 시달려 이제는 이석증, 수면장애 등 병원 치료를 받을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중소기업계에선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 후 사용자의 책임이나 사회통념상 근무처 변경이 불가피한 사정이 아닌 경우엔 ‘사업장 변경 금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업장 변경이 부득이한 경우라면 현재 5회(최초 3회, 재고용 2회)에서 3회(최초 2회, 재고용 1회)로 변경 횟수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태업 등을 통해 악의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근로자는 강제출국 조치를 할 수 있는 제재 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반대로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는 근로자에 대해 체류기간 연장이나 재입국절차 간소화 등 인센티브도 적용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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