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생소한 맥주 3가지] 람빅·고제·발리와인

발효 방식에 따른 맥주의 종류를 이해하고 어느 정도 맛을 구분할 수 있는 경지에서 매번 비슷비슷한 스타일의 맥주만 마시다 보면 더 이상 맥주가 맛있게 느껴지지 않고 시시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이러한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매력으로 온몸을 흠뻑 적시는 맥주의 또 다른 얼굴이 존재한다. 맥주가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생소한 종류의 맥주들 이야기다.

 

람빅 Lambic : 쿰쿰한 향·강한 신맛 인상적

와인계에 내추럴 와인이 있다면 맥주계에는 람빅이 있다. 람빅은 내추럴 와인과 같이 천연효모로 발효시키는 맥주다. 에일이나 라거와는 달리 인공 효모가 아닌 대기 중에서 떠돌아 다니는 자연 상태의 효모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자연발효 시킨 맥주를 모두 람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 그 안에서도 센강 유역에서 서식하는 효모로 만든 것을 람빅이라고 한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스파클링 와인에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듯 브뤼셀 인근 12개 양조장에서 만든 자연발효 맥주만이 람빅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산패를 막기 위한 특별한 관리 속에서 무려 3년에 걸쳐 숙성되는 람빅은 내추럴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쿰쿰한 향과 강렬한 신맛이 인상적이다. 원액으로 마시기보다는 위스키와 같이 숙성 연도가 다른 원액을 블랜딩 하거나 과일 또는 설탕 등을 배합해 무궁무진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점 또한 재미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람빅 브랜드는 팀머만스, 오드 괴즈 분 등이 있다. 팀머만스(Timmermans)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람빅 양조장으로 100% 전통 방식에 따라 제조한 것부터 과일을 넣은 프루트 람빅(Fruit lambic), 설탕을 첨가한 파로(faro), 세계 유일의 밀맥주 람빅인 블랑쉐(Blanche) 등 변형된 스타일의 람빅까지도 모두 생산한다.

분 브루어리(Boon Brewery)의 오드 괴즈 분(Oude GEUZE BOON)은 람빅을 배합해 숙성한 파생 맥주다. 18개월 숙성 람빅 90%3년 숙성 올드 람빅 5%, 1년 이하 영 람빅 5%의 비율로 블렌딩한 후 코르크 마개로 막아놓은 병 속에서 2차 발효를 시킨다. 아주 강한 신맛의 올드 람빅과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어우러진 영 람빅을 섞어 꽤 자연스러운 풍미를 자랑한다.

 

고제 Gose : 암염 머금은 은은한 짠맛 매력

맥주에서 짠 맛이 날 수 있다고? 그렇다. 독일 중부 고슬라르와 라히프치히 지역에서 생산되는 에일 맥주인 고제는 짭쪼롬한 맛이 특징이다. 이 짠맛의 비밀은 맥주를 만드는 물에 숨어 있다. 고슬라 지방의 고제(Gose) 강은 은, 아연을 비롯한 광물 뿐 아니라 암염(岩鹽)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고슬라 지방의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암염이 녹아 소금기를 머금은 고제 강의 강물로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고제 지역의 맥주는 짠 맛을 갖게 됐다.

맥주에 짠 맛이라니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셔보면 다르다. 밀을 최소 50% 이상 사용하기 때문에 얼핏보면 밀맥주와도 같은데 마시는 순간 강한 신맛에 눈이 번쩍 뜨이고 이어 묘하게 느껴지는 짭쪼롬한 맛이 흥미롭다. 짠 맛 덕분에 풍미가 더 살아나는 느낌도 받는다. 수박이나 파타야 같은 과일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 단맛이 더 극대화되는 것과 비슷하다. 목넘김을 하고나서는 고수 씨앗인 코리앤더의 알싸한 맛이 엷게 퍼지며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라거처럼 벌컥벌컥 들이키기는 어렵지만 오묘한 매력에 쉴틈없이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어느새 빈병이 쌓여가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 맛과 스파이시한 향 덕분에 라거 못지 않게 여름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

1824년부터 라이프치히에서 생산되는 리터구츠 고제(Original Ritterguts Gose)는 고제 스타일 맥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발효 중 젖산균에 의해 생긴 시큼한 맛과 은은하게 느껴지는 소금맛, 코리앤더의 상큼하고 스파이시한 향을 모두 담아 전통 고제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좀 더 이색적인 고제로는 국내 맥주 양조장인 안동맥주와 전통장류 제조 브랜드 무량수의 협업으로 탄생한 무량수 GOSE를 추천한다. 지역 찹쌀에 10년 넘은 간장독에서 나온 석장으로 짭짤한 맛을 표현하고 경상도의 로컬 허브 방아잎을 첨가해 특별함을 더했다. 익기 시작한 복숭아가 떠오르는 산뜻한 산미와 부드러운 목넘김이 균형을 이루고, 방아의 은은한 아로마와 석장의 감칠맛이 매력적인 맥주다.

 

발리 와인 barley Wine : 오크통서 숙성, 깊고 풍부한 맛

짠 맛이 나는 맥주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 중 하나가 와인이라는 명칭의 맥주인 발리 와인이다.

발리 와인은 상면발효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영국식 에일의 한 종류다. 19세기 영국에서 에일 맥주를 장기 보관하기 위해 알코올을 높이고 나무 배럴에 담아 지하에 보관한 것이 시작이다. 맥주를 와인처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고 맥주를 와인처럼 오크통에서 1년 이상 숙성시키고 도수 또한 와인과 비슷해 와인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과일이 아닌 곡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엄연한 맥주에 속한다.

대체로 12~14%의 알콜 도수에 호박색 또는 짙은 갈색을 띤다. 맥주가 오크통에서 익는 베럴 에이징과정을 통해 발효된 맥아즙 이상의 깊고 풍부한 맛을 자랑하는 것도 특징이다. 셰리향(sherry)과 같은 미묘한 산화취와 함께 과일의 상큼한 향이 특히 도드라진다. 숙성 주류이기 때문에 구입 후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지녔다.

발리 와인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유행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들어서다. 사실 영국의 발리 와인은 높은 알코올 도수를 내기 위한 맥아 원료값과 세금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맥주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이색적이고 더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즐기는 크래프트 맥주씬이 자리잡으며 사라질 뻔한 발리 와인이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우리가 마시는 발리 와인은 대부분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르 앙상블 디 몬탈치노(L’ensemble di Montalcino)보리의 딸이라는 뜻의 벨기에 디 도흐트 반 꼬르나르(De Dochter ven de Korenaar) 양조장에서 만든 발리 와인이다. 이탈리아 최고 품종 와인인 몬탈치노 와인 배럴에 숙성해 만든 맥주로, 와인의 풍미가 맥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코코아, 건포도, 다크 초콜렛, 브라운 슈가와 셰리향이 섬세한 오크향과 함께 맥주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해 와인 또는 위스키 애호가도 흥미롭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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