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안정적인 거래금융 몰두
정부, 경영부실시 무더기 문책
처벌 강화된 은행법 7월 시행
선진국형 관계금융 정착 시급

지난 18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영수 금융위원회 은행과장, 김용진 서강대학교 교수, 한정화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 오영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김도성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임채운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실장, 노용환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박치형 동반성장위원회 운영처장.	황정아 기자
지난 18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영수 금융위원회 은행과장, 김용진 서강대학교 교수, 한정화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 오영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김도성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 ,임채운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실장, 노용환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박치형 동반성장위원회 운영처장. 황정아 기자

윤석열 정부는 정권 초기인 지난 2022년부터 국민의 금리부담과 소상공인·중소기업 경영환경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권에 ‘상생금융’을 줄기차게 주문해 왔다. 지난 2월1일 금융위원회는 ‘은행권 민생금융지원방안’을 통해 역대 최대규모인 2조원의 자율적 지원방안까지 도출할 정도다.

이에 따라 지난 3년 동안 은행권은 앞다퉈 상생금융 조직을 운영하고 그 기능을 강화했다. 가계 일반 및 취약차주, 중소기업,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수수료 및 금리 인하 △연체이자율 감면 △원금상환 지원 △채무감면 등의 노력이 이어졌다.

지난해 9월24일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상생금융 추진성과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는데, 가계(일반 및 취약차주) 및 중소기업, 소상공인 대상 원리금상환부담 등 상생금융으로 소비자가 받게 될 혜택은 총 1조1470억원이었다.

하지만 실제 중소기업에 대한 상생금융 실적은 다른 가계·취약차주·소상공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中企에 문턱 높은 금융시스템

중소기업에게 유독 문턱이 높은 현행 금융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들 때문이다. 우선 취약차주, 소상공인 등 다른 금융지원 대상 고객과 다르게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정책금융이 주도를 한다. 은행권(민간금융)은 중소기업 지원에 있어 보조 역할을 해왔다.

시중은행은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 보다는 은행경영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우선시해 우량기업과 담보대출을 선호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식당자재 유통업을 하는 A대표는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이 없으면 은행권의 문턱을 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용도가 낮은 창업기업이나 중소기업 자금공급을 기피하고 신용보증서만 요구하는 대출관행은 너무 후진적이지 않냐”고 지적했다.

정량화된 재무제표와 담보대출 중심의 영업방식을 거래금융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거래금융 방식의 폐해는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에서도 증명된다.

지난해 7월 은행법 개정에 따라 시중은행은 전체 대출의 50%를, 지방은행은 50%를, 외은지점은 25%를 중소기업 의무대출비율로 규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말 기준 일반은행과 외국은행지점의 중소기업 대출비율은 각각 42.28%와 16.93%로 법 기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은행권도 반론할 여지가 있다. 은행법에 따라 수시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은행경영실태 평가(CAMEL-IR: 카멜지수평가)를 받게 된다. 현재 카멜 항목은 자본적정성(C), 자산건전성(A), 경영관리(M), 수익성(E), 유동성(L), 리스크관리(R)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은행의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부추기며 거래금융을 유도하는 평가 항목들이다.

카멜지수는 은행권의 자산건전성과 수익성 위주로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사실상 은행권 경영 종합감사라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부당·부실대출과 업무실수 등이 발견되면 무더기로 문책조치를 시행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시중은행들이 안전하게 물적 담보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출관행을 하는 속사정이다.

노용환 서울여대 교수는 이에 대해 “중소기업 자금공급을 확대하게 되면 은행의 카멜지수 등급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라며 “중소기업에 대한 관계금융을 강화하고 상생금융지수를 도입하자는 것이 되레 은행의 등급 평가와 충돌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통 은행이 중소기업과의 상생금융 비중을 높이면 대출리스크에 따른 대출손실 우려도 증가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의 대손충당금 부담으로 위험자산의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하고 카멜지수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국 은행권의 공공성 기준을 강화하자는 상생금융지수의 도입은 카멜지수평가를 중소기업에 대한 공공성 제고 방향으로 개편하는 후속 작업이 있어야 가능해 보인다. 이에 대해 금융위의 입장은 현재까지는 부정적이다.

지난 18일 열린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강영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왜 이번 토론회에 관계자인 은행이 없을까 궁금하고 그들의 생각이 중요하다”며 “다만 이 부분에 대해 지수를 만들고 평가를 하고 은행에 불이익을 준다는 등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는 살펴야 하고 (상생금융지수가) 정부 정책을 평가하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은행판 중대재해법’ 가속화

상생금융으로 은행권의 경영부담을 걱정하고 있는 금융당국은 역설적이게도 카멜지수평가 항목 개편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은행권을 더욱 옥죄는 규제 방향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은행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는 ‘책무구조도’다.

책무구조도는 불완전 판매와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가 터질 경우 금융권의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부여하자는 내용으로 오는 7월 시행된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법 시행 후 6개월 내로 임원 개개인의 책임 업무와 범위를 명시화한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서 카멜지수평가 개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융위는 현재 카멜 항목 가운데 경영관리(M)에서 내부통제(I)를 별도로 빼내 15%의 높은 평가 가중치를 부여하는 ‘은행 검사매뉴얼’을 규정변경예고를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사고에 대한 개인 처벌을 강화하는 책무구조도로 인해 요즘 금융권의 주요 임원들은 문서에 ‘싸인’을 잘 하지 않는 매우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며 “앞으로 중소기업 상생금융을 강화하는 의사결정을 누가 책임을 지고 맡을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처럼 책무구조도가 본격화된다면 은행권의 경영진은 카멜지수평가 준비에 있어 더욱 까다롭고 보수적인 경영 관리를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중소기업계에선 상생금융지수의 현장 도입에 있어 또다른 난제가 더욱 강화되는 카멜지수평가에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앞으로 상생금융지수가 카멜지수평가에 어떤 항목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추가적인 정책연구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은행권의 처벌 규정 일변도인 책무구조도와 달리 상생금융지수는 은행권과 중소기업간의 동반성장과 상호 실적향상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금융위가 우려하는 ‘은행에 불이익’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라는 지적은 지나친 진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 18일 상생금융지수 도입 토론회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상생금융의 퍼즐이 완성되려면, 금융당국이 은행권을 압박하고 쥐어 짜내며 상생금융의 분담금을 늘리는 것보다 상생금융의 범주와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게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도 독일·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같이 은행과 중소기업의 상생지향적인 관계금융을 정착해 안정적인 자금과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때”라고 꼬집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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