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의 갑질’ 등 부정적 이미지에도
자고나면 창업, 편의점 5만곳 돌파
해결과제 많지만 시나브로 연착륙

편의점주⋅작가
편의점주⋅작가

중국에서 나름대로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퇴직 후 개인사업을 해볼 요량으로 이런저런 준비도 하던 내가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와 편의점을 열게 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편의점을 해봐야겠다고 결의를 밝힌 이메일 한 통 때문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 외식업을 해오신 분이다. 오리고기 집으로 시작해, 숯불갈비점을 운영했고, 그러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어느 식당을 창업하기도 하셨다. 식당을 하나 차린다면 눈감고도 차릴 수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갑작스레 ‘편의점’이라니, 황당할 수밖에.

그러니까 내가 편의점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편의점을 말리려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편의점을 차린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인터넷에서 ‘편의점’이라는 용어를 검색해보는 일이었다. ‘생활고 비관한 편의점주, 극단적 선택’, ‘편의점 본사의 갑질…… 가맹 계약 불공정 논란 계속’,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노트북 화면에 주룩 펼쳐졌다. ‘극단’, ‘갑질’이라는 용어와 함께 아버지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안되겠구나, 고생을 하더라도 내가 해야겠다.”

조금 황당한 사연으로 시작한 편의점이 이제 12년째를 맞는다. 아버지 명의 편의점 계약서는 내 명의로 돌렸고, 그때 빌린 창업자금과 임대 보증금은 이미 갚았다. 담배 이름을 알지 못해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허둥대던 내가 이젠 눈감고도 담배 위치를 찾아낸다.

지난 십여 년을 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대로다. 내가 편의점을 시작하던 때에 전국에 편의점이 2만 개 점포였다. 그때에도 편의점이 너무 많다느니, 편의점 본사 사이에 지나친 경쟁으로 가맹점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느니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 우리나라 편의점은 5만개가 넘는다.

편의점이 3만개 넘어가던 때에 이대로 가다가는 시장의 균형이 무너질 것처럼 언론이 호들갑이더니 여전히 세상은 나름대로 굴러간다. 편의점 골목 사이로 무인 과자 전문점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 문구 전문점까지 가세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럼에도 세상은 평화롭다.

그렇다면 언론의 호들갑이 문제였을까? 언론이 떠들지 않아도 시장은 알아서 균형을 유지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안팎에서 자꾸 ‘문제 있다’ 떠들고 지적하고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시장은 내적으로 성숙의 균형을 찾았던 것이다.

돌아보면 십여 년 전만해도 정말 ‘본사의 갑질’이라 할만한 대목이 많았는데 이제는 가맹점주 권리가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높아졌다. 물론 아직도 해결해야 할 대목은 많지만 ‘과거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한발 한발 진보하며 나아간다.

진보의 속도를 지나치게 비관해서도, 낙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어쨌든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진보의 방향에 누구는 오롯한 악당이고 다른 누구는 언제나 천사인 것도 아니더라.

서로의 역할이 맞물리며 세상은 발전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대화하고 타협하고 존중하려는 자세 아닐까. 그러한 신뢰와 질서만 유지된다면 멀리서 바라보아 역사는 진보한다는 결론을 우리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편의점은 생겨나고 또 없어진다. 나는 묵묵히 내가 있을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면 할 말은 할 것이다. 지난 겨울 유난히 춥고 눈도 많더니 곧 봄이다. 봄 지나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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