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정 부담금을 최소 절반 이상 정리하는‘범정부 부담금 개혁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총 91개, 25조원에 달하는 개별 부담금들을 들여다 보면, 사실상 준조세 성격이 강하고 시대 변화에도 맞지 않는 부담금들이 적지 않다.

특히, 가장 규모가 커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거론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 부담금 실태조사에서도 최근 3년간 가장 부담을 느끼는 항목이었으며, 불합리한 준조세라고 문제를 제기했던 만큼 전력산업기반기금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전기사업법에 근거해, 전기요금의 3.7% 정률로 징수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은 부담 요율이 2006년 이후 18년 동안 한 차례도 변동 없이 유지됐다. 이로 인해 전기요금 급등과 맞물려 중소기업의 에너지비용 부담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비용 부담의 급증에 더해 또하나의 문제는 기금이 전력 인프라 강화라는 고유 목적과 다르게 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출내역을 보면, 2022년부터 약 1조 3000억원을 전기차 보조금에 주로 쓰이는 계정인 에너지특별회계로 넘기고 있고, 2000억원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기후대응기금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 전력 인프라 강화 목적과 다르게 전기차 구입비 보조, 온실가스 감축 지원 등과 같은 곳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전기요금은 중소기업의 원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인 만큼, 2022년부터 40% 가까이 급등한 전기요금은 중소기업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전기료가 제조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물, 열처리, 도금 등 뿌리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더구나, 지난 10월 시행된 납품대금연동제에 전기료는 연동대상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전기요금 인상분을 원가에 반영할 수 없고, 이로인해 적정 납품단가의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전기요금인상과 관련해 중소기업의 69.9%가 “특별한 대책이 없다”라고 답했다. 에너지 비용 부담 완화를 통한 중소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력산업기반기금 개편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과 한국전력의 누적적자는 무관하다. 오히려 정부가 부과하는 준조세 성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중소기업계가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제도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으나 바뀌지 않았고, 심지어 감사원·국회에서도 수차례 요율인하의 필요성을 지적해왔지만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에너지 원가 상승이라는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해외 주요국의 정책 대응은 우리와 대비된다. 일본의 경우 2023년 1월부터 kwh 당 3.45엔 부과됐던 재생에너지부과금을 kwh당 1.4엔으로 인하했고, 독일의 경우 2022년 7월부터 kwh당 0.037유로 부과됐던 재생에너지 부과금을 면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도 준조세 성격의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요율을 과감하게 인하 또는 면제해야 한다.

또한, 기금의 사용에 있어서도 고유의 목적에 맞게 사용돼야 한다. 고효율 설비교체 등 에너지 효율화 및 생산 공정 개선 등 스마트공장 구축지원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중소제조업의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구조로의 전환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중소기업계는 전기요금과 관련해 뿌리기업전용요금제 등을 지속 건의해 왔다. 당장 뿌리기업전용요금제 등의 조기 도입이 어렵다면, 먼저 한전의 누적 적자와 무관한 전력기반산업기금 개편부터 이뤄져야 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소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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