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레트로 감성은 한 템포 쉬어가며 숨을 고르게 해주는 제동장치와도 같다. 옛 감성을 오롯이 간직한 풍경들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겐 정겨운 추억을,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세대에겐 호기심과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새해 시작과 동시에 바쁘고 힘차게 일하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2월엔 한 걸음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기자기한 레트로 여행지로 떠나보자.

 

응답하라 그 시절! 동두천 동광극장과 보산동관광특구

지금도 운영중인 전국 유일 단관극장

관광특구는 록 대부 신중현의 주무대

동두천 동광극장
동두천 동광극장

경기도 동두천시에 자리한 동광극장은 1959년 처음 문을 열었다.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2018년 유튜브 채널 ‘와썹맨’에서 ‘와칸다 극장’으로 MZ 세대에게 익숙하다. 지난해에는 극장으로는 유일하게 ‘경기도 대표 오래된 가게(경기 노포) 12선’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광극장은 지금도 운영 중인 ‘전국 유일 단관 극장’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극장 박물관이자, 세대를 넘나드는 현재진행형 레트로 극장인 셈이다. 건물 입구에 멈춰 서면 손으로 영화 제목을 쓴 상영 시간표가 정겹다. 대한뉴스, 문화영화 칸은 드라마 세트장 같아 포토존으로 인기다. 극장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면 시간이 ‘응답하라 1988’ 그 어디쯤으로 훌쩍 뛰어넘는다.

휴게실에는 1980년대 구입해 20여 년 동안 사용한 영사기, 옛날 극장에서나 볼 법한 수족관이 눈에 띈다. 상영관 안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갈색 가죽 의자가 반짝이고, 멀티플렉스 특별관에 있는 리클라이너도 눈에 띈다. 일부 좌석은 테이블과 보조 받침대 등이 있는데 지정석이 아니라 먼저 앉는 사람이 주인이다.

동광극장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닿는 곳에 위치한 보산동관광특구(Camp Bosan)는 동광극장과 더불어 동두천의 역사를 증언한다. 특히 보산동은 미국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우리나라 록의 대부 신중현이 이끈 밴드 애드포(ADD4) 등 음악인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되곤 했는데, 두드림뮤직센터에 가면 그 시절 음악의 자취를 살펴보고 LP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동

두천놀자숲은 실내 어드벤처 시설을 갖춰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다. 지난 2020년 개장한 동두천자연휴양림이 이웃해 있어 함께 들러도 좋다. 에도시대 일본 거리를 재현한 니지모리스튜디오&료칸에 가면 이국적인 레트로 풍경까지 즐길 수 있다.

 

다시 깨어난 옛 탄광촌의 영광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탄광촌 주거시설 생생하게 복원·보전

광부들 단골 선술집·마을골목길 재현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조형물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조형물

태백 철암탄광역사촌은 옛 탄광촌 주거 시설을 복원·보존한 생활사 박물관이다. 감독이 “액션!”을 외치면 금방이라도 배우들이 열연을 펼칠 듯한 과거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탄광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와 연탄을 처음 본 아이가 만나는 곳, 태백이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한 1970~1980년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지다.

탄광촌이 활황이던 1970년대, 철암 지역은 광부가 되려는 이들 수만 명이 몰려 서울 명동 거리만큼 붐볐다. 그 시절 철암의 영화(榮華)가 바로 이 철암탄광역사촌에서 하나둘 전개된다. 철암탄광역사촌은 11개 건물 가운데 6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페리카나와 호남슈퍼, 진주성, 봉화식당을 거쳐 한양다방에서 마무리하는 동선이 일반적이다. 기획전시실로 꾸민 ‘페리카나’ 2층에서는 각종 장부와 철암 지역 학생들의 성적표, 계약서, 광부들이 매일 마셨을 소주 등을 전시한다.

‘진주성’은 관광객 쉼터와 복합 문화 공간 및 철암 다큐멘터리 공간으로, ‘호남슈퍼’는 철암의 유래·역사 관련 전시 공관과 선탄장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꾸몄다. 2층은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선술집과 가정집, 마을 골목을 재현했다.

과거 호황기 탄광촌은 도시의 확장 속도를 건축이 따라가지 못해 증축을 거듭했다. 이때 건물을 지지하기 위해 까치발처럼 기둥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까치발 건물’로 불리는 까닭이다. 철암탄광역사촌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태백 8경에 드는 구문소(천연기념물)가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에 세운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 가면 구문소의 지질학적 궁금증이 자연스레 해소된다. 해발 800m에 자리해 목가적 풍경이 펼쳐지는 몽토랑산양목장도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젊은 공예가들에 의해 탄생한 레트로 마을 부여 규암마을

담배가게 재해석한 책방세간 입소문

오랜 한옥·양조장, 카페 등으로 새단장

부여 책방세간 내부
부여 책방세간 내부

백제 문화재가 가득한 부여읍에서 다리를 건너면 규암마을이 나온다. 과거 나루터와 오일장을 중심으로 번성한 규암마을은 1960년대에 백제교가 생기며 쇠퇴했다.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 빈 상가가 남은 마을에 어느새 공예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레트로 여행지로 거듭났다.

레트로 규암마을을 널리 알린 건 책방세간이다. 80년 된 담배 가게를 허물지 않고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책방이다. 담배 가게 주인 이름이 새겨진 문패와 금고 등을 그대로 전시했고, 담배 가게 진열장은 책 진열장으로 바꿨다.

책방 내 카페에서 주문한 음료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보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낙후한 마을에 온기를 불어넣은 사람은 규암마을에 처음으로 책방세간이라는 곳을 만든 (주)세간의 박경아 대표다. 책방에 이어 카페 수월옥, 음식점 자온양조장, 숙소 작은한옥 등도 만들었다. 모두 오래된 한옥과 양조장을 복원해 꾸민 곳들이다.

책방세간 옆 부여서고는 다양한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편집숍이다. 베트남에서 제작한 수제 소쿠리와 가방을 비롯해 고대 목조건축에 쓰이던 장식 기와인 치미의 디자인을 문구류, 도자기, 패브릭 제품 등에 접목한 제품들도 눈에 띈다.

수북정(충남문화재자료)은 백마강(금강)과 백제교가 한눈에 보이는 정자다. 수북정 아래 튀어나온 바위가 규암마을의 이름이 유래했다는 자온대다.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은 사비 백제 시대 왕궁터로 알려졌고, 부소산성(사적)은 당시 왕궁을 지킨 방어 거점이자 후원이다. 내산면 저동리에 자리한 미암사는 길이 30m, 높이 7m의 거대한 와불과 쌀처럼 흰색을 띠는 쌀바위가 볼만하다.

 

MZ세대가 좋아하는 레트로 도시 군위 화본역과 엄마아빠어렸을적에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정평, 감성 충만

폐교 활용, 4050세대 학창시절 떠올려

군위 엄마아빠어렸을적에 소품
군위 엄마아빠어렸을적에 소품

최근 대구 최북단에 자리한 군위가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인기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화본역과 ‘엄마아빠어렸을적에’가 있다.

화본역은 1938년 2월 중앙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도 군위에서 유일하게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역사(驛舍)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실제 역이라기보다 드라마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준다.

‘네티즌이 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영화 ‘리틀 포레스트’ 등에 등장하기도 했다.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930년대 말, 열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급수탑과 박해수 시인의 ‘화본역’ 시비, 폐차한 새마을호 동차를 활용한 레일카페 등이 흥미롭다.

‘엄마아빠어렸을적에’는 화본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군위의 또 다른 복고 감성 여행 명소다. 1954년 4월 개교해 2009년 3월 폐교한 옛 산성중학교 건물을 활용, 1960~1970년대 화본마을의 생활상을 전시한 농촌 문화 체험장이다.

교실에 있는 칠판과 책상, 오르간, 학습 게시판, 난로 등이 4050 세대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문방구와 만화방, 이발소, 구멍가게, 연탄가게, 사진관, 전파상 등도 그대로 재현했다.

부계면 남산리의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국보)은 통일신라 초기 팔공산 북쪽 암벽에 형성된 화강석 동굴에 만든 사원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굴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장소다.

 

 

100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군산 시간여행마을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 오롯이 기록

초원사진관·말랭이마을도 인기 명소

군산 초원사진관
군산 초원사진관

군산 시간여행마을은 대표적인 레트로 여행지다. 다양한 근대건축물과 1980~1990년대 감성을 오롯이 간직한 골목 풍경이 정겹다.

시간여행마을을 둘러보기에 가장 좋은 출발지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다. 이름 그대로 군산의 근대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수탈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박물관 왼쪽에는 호남관세박물관이 자리한다.

1908년에 세운 구 군산세관 본관(사적)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서양 고전주의 건축물이다. 고딕 지붕과 로마네스크 창문, 영국 스타일로 처마를 낸 현관 등 이국적이고 화려함을 강조한 일본 근대건축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물관 뒤쪽엔 같은 해에 지은 세관 창고를 활용한 카페도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오른쪽으로는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을 보수·복원한 군산근대미술관과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을 활용한 군산근대건축관이 이어지고, 이들 뒤쪽에 진포해양 테마공원이 있다.

시간 여행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초원사진관으로 이어진다. 초원사진관은 1998년에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특유의 감성적인 분위기 덕분에 영화 팬은 물론 젊은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신흥동 산비탈에 자리한 판자촌 말랭이마을은 빈집들이 점차 미술관과 책방, 공방으로 변신하며 레트로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낭만적인 섬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 받는 고군산도도 가보자. 특히 ‘신선이 노니는 섬’이란 이름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선유도는 유람선과 집라인, 바이크 등의 액티비티도 다양해 가족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shinda.write@gmail.com
-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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