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치그룹, 콜라보로 위기 탈출
日 세이코 전자시계 등장에 한때 추락
세컨드 워치로 전격 변신, 부활 나래
‘패션+럭셔리’에 시계 애호가들 열광
‘30만원대 오메가’… 매장마다 장사진
블랑팡과 합작, 다이버 워치 도전장

문스와치는 대박이었다. 2022년 스와치가 오메가와 콜라보해서 만든 시계 문스와치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초대박 상품이었다. 전 세계 스와치 매장 앞엔 문스와치를 구하기 위한 오픈런이 이어졌다. 급기야 미국에선 문스와치를 놓고 실랑이까지 벌어졌다. 오픈런에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스와치는 스와치와 오메가의 합작품이다. 오메가는 인류 최초로 달에 간 시계로 유명하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닐 암스트롱 선장은 오메가를 착용했었다. 당시 암스트롱이 개인적으로 오메가를 애용했던 건 아니다. 오메가를 즐겨 차는 사람은 암스트롱이 아니라 본드다. 007 제임스 본드 말이다.

오메가는 지구의 시간을 달로 가져가는 최초의 시계가 되기 위해 혹독한 테스트를 거쳤다. 극한기온, 진공, 습도, 충격, 진동, 압력, 가속까지 11개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만 했다. 당시 오메가뿐만 아니라 무수한 시계들이 나사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도전했다. 결승점을 통과한 건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뿐이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드라이빙 워치다. 자동차를 몰고 레이싱을 하기 위해 디자인된 시계라는 뜻으로 달로 향하는 엄청난 속도와 큰 진동과 급가속을 이겨내는 일이다. 스페이스 워치는 드라이빙 워치에 가장 가까울 수밖에 없다.

달착륙보다 어려운 문스와치 구입

오메가는 문워치라는 이미지로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시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19년 출시된 달 착륙 50주년 기념 모델은 1500만원이 정가였다. 일반적인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가격은 700만원에서 900만원 대다. 그런데 스와치와 콜라보한 문스와치의 정가는 33만원이다. 무려 30분의 1로 가격이 낮아진 것이다.

스와치가 제조한 문스와치는 겉보기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와 흡사하다. 태양계 11개 행성의 이름을 따서 11가지 에디션을 만들었다. 생긴 건 문워치인데 스와치인 것이다. 게다가 스와치답게 11개 칼러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오메가 매니아와 스와치 매니아를 모두 열광시킬만한 요소다. 이러니 문스와치를 구하는 건 문랜딩보다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문스와치가 가능했던 건 오메가와 스와치가 사실 모두 스와치 그룹이 소유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스와치 그룹은 19개 이상의 시계 브랜드를 보유한 스위스 최대의 세계 회사다. 스와치 그룹이 보유한 시계 브랜드는 엔트리 모델부터 럭셔리 모델까지 폭이 넓다.

엔트리 모델에는 아동용인 플릭플락과 플라스틱 시계인 스와치가 있다. 중저가로는 티쏘와 해밀턴과 미도가 있다. 중고가로는 론진과 라도가 있다. 럭셔리로는 브레게와 블랑팡과 자케 드로와 해리 윈스턴 그리고 오메가가 있다.

거의 모든 가격 세그먼트에 골고루 브랜드들을 포진시킨 덕분에 스와치 그룹의 전세계 시계 시장 점유율은 25% 안팎을 오간다. 문스와치는 가장 싼 스와치와 가장 비싼 오메가의 만남이다. 오직 스와치만이 할 수 있는 브랜드 믹스인 것이다.

그런데 스와치 그룹이 극과 극이 만난 문스와치를 개발한 건 단순히 콜라보를 위한 것만 아니다. 위기에 빠진 스와치 브랜드를 구하기 위해서다. 스와치 그룹은 뭉치면 산다는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스와치 그룹은 스위스 시계 역사와 비교하면 역사가 짧다. 1985년 창업됐다. 38년 역사다. 스위스 시계의 역사는 400년이 넘는다.

스위스 시계는 16세기 말 태동했다. 종교 박해를 피해 영국과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망명 이민한 신교도들이 주축이었다. 무엇보다 귀금속이나 사치품을 몸에 지니면 지옥에 간다는 교리가 문제였다. 귀금속 세공자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결국 스위스 제네바로 도피했다. 알프스 산맥도 먹고 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귀금속을 세공할 수도 없었다. 귀금속의 원재료조차 없는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대신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가내 수공업으로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는 방식으로 당시엔 시계도 귀금속류에 속했다.

19세기에 이르자 기술적 발전도 이뤄졌다. 유명한 기술자들이 등장한 덕분이었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와 로저 드뷔 같은 장인들이었다. 브레게와 로저 드뷔의 이름은 지금도 럭셔리 시계 브랜드명으로 남아 있다. 이때 등장한 기술들이 오토매틱 무브먼트나 퍼페츄얼 캘린더나 미닛 리피터 같은 것들이었다.

오토매틱 무브먼트는 사용자가 태엽을 다시 감지 않아도 시계가 계속 돌아가는 기능을 말한다. 지금은 값비싼 럭셔리 시계에서 볼 수 있는 기능들이다. 19세기 당시에도 스위스 시계 산업은 이런 기능들과 디자인으로 승승장구했다.

스와치 탄생시킨 구원투수

그런데 1970년대에 전대미문의 위기가 찾아왔다. 세이코를 필두로 한 일본 전자시계 산업이 등장한 것이다. 쿼츠 전자 시계의 등장은 스위스가 자랑해 온 오토매틱 무브먼트니 퍼페츄얼 캘린더 같은 기능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간단하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 이른바 쿼츠 혁명이었다.

1970년대까지 스위스는 손목 시계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었다. 1980년 스위스 시계의 시장 점유율은 22%까지 떨어졌다. 1983년엔 15%까지 추락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은 붕괴됐다. 오메가마저도 부도가 났다. 세이코는 오메가 인수 의사를 밝혔다. 세이코는 스위스 시계 산업의 타노스였다.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이 붕괴한 건 환율도 원인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위스 프랑은 미국 달러에 페그(peg‧특정 국가의 통화에 자국 통화의 환율에 고정해 두는 제도)돼 있었다. 그런데 닉슨이 달러의 금본위제를 폐지해 버린 것이다. 이제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반면 마음대로 돈을 찍어낼 수 없는 스위스의 화폐 가치는 급상승했다. 수년 사이에 3배 이상 상승했다. 스위스 시계의 수출 경쟁력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뭉치면 사는 전략이 나온다. 당시 스위스 시계 산업의 대표적인 2개 회사가 오메가와 티쏘를 보유한 SSIH와 론진과 라도를 보유한 ASUAG였다. 스위스 시계 회사들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스위스 은행들은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한다.

그런데 당시 스위스 은행들이 원한 건 합병 이후 매각이었다. 매물의 덩치를 키워서 일본 시계 회사들한테 매각해 버린다는 게 위기 수습책이었다. 이때 매각보단 회생을 주장한 인물이 기업 컨설턴트인 니콜라스 하이엑이었다.

스위스 시계 채권단은 니콜라스 하이엑을 구원 투수로 투입했다. 다 망하게 생긴 SSIH와 ASUAG를 합병해서 매각해달라고 요구했다. 니콜라스 하이엑의 생각은 달랐다. 하이엑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스위스 시계 산업이 부활할 수 있는 길로 저가 시계 생산을 제시했다. 그때까지 스위스 시계는 콧대 높고 비싸기만 했다. 스위스 시계가 일본 시계한테 밀린 건 쿼츠 혁명이나 환율 위기 탓만이 아니라는 게  하이엑의 분석이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더 싸고 더 좋은 시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이엑은 채권단을 설득해서 합병 법인의 CEO가 됐다.

하이엑은 CEO로서 자신이 직접 쓴 보고서 그대로 경영했다. 시계의 부품 수를 줄였다. 조립 공정도 줄였다. 생산 원가도 줄였다. 대신 트렌디하고 화려한 색상과 현대적 디자인으로 시계를 포장했다. 그리고 시계의 이름은 세컨드 워치라고 정했다. 기존 스위스 시계를 가진 고객에게 시계 하나를 더 팔겠다는 전략이었다. 원 플러스 원이었다. 스위스어로 세컨드 워치를 줄이면 스와치다. 스와치의 탄생이었다.

퍼스트·세컨드워치 ‘환상 궁합’

스와치는 지난 1982년 출시됐다. 1983년 100만개가 생산됐다. 1990년 1억개가 판매됐다.  하이엑은 1985년 투자그룹을 만들어서 합병 회사를 완전히 인수해버렸다. 1998년 회사 이름을 스와치 그룹으로 바꿨다. 그렇게 세컨드 워치가 퍼스트 워치를 먹어버렸다. 반면 오메가 인수를 시도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일본 시계 산업은 일본 거품 경제 속에서 사라졌다.

기술 경쟁력과 디자인 경쟁력 그리고 수출 경쟁력을 모두 잃은 일본 시계 산업은 스위스 시계 산업처럼 위기에 빠졌다. 그렇지만 일본엔 니콜라스 하이엑 처럼 시계 산업을 구할 CEO가 없었다. 일본은 다른 전자 제품도 많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하이엑과 스와치의 등장은 글로벌 시계 역사의 분기점이었다.

게다가 1980년대와 1990년부턴 럭셔리 시장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금융이 확장됐고 자산의 가격은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높아졌다. 프랑스 패션의 LVMH와 프랑스 뷰티의 로레알이 급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스위스 시계 산업도 럭셔리화했다. 스와치 그룹도 저가의 스와치가 끌고 고가의 오메가가 미는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퍼스트 워치와 세컨드 워치의 콜라보가 스와치 그룹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문제는 세컨드 워치의 위기였다. 스마트 워치 때문이었다. 애플 워치는 2014년 처음 출시됐다. 2017년 4분기에 애플 워치는 스위스 시계의 분기 수출량을 능가해버렸다. 2022년 기준으로 스위스 시계의 수출 물량은 1580만대다. 글로벌 스마트 워치 출하량은 1억5000만대다. 지금은 스마트 워치의 시대인 것이다.

사실 애플 워치 출시 당시 스와치 그룹의 니콜라스 하이엑 회장은 “우리는 스마트워치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니콜라스 하이엑 회장은 스와치 그룹 창업주인 니콜라스 하이엑이 아니다. 니콜라스 하이엑 주니어로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시장을 낙관했다. 스마트워치가 세컨드워치의 최대 위협이라는걸 간과했다.

애플은 처음부터 스와치의 세컨드워치 시장을 노렸다. 이른바 패션 시계 시장이었다. 럭셔리 시장과 달리 트렌디한 시장이었다. 사실 애플 워치는 패션 시계라고 하기엔 가격이 비싸다. 반면 스마트한 기능이 탑재돼 있다. 비싼 가격을 앞선 기능으로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런 게 프리미엄이다. 애플이 겨냥하는 건 럭셔리 시장이 아니다. 럭셔리 시계를 갖고 있는 소비자들의 세컨드 워치가 되는 것이다.

또는 이제까지 시계에 관심이 없었던 소비자의 퍼스트 워치가 되는 것이다. 역시나 퍼스트 워치와 세컨드 워치로 밀고 끄는 스와치 그룹에 가장 큰 치명타를 입혔다. 스와치 그룹의 경쟁사인 리치몬트 그룹과 롤렉스는 2021년 대비 2022년 매출이 19%씩 증가했다. 반면 스와치는 5.7%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 수년 동안 이어진 인플레이션과 럭셔리 산업의 성장세에도 스와치는 한 끝이 부족했던 것이다. 까르띠에를 보유한 리치몬트 그룹도 고성장했는데 오메가를 보유한 스와치 그룹만 아쉬웠다.

스와치 그룹이 내놓은 전략이 바로 문스와치였다. 그리고 제대로 먹혔다. 초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엔트리와 럭셔리를 모두 가진 회사로서 콜라보를 통해서 브랜드를 동반 성장시킨 것이다. 문스와치는 오메가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을 높였다. 1개에 10만원 이하인 스와치 시계를 문스와치로 33만원에 팔았다. 소비자들은 오메가를 30분의 1로 살 수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론 스와치는 3배 가격에 산 것이다.

나아가서 자연히 스와치 전체 제품군의 가격도 높일 수 있다. 오메가와 콜라보하는 시계니까 말이다. 스와치 그룹은 최근 새로운 콜라보를 선보였다. 또 다른 럭셔리 시계엔 블랑팡과 스와치의 콜라보다. 이번엔 다이버 워치다. 그래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까지 5대양을 테마로 만들었다. 가격은 55만원이다. 블랑팡은 수천만원대 시계다. 스와치과 블랑팡이 손잡은 스와팡은 55만원대다. 뭉치면 산다. 이번엔 바다다.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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